[안타까운 어머니의 모습]
癡呆患者의 豫後란 지극히 일반적으로 점점 기억을 상실해가는 것이다. 아니 나의 경험을 보아 같은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기억의 폭이 점점 좁아지는 것이다. 지난봄까지만 해도 언어기능을 많이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들인 내가 가면 어쩌다가 “우리 아들 왔네!!!” 하고 나를 반길 때가 있었고 내가 옆에 앉아 “아들 오기를 기다렸시유~?” 하고 너스레를 떨면 “그렇다”고 구개를 끄덕이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날씨 탓일까 여름이 완연하여 장마철로 접어든 요즈음은 보고도 본 듯 만 듯, 아무리 물어봐도 입만 실룩거릴 뿐 대답이 없어져 버렸다.
사실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 물론 정상인마냥 웃으며 반길 것을 기대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지만 최근 2~3개월 사이에 말로 표현하기 안타깝게 상태가 나빠져 가고 있음을 본다. 더구나 살갗이 약해져서 살과 살이 부딪히기만 해도 그 부위에 멍이 들고 심지어는 살갗이 벗겨져 급기야는 그것이 염증화 된다. 온갖 부위에 드레싱을 하고 이미 다리는 굳어가고 있으며 미음을 겨우 드시다 보니 살이 쏙 빠져 뼈만 앙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도 오늘 어머니가 언뜻 아들이 왔음을 느꼈는지 나를 인지하는 표정과 느낌을 보였다. 안타까운 중에 그렇게 그 모습이 반갑고 고맙고 눈물겨울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지난 5월, 아버지의 생신 일을 맞아 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다녀오며 이제 어머니를 모실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한다고 말씀을 드리고 왔다. 왜냐하면 늘 그런 감정을 느끼지만 침상 위에서 어쩔 수 없이 숨을 쉬며 힘들어 하는 어머니를 보면 나도 모르게 목이 메는 것을 요즘 들어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더구나 어머니가 감정 표현도 했다. 내가 “어머니! 힘들어유?” 하고 입에 발린 질문을 했더니 지금까지는 그에 대답을 해오지 않던 어머니가 겨우 입을 떼면서 “힘들어~”라고 대답을 하였던 것이다.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달하였다고 해도 삶의 경계에 서서 그 선을 넘어가게 되는 일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어찌 해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니 그 말을 듣고는 또 다시 나 자신이 무너짐을 느꼈다. 게다가 그래도 의료기를 취급한다고 하여 이 계통에서 보고 듣고 한 것을 밑천으로 하여 풍월을 읊다가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주말인지라 병상마다 아들 딸, 손자손녀들이 줄을 지어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찾아 와서 잠시 입원실이 분주하기도 했다. 장마철이라고 하여 창밖에는 비 듣는 소리가 추적거리며 창에는 빗물이 맺히는데 알량하게도 “사무실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내일 봐유~”하면서 병실을 나서는데 여전히 나는 마음이 안쓰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그리고 보니 7월이 되므로 어머니가 치매에 완전히 노출이 되고 입원을 하게 된지 만 4년이 되었다. 어머니가 입원한 이 입원실에서 수많은 환자들이 입, 퇴원을 하였지만 젊은 환자들을 제외하고 하면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유명을 달리 해서 작별아닌 작별을 하였으니, 어찌 보면 그렇게라도 버티고 계신 어머니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 같기도 하다. 사람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양친을 여의고 나면 “나는 이제 고아다”라고 말을 하듯이 몸져누워 있어도 부모님이 옆에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릴 일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자식으로서 해드릴 방도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머니 손을 잡고 입에 발린 말만 하다가 돌아서는 것 같아 마음이 비오는 날의 우중충한 하늘만큼이나 우울하기만 하다.
2018.07.01/해가 가려서 검은 하늘만 보이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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