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영등포의 삶

[스크랩] [잔반(殘飯)]

영등포로터리 2018. 3. 26. 17:02

[잔반(殘飯)]

우리 건물의 구내식당에서 점심 한 끼를 먹는데 5,000원이 든다. 식권을 사고 나서 영수증을 보니 부가세 10%를 내고 나면 식당 경영자에게 돌아가는 순매출액이 1인당 4,545원이다. 최근 들어 저녁에는 식당을 운영하지 않고 점심에만 운영하므로 점심식사를 하러 오는 식객이 몇 명이 될지는 내가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그 금액 안에서 음식을 만들기 위하여 매입하는 식재료비, 인건비, 임대료, 조리기구 임차료 내지는 감가상각비 그리고 세금을 구성해야 한다. 가뜩이나 최저임금이라고 해서 올려놓아 여기저기 쪼개어서 겨우 원가를 맞추어 놓아 운영을 계속하던지 아니면 한계업체는 시장에서 퇴출되고 마는 것이다.

예전에 적자를 보며 운영하던 직장에서 경험한 것이 VE(Value Engineering)이다. 즉, 인건비가 되었든 재료비가 되었든 아니면 그 무엇이 되었든 원가를 줄여서 적자를 흑자로 돌아 세우든지 아니면 적어도 소위 “푸나마나 0”을 만들어야 하는 작업을 멋있는 말로 포장한 경영기법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절실한 경영자의 몸부림이다. 전문경영인이라고 해도 적자는 책임추궁의 대상이요, 개인소유업체라고 해도 적자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러한 말을 장황하게 하는 하나의 이유가 있다. 오랜만에 구내식당을 가서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소위 잔반통 앞에 선 사람들 특히 아가씨들의 식판을 보고 한심이 아니라 분노를 느낄 정도의 음식물 낭비 작태를 보고 천벌을 받아 마땅한 백성이라는 생각이 그 이유다. 물론 자신이 식탁에 앉아서 먹고자 했으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먹지 못하는 수도 있을 것이지만 내 앞에서 식판을 퇴식구 앞으로 밀어 넣은 아가씨들 모두를 보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을 불식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일개 분대가 될 정도의 인원이 하나 같이 국그릇에 한 가득씩 밥과 국과 그리고 반찬을 쓸어 담아 지나가는 개가 먹어도 한 끼가 될 양들을 버려버릴 수가 있을까

나는 그들의 심리를 다음과 같이 파악한다.
첫째, 자유배식이니 음식을 한 식판보다 더 가져다 먹으면 마치 엄청난 먹보로 보일까봐 체면상 그러지 못하니 일단은 되는대로 식판에 퍼 담았을 것이다.
둘째, 먹다가 보니 식판을 깨끗하게 비우면 마치 남들이 자신을 게걸스럽게 먹는 먹뱅이로 보일까봐 음식의 일부 또는 상당 부분을 남기어 버리는 것일 것이다.

물론 모든 아가씨가 그럴 것은 아니겠고 아가씨만 그러한 것도 아니겠지만 일부가 되었든 상당부분이 되었든 그러한 행위는 진정 비윤리적인 것이다.
첫째, 어차피 Zero-Sum인 사회에서 그들이 먹는 것은 먹지 못하는 자들의 것임에도 그들은 남이 굶는데 음식을 버리는 지극히 비사회적인 인간군상이다.
둘째, 먹을 것이 없어 지금도 아프리카나 북한에서는 흙을 먹거나 초근목피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러한 인류의 고난을 모른 척하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인간군상이다.
셋째, 어떻게 하든 원가를 절감하기 위하여 자나 깨나 애를 쓰는 식당의 운영자와 종사자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을 뒤로 하고 그들의 재료를 쓰레기 더미로 내버리는 비양심적인 인간군상이다.
넷째, 자신의 알량한 체면 때문에 남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가 주는 고통의 1% 이하로 여기는 지극히 비도덕적인 그런 인간 군상이다.

이 세상의 어떤 가치가 그러한 파렴치한 행위를 아무런 심리적 제약 없이 행하게 만드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낸 돈 4,545원의 권리를 그렇게 비사회적, 비도덕적, 비윤리적, 비인간적, 비도덕적으로 전락시키는 일이 없어야겠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사회를 저렇게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서 끌고 왔고 또 끌고 가고 있는 것일까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 정말 불쾌하고 찝찝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의 목격이었다.

2018.03.26/달이 곧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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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돌고도는 영등포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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