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스쳐보기]
한 15년도 더 된 듯하다. 뒤셀도르프에서 비행기가 연발되는 탓에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 예정이었던 서울행 비행기를 놓쳤다. 그것도 MEDICA 참관업체 대표단 20여명이 도매끔으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국제적 미아(?)가 되었다. 하지만 가이드와 일행의 요구로 "루프트한자"는 우리 일행을 시내에서 가장 훌륭한 "켐핀스키(Kempinski)" 호텔에 하룻밤을 머물게 하더니 다음 날 비행편을 마련해주었다.
졸지에 무상으로 해외에서 얻은 다음 하루의 아침에 눈을 뜨니 고급호텔도 그러려니와 11월 중순의 바깥 세상에는 눈이 내렸다. 일행 중 우리 몇 명은 100유로씩 갹출 후, 작은 버스를 빌려 시내 관광에 나섰다. 그때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괴테하우스를 방문하고 남녀혼탕을 체험했다는 것이다.
오늘은 사위가 시내까지의 교통편만 제공해주었기에 딸아이의 산관을 위해 미리 와있던 집사람 그리고 아들과 나 셋만이 괴테하우스가 있는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뢰머광장에 내렸다. 이름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매우 유명하다는 성당을 들어가 둘러보는 사이에 나만 제단을 바라보며 신자석에 잠깐 앉아 근 1년째 냉담 중인 나 자신을 항변했다. 그리고는 박물관이 있는 곳으로 연결다리를 건너니 주말이라 많은 상인들의 벼룩시장이 열려있음을 본다.
다시 다리를 건너 마인강을 건너 뢰머로 오다. 다리 난간에는 어김없이 자물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뢰머 광장에는 많은 관광객과 방문객으로 인산인해이다. 시내를 관광하는 시티투어 2층 버스에는 관광객들의 웃음이 넘친다. 아주 인상적인 것은 시티버스에 태극기가 그려져있다는 것이다.
역시 주어진 일정에 끌려다녀도 가이드와 함께하는 그룹투어를 해야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해당지역에 대한 명확한 지식도 없이 갈 곳은 제한적이다. 집사람과 아들은 큰 쇼핑센터에 가서 쇼핑을 즐기겠다니 서울에서도 힘든 쇼핑투어를 졸졸 따라다니며 여기서까지 와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 시간이 정오를 지났으니 주변에 널린 식당에 점심식사를 피자와 햄버거 그리고 이런저런 푸성귀로 마쳤다. 그런데 받아든 피자가 두께 2-3mm 정도이다. 여기 인심이 각박한 것인지 서울 인심이 후덕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대충 점심을 때우고 우리는 2시간 후에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투어에 나섰다.
뢰머광장은 구도심이라 볼 수 있다. 바로 옆에 신도심이 인접하여 많은 건물들이 밀집해 있어 주말을 즐기는 나들이객으로 인산인해이다. 마치 서울의 명동이나 인사동 같은 분위기랄까?
길거리를 둘러본 감상을 몇 가지 적어본다.
첫째, 넓은 거리에 오와 열을 맞추어 플라타너스를 심고 가지치기를 하여 나무가 곧게 자라 위에 잎이 무성하니 관광객들에게 그늘을 제공해주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였다.
둘째, 그 나무들 주변에 철제가이드를 세워 자전거를 체결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고 그들은 가방 안에 쇠사슬을 하나씩 넣고 다니니 그것은 도난방지용 자물쇠이다.
셋째, 자전거를 묶어놓는 철제구조물이 단순하여 버려진 쓰레기의 청소가 쉽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풍역 자전거 보관대는 청소가 매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넷째, 나무 주위로 둥근 벤치를 만들어 놓아 피곤한 관광객이 잠시 앉아 쉴 장소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다섯째, 거리의 단독 및 소규모 문화공연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지나는 이들이 잠시 같이 호흡하며 수고했다는 의미로서 작은 보답을 한다.
여섯째, 매우 많은 숫자의 이슬람 복장과 얼굴형으로 보아 독일사회가 다문화 현상을 소화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미 한 때 메르켈 총리가 독일의 다문화는 실패라고 단언했지만 성패에 관계 없이 다문화 현상은 지속된다는 것이다.
일곱째, 여기도 예수를 믿으라고 한 시간이 넘도록 외쳐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못마땅해하는 시민들도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포교의 모습은 어디나 다 비슷해보인다. 그런데 일련의 젊은이들이 몰려오더니 그들의 외침에 대꾸를 하더니 그 주변에서 모두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이 마치 2차 세계대전 영화에서 나찌를 신봉하는 젊은 장교나 돌격대의 그것과 유사해 보인다. 영국인이나 프랑스인과는 다른 특유의 게르만 민족의 전형인 것 같은 두상인 것이다.
여덟째, 그 와중에 삼성 간판을 내건 사무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핵심요지에 사무실을 내는 것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니 여기를 지나는 많은 독일인과 여러 종족들이 그 간판을 볼지니 브랜드의 값어치는 상승할 것이 분명하다.
아홉째, 이들은 자신들의 가게는 물론 앞마당을 옥외식당 같이 활용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대부분이 그러하지만 우리와는 대조적임이 분명하다. 도시구조의 문제인 듯하다.
열째, 넓지도 않은 도로에 적지도 않은 차랑인데 별로 길이 막히지 않아 보인다. 내가 그럴 때만 보아서 그런지 말이다.
열한번째, 승용차량 전체의 60% 정도가 경차라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는 아닐텐데 말이다.
열두번째, 차도와 인도의 턱이 절대로 높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로 보았는데 우리나라의 높은 턱과는 무슨 차이일까?
열세번째, 영어가 잘 통해 같이 남의 나랏말을 쓰는데 오히려 짧은 내 영어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네번째, 독일인들이 많이 모이는 이곳에 조각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다윗과 골리앗"으로 골리앗을 때려눞힌 다윗이 골리앗을 깔고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모양새이다. 왜 그 조각상을 그곳에 전시를 해놓았을까? 내 귓가에는 "게르만이여! 다시 세상을 제패하라~!!!"는 소리로 들려오고 있었다.
하여튼 길거리를 보고 돌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아이쇼핑에 그친 우리 가족을 다시 만났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한 블럭 떨어진 증권거래소 앞의 식당으로 가서 노상카페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시켰다. 하지만 말이 아이스커피지 완전히 아이스크림을 커피에 얹어서 먹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최고라는 것을 실감한 날이다. 남들 보기 남사스러워 쇠부랄을 잡지는 못하고 쇠뿔에 매달려 사업의 순탄함과 번창함을 빌어본다. 한 무리의 한국인 관광객이 가이드의 구령에 맞추어 사진을 찍고 지나간다. 정말 반가운 얼굴과 언어이다. 가이드도 관광객도 한국사람들이 제일 예쁘고 멋있다.
다시 픽업을 오는 사위를 기다리며 나무그늘 아래 서있다가 보니 지나는 독일인이 말을 건다.
중국인이냐? 아니다!
일본인이냐? 아니다!!
한국인이냐? 그렇다!!!
게르만들이 보는 극동인은 그냥 그 순서이다. 아마도 그것이 국력의 순서일 것이다. 그래도 그들의 머리속에 한국인(Koreanisch)이 각인되어 있다니 그것은 기업인들의 공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차를 타고 크론버그로 돌아오는 길에 프랑크푸르트 역 앞을 지난다. 언젠가 이 근처에서 이틀 밤을 자면서 한식당에 가서 쌀밥과 된장국에 2만원 짜리 쏘주를 한 병 마신 적이 있었음을 상기했다. 다시 역앞을 보니 우리의 자랑스러운 "금호타이어" 간판이 보인다.
LG, Hyundai, Samsung, Kumho tire. . .(내가 이곳에 와서 본 순서) 등등 대한의 기업들이여!
비싼 돈 받아 밥만 축내는 정치꾼놈들이야 무어라 지껄이든 독일은 물론 유럽과 세계시장에서 일취월장하는 지구촌의 선두기업이 되기를 바란다.
돌아오는 길은 아우토반이 아닌 소위 국도를 탔다. 이곳은 위도가 우리나라보다 높아 이미 가을이 깊어간다. 벌써 단풍이 지어 마른잎이 길위에 구른다. 그러나 이곳의 단풍은 말이 단풍이지 그저 마른잎일뿐 진정한 단풍이 아니다. 역시 단풍도 산기슭, 등성이, 골짜기에 불이 붙어 활활타는 화염에 노란 물감을 확 끼얹은 그런 울긋불긋하며 샛노오란 한폭의 풍경화 그림 같은 우리나라 삼천리 금수강산의 단풍이 세계 제일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이 순간 정녕코 무슨 짓을 하고 있니?
지금 뒷자리에는 손녀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차안 가득한데...
2017.09.30/흙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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