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크론버그라는 동네입니다. 도심에서 20여 킬로미터를 아우토반으로 달려 외곽에 위치한 아주 한적한 위성도시입니다.
시차로 뒤바뀐 날이 하루가 가고 몇 달만에 본 할아버지 앞에서 입을 씰룩거리는 외손녀를 보고 나도 아쉽지만 뾰죽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감기몸살이 완전히 낫지 않아 감기를 옮길까봐 마스크를 써야만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외손녀를 데리고 우리는 시장을 보러 갔습니다. 낯을 가리는 외손녀는 내가 유모차를 미는 것도 두려운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하룻밤이 지났기에 조금은 친숙해졌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읍사무소(stadthalle)쯤 되겠지요. 그 앞에 커다란 수퍼마켓이 있어 그곳까지 약 오리 정도를 걸어갔습니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초등학교를 지나 작은 공원도 있고 호수도 있는 언덕을 넘어 가니 작은 도시가 있었습니다. 한낮이지만 상가는 조용하고 인적이 뜸했습니다. 늘 독일을 오면 느끼는 것이지만 이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사나 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독일인들의 식단은 간단합니다. 그냥 아침에 독일빵에 치즈 한 조각 올려서 먹고 허름한 옷을 입고 작은 차를 타며 저녁이 되면 방 하나에 등 하나를 켜놓고 모두 모여 식시를 하고 조용히 하루를 마감한다니 말입니다.
얼추 20여년 전에 독일 거래처 사장이 구로동 회사를 방문했을 때도 보면 그는 백만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가방과 낡은 지갑 그리고 허름한 외투를 입고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화를 극복하고자 서너명이 모여야 성냥 한가치를 그었다는 그들의 정신이 크게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독일이나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범국가가 되었지만 곧 바로 복구를 하여 선진국의 대열에 서게 된 것은 그럴만한 그들의 정신세계가 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시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외손녀랑 조금 더 가까워졌습니다. 피곤한 탓이겠지만 할아버지의 품에 다시 안겨 잠이 들기도 했지요. 그런데 지난 봄의 손녀가 아니게 몸무게가 많이 늘었습니다.
집으로 와서 나는 다시 시차의 향연을 즐겼습니다. 분명 낮인데 졸립고 밤인데 유투브를 보며 이 글을 씁니다. 내일은 모두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나가기로 했습니다. 나로서는 얼추 십여년 만에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다시 가보는 것입니다.
2017.09.29/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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