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영등포의 삶

[스크랩] 자본주의의 역사, 1500~2000, 미셸 보(Michel Beaud) 저/김윤자 역 제5장 대변혁/大變革(1914~1945)[2部 5章] - 2017.08.08(화)

영등포로터리 2017. 8. 8. 18:58

자본주의의 역사, 1500~2000, 미셸 보(Michel Beaud) 저/김윤자 역

제5장 대변혁/大變革(1914~1945)[2部 5章]

- 축적과 확대 재생산의 논리로 각국의 자본주의는 격렬하게 경쟁하고 대결함
- 국가주의,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맹목적 애국주의와 광신적 선전에 힘입어
국가 간 대립 속애서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적대를 증폭시킴
- 이러한 대립은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하는 역사적인 증오와 원한을 키웠고,
우월감을 부추겼고, 위대한 신화 혹은 계몽의 사명감을 북돋았으니 이로 인하여
유혈이 낭자한 대량살상의 야만적인 세계대전을 불러옴
- 그로 인하여 국제결제제도가 붕괴되었지만 세계적 규모의 경제적 확장은 여전히
요구되고, 1920년대의 번영과 위기를 경험하며 1929년의 새로운 대공황 속으로
끌려들어가면서 또 다른 세계대전에 이르게 됨

1. 1차 대전에서 세계공황으로
- 조레스 : “자본주의는 마치 먹구름이 폭풍우를 몰고 오듯 전쟁을 몰고 온다.”
. 자본주의는 먼저 공황을 가져오고 새 영토정복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만들며,
. 각국 사회구성의 내의 자본주의의 발전, 각국 자본주의의 대결은 전쟁을 부름
- 1차 세계대전(1914~1918)
. 1914년 이전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유럽을 뒤흔들고 영국의
쇠퇴를 가속화하고 미국을 강화함
. 모순을 1920년대에는 잠복한 채 1929년 이후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보편화된
긴 불황기를 열어놓음
1) 세계대전의 발발
-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아름다운 신화는 무너짐
. 동맹파업이 전쟁발발을 억제하지 못함
. 1910년 노동총연맹cgt(勞動總同盟, Confederation Generale du Travail)는
유럽 강대국 간의 선전포고에 총파업으로 대응하였으나 전쟁발발을 막지 못함
. 1914년 7월29일 cgt는 평화를 위하여 성실히 일한다면 정부지도자들이 지지를
얻을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저버림
. 유럽 각국의 프롤레타리아는 서로 수백만의 살상자를 내고 고통, 원한, 분열을
지속함
. 테일러주의 노동조직 방식의 도입으로 노동자는 또 다른 패배를 맛봄 : 알퐁스
메렘(1913.03.31)은 “노동자의 생활”에서 공장에서 지능이 축출되고 로봇만
남는다고 기록함
- 전쟁은 일한 과학적 노동조직 방식의 도입을 용이하게 만듬
. 전문 노동력이 없이도 극히 정교한 제품의 제조를 가능하게 함
. 다른 계급과 마찬가지로 노동자 계급도 수없이 죽어나감
. 각국은 엄청난 전쟁비용으로 천문학적인 국채를 발행함
. 부가적으로 독일의 공산주의 혁명시도는 유혈사태로 끝나고 헝가리혁명이
분쇄되었으며, 프랑스에서는 송산주의와 사회중의가 분열하였으므로,
러시아가 사회주의화 되어 갈 때 서유럽에서는 노동운동이 타격을 입음
- 미국과 일본의 부상
. 공업생산지수는 미국이 유럽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높아지고 금보유고가
4배 이상 증가함
. 러시아의 10월 혁명으로 유럽 강대국들은 시장을 상실함
. 일본의 공업생산, 교역, 해외자산이 크게 증가하여 아시아의 공업대국으로
등장
. 유럽자본주의의 약화 및 유럽의 쇠퇴 촉발되었으나 아래의 환경 속에서
평화협정이 조인되자마자 거대한 경제 전쟁을 시작함
+ 미국의 경제대국화,
+ 독일의 공업생산력 회복,
+ 소련과 일본의 나름대로의 공업화,
+ 영국과 프랑스의 여전한 공업시설, 금융망, 제국주의적 거대자산
2) 1920~30년의 위기
- 전통적으로 이 시기는 4단계로 구분(화폐경제의 측면과 실물경제의 측면)
. 전쟁직후의 호황
. 1921년 회복기의 불황
. 번영기
. 1929년 공황과 1930년대의 그 연장
- 전쟁피해, 엄청난 공채, 미국과 영국에 대한 대외채무
. 프랑스의 대답은 “독일이 갚을 것이다”임.
. 독일에 대한 배상요구는 독일의 석탄, 철강, 제철과 기계제품 등의 수출을
강요하는 것으로 영국과 독일의 경쟁을 유발시킴
.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 강화 : 대외투자 증가, 금보유고 증가
. 영국의 수출경쟁력의 약화
. 독일의 배상금 지불, 파운드화의 환율과 태환성의 회복, 금에 기초한 국제통화
제도로서의 전반적 복귀 : 1925년 파운드화는 전쟁전의 환율과 태환성을 회복
- 엄청난 그 대가
. 영국은 1921년 공황이 수출격감, 실업자 급증을 불러 강타 당했으나 런던은 옛
지위를 회복
. 프랑스는 1928년에 가서야 전쟁 전의 1/5수준으로 금태환성을 화복
. 독일은 마르크화가 1922~23년 붕괴, 영국의 신용 공여에 힘입어 산업구조가
발전하고 근대화 됨, 1924~1930년 여유 있는 대외신용으로 경제 회복
- 각국 자본주의는 각각의 고유한 과정을 따라 전개되어감
. 영국 : 희생을 거부하는 투쟁적 노동자들과 해외 공업 경쟁국의 도전 사이에서
고전
. 독일 : 집중강화/역동확장으로 패전의 수치를 극복하려는 국가적 의지로 버팀
. 프랑스 : 대공업과 수공업의 불균형, 지방정체와 재국의 모험 사이에서 분열
. 미국 : 광적인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혼란과 투기에 빠짐
. 일본 : 신흥국의 새로운 생산이 전개됨
- 해외사장을 둘러싼 싸움의 격화
. 신흥자본주의 진출로 쇠퇴
+ 영국은 1927~29년에는 1924년 이전 수준으로 수출의 감소 경험
+ 프랑스 수출은 1928년 이후 축소
. 미국 자본주의는 이례적으로 축적, 확장
. 1920년대는 영국은 만성적인 공황상태였고 여타의 자본주의 국가는 공황이
잠재되어 있었으니 월가의 증권 투기와 공황은 각국의 공황을 촉발시킴

2. 세계의 와해
- 미국의 주가 : 1929년 200~210에서 1932년 30~40으로 폭락
- 세계의 무역 : 1932년에는 1923년의 1/3로 축소
- ILO 추산 : 1933년에 전 세계에서 약 3,000만 명이 실직한 것으로 추산
- 1929~1933
. 대공황의 해
. 각국의 고유한 축적모델이 소진되어 가는 와중에 진행
. 국제결제제도의 결여와 보호주의의 대두로 무역확대가 제한된 국제적 배경을
통하여 악화됨
. 그 시작점은 미국이었음
1) 미국 제일? 비즈니스 제일!
- 1차 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 됨
. 금보유고 : 25억 달러(1921), 전쟁 채권 : 120억 달러
.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곧 종전을 뜻했음 : 세계 최강국이 됨
. 민주당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주주의와 국제협력의 이념에 맞서서
공화당 하딩 대통령이 주장한 국가주의적 신념이 승리
- 미국의 보호주의 실시
. 미국의 은행들이 국제결제제도에 대한 책임도 관리방법도 갖지 못했음
. 미국의 성장도 대부분 미구의 자원에 기초해 내수시장에서 이루어진 것임
- 미국 제일!!!
. 미국의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이기는 했지만 미국에 머물러 있는 상태였음
. 캐나다와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영향권으로 귀속
. 1920년대의 미국은 엄청난 성장과 놀라운 번영을 경험함
+ 노동자 수의 급증
+ 노동환경의 개선은 미흡하고 안전사고 비등
. 미국의 노동운동의 후퇴
+ 1919년 : 연방정부의 파업금지령
+ 1920년 : 노동조합, 전투적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에 억압적 조치
+ 1927년 : 기업이 황색노조(일종의 어용노조) 운용,
노동자지주제, 온정주의라는 유화적인 방법을 강구했음
* 미국노동총연맹(AFL) 가입자 수 : 400만(1920) => 250만(1932)
. 이를 배경으로 테일러주의(노동의 과학적 관리), 포드주의(일관작업 공정) 도입
+ 기계화, 표준화, 작업의 계획화, 일관제조, 사무실 조직화로 작업능률 증대
+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의 새로운 모델로 창출된 가치의 새로운 실현 모델
+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이루어진 분업화로 대량생산 실시
+ 대량생산, 합리적인 노동조직, 일부 노동자에 대한 고임금 정책 및 대량소비
=> 1920년대 미국 번영의 기초
. 미국 번영(1921~1929) : 공업생산의 90% 증가, GNP의 20%를 상회하는
투자, 노동생산성의 47% 증가
. 1920년대 말 : 노동의 높은 피로도, 생산성 둔화, 시장의 포화, 가격하락과
소득감소, 치열한 해외시장의 경쟁, 이윤축소, 증권투기과열
. 대공황
+ 도매물가 1/3로 하락, 공업생산지수의 날개 없는 추락,
실업자의 날개 달린 상승, 임금의 1/3~1/4로 하락, 수입수출의 급격한 감소
+ 다행히 미국은 전 세계의 금 보유량의 2/5를 보유
- 1932년 공화당의 후버 대통령은 민주당의 루즈벨트에게 패배함
. 루스벨트는 “산업독재”, “경제의 제왕”, “새로운 전제주의”라고 비난
. New Deal(국민소득 분배에서 자신의 몫을 정당하게 요구) 정책 실시
① 기본적인 경제활동 부문의 재조직과 활성화
② 세계시장에서 미국의 유리한 지위를 되찾기 위한 정책
③ 주요 사회세력들과의 새로운 사회적 타협의 모색
. 대규모 공공사업 계획에 착수 및 실업자를 위한 직업소개소 제도 창설
. 실업연금과 퇴직연금을 받을 권리 제도화(1936)
- New Deal 정책
. 미국 자본주의를 이루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살리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음
. 미국자본주의에 미친 결정적인 기여
+ 고용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양보를 받아들이게 했으며 그러한 양보는 결국
노동자 계급 전체를 소비체제 속에 통합하게 된 것
+ 공화당의 오랜 원칙, 즉 “비즈니스에는 보다 작은 정부를, 정부에는 보다
많은 비즈니스를!!!”이라는 원칙에 결별을 가져오고 정부와 업체 간의
“알찬 협력”의 길을 열어놓은 것 : 미국 제일 = 비즈니스 제일
2) 스털링 제일...
- 미국의 국력 증강의 이면에는 유럽 특히 영국의 쇠퇴가 있었음
. 1920년대 영국 경제는 잠재적 공황에 빠져 있었음
. 케인즈는 “신용공여정책(기업인에게 새 사업을 착수하도록 격려)”을 제시
- 파운드화의 환율 회복 및 금태환성 회복(1925)으로 노동자가 치른 대가
. 실업자의 증가(1920~1921), 임금의 삭감, 노동운동의 분열과 패퇴,
노동조합의 신뢰약화
. 파업의 불법화(1927년 이후)로 노동자 계급은 근본적으로 약화
. 명목임금의 축소(1920~1922)
. 실업수당의 차별화(1930년대)
. 기이행진hunger march 진압(1932)
- 영국의 긴 공황(1920대~1930대)
. 영국 자본주의의 강력한 힘의 원천이었던 제1세대 산업(석탄, 제철, 섬유공업
부문) 강타
. 제2세대 산업들(전기, 자동차, 도로수송, 인견, 식품공업)은 발전함
. 발전의 발판(제국 영토, 식민지, 자치령 영토로의 영향권 확대)도 있었음
. 영국의 대외투자 : 미국에서는 후퇴, 캐나다에서는 정체, 유럽과 중남미에서는
점진적 증가, 영연방 내에서는 두드러진 증가
. 세계적 규모의 착취와 수탈이 강화됨
+ 새로운 형태의 빈곤 및 부정의가 출현
+ 해방과 독립에 대한 새로운 갈망이 나타남
+ 대영제국은 이미 무수한 균열로 얼룩짐
3) 프랑스 우선?
- 프랑스 자본주의는 이미 1920년대부터 식민 제국의 가치창출로 이들을 봄
- 프랑스 제국 내의 침체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탄 공황(1930년대)
. 제국의 형성이 공황을 부분적으로 완화할 수 있었음
. 생산재 산업(제2세대 공업에서 비롯됨)의 발전이 두르러짐
. 수출량의 증가 및 생산성의 비약적 발전에 기초한 성장
. 이러한 축적과정은 1926년 경 고유의 한계에 부딪힘
+ 노동자 농민의 구매력 저하, 세계시자의 경쟁 격화, 도매물가 하락,
+ 1930년 : 미국의 공항이 프랑스로 전파되기 시작함
- 프랑스의 노동운동
. 노동자 계급의 전투성 과시(1929~20), 폭발적인 조동조합 결성(1937)
. 노동자 계급이 수취한 이익 : 노동시간의 감소, 실질임금의 유지와 상승
. 단체교섭 제도의 보편화(1936)
- 사회 민주주의적 타협의 기초가 마련됨(1차~2차 대전 사이)
4) 독일 최고!
- 독일의 제국주의가 그 확장을 저지당한 채 절단됨
. 패배한 군대와 군인, 굴욕당한 국민과 민족주의, 억제할 수 없는 인종주의와
쇼비니즘(Chauvinism/광신적 애국주의), 배외주의(排外主義) 요소들이 존재
. 비범한 선동가와 상처받은 국민, 그들의 탐욕과 환상이 범람m 이데올로기
. 폭력과 몽둥이, 엄청난 독단, 격력하고 위협적인 폭동, 온갖 분파가 난무
- 이에 대항하는 쪽의 판단 착오, 무책임, 계산 착오, 전 세계가 불길에 휩싸임
. 서구의 지도계급 전체에게도 광범위한 공모가 있지 않았던가?
. 소련의 공산주의가 악의 대명사가 된 순간부터 나치 독일은 이에 유용한
맞불이 나이었던가?
. 나치 독일은 새로운 동방진출에서 유익한 보상을 발견하게 되지 않는가?
-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강령(1920)
. 주식회사의 국유화 권장 및 국가 공동체의 자산화를 주장
. 오토 슈트라서 : 독일의 경제가 금융에 있다는 것은 모든 사회해방의 가능성이
끝났음을 뜻한다.
. 나치 찬가 : 독일의 노동자를 위해, 우리의 소운은 자유의 길을 개척하는 것.
. 히틀러의 ‘나의 투쟁’ : 창조적 노동이념의 승리...
. 요제프 괴벨스의 ‘독일인의 혁명’ : 미래 독일에 프롤레타리아가 없기를 원한다.
- 이후부터 국가와 인종, 피와 폭력의 신비주의 등장
. 독일이여 깨어나라, 독일 최고, 인종의 순수성을 유지하기를 포기하는 국민은
그와 동시에 자신들의 영혼의 통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강자가 할 일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이지 약자와 더불어 융합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 이러한 단순한 사고, 충격적인 공식이 선전을 통해 강요됨
- 패배와 국토의 절단과 국민의 굴욕
. 전쟁채무와 루르지방 점령, 천정부지의 인플레이션과 배상의 부담, 치열한 노력
. 미국의 공황이 허약한 독일을 강타하므로 공업생산의 추락, 노동운동의 실패,
지배계급의 분열, 기업가와 금융가는 지주/제조업은 중공업과/중소고용주는
大기업주와 적대관계 형성, 중산층과 중소 기술 관료인 공무원과 직원 층은
타격을 받음(국가사회주의 등장의 기반은 중소 기술 관료였음)
- 히틀러의 절대 권력은 실업의 감소, 전체주의국가, 위대한 독일의 전망에서 형성
. 실업자 : 550만(1933)->200만(1935)->100만 미만(1937)->수만(1939)
. 생산량 : 2배로 증가(1933~1939)
. 대규모 공공 토목사업 추진
. 군비 증강
. 카르텔의 재형성으로 독일 제국이 요구하는 공업화 노력이 조직화, 체계화됨
. 국가 지원을 받은 독일의 자본주의는 훨씬 정교하게 강화된 국가자본주의였음
- 이러한 발전은 국가와 당에 의해 몇 겹씩 둘러싸인 사회 속에서 이루어짐
. 국가는 전체주의의 원칙을 실현해 나갈 것임(괴벨스)
. 게슈타포의 탄생(1936)
. 노동조합 해체(1933)
. 모든 사람이 조직화되고 신문 등은 국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선전에 봉사
- 굴욕당한 독일인은 히틀러의 “승리로 가득 찬 독일의 전망” 속으로 몰입
. 나의 투쟁은 독일인의 소속감과 할 일을 설정함
. 프랑스를 없애야 한다!!!
. 국력의 원천은 식민지가 아니고 유럽과 조국의 땅에 있음을 명심하라.
. 민족의 우수한 요소들을 지키려 애쓰는 나라가 지구의 주인이 될 것이다.
- 다시 전재의 포화 속으로 들어감
. 병역의무 부활91935)
. 라인 지방 점령(1936)
. 히틀러가 국방군 총사령관이 됨, 오스트리아 점령, 프라하에 최후통첩(1938)
. 체코슬로바키아 점령, 메멜(리투아니아) 점령, 독이(獨伊) 군사동맹 체결,
독소(獨蘇) 불가침 조약 체결, 폴란드 침공 및 소련과 분할(1939)
. 유럽을 점령했으나 소련과의 공격과 미국의 참전(1941)으로 전세를 역전시킴
. 그 뒤로 3년간 전쟁으로 5,000만 명 사망
. 일본에는 원자탄이 투하됨(1945_
. 세계는 미국(자본주의)과 소련(사회주의)이 대항하는 냉전체제로 양분됨

3. 5장의 요약
- 1920~30년대의 공황은 1914~198년의 세계대전을 낳았던 모순들이 합쳐지면서
초래됨
. 제1세대 공업화의 침체와 각국 자본주의 간의 경쟁 격화
. 공평한 생산물의 분배를 확보하고자 하는 노동운동이 가세
. 미국과 소련이라는 블록으로 작용하고 모순들의 격화가 위기를 전개시킴
- 제2세대 공업의 눈부신 발전
. 선진공업국의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의 단축, 실질임금의 증가
. 공항 기간 내내 실업이라는 무거운 짐이 남아 있었음
. 대외투자 수익과 부등가 교환을 통해 식민지 및 신생국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가치 이전으로 유럽 노동자의 구매력 증가는 전 세계농민의 수탈에 의해 확보
및 보상받은 것
. 같은 기간 내에 산업의 집중 및 집적이 가속화(대기업 그룹, 콘체른, 카르텔)
. 중소 부르주아지에 가까운 ‘기술관료(技術官僚)’라는 새로운 계급의 탄생
- 분열된 세계 내부에 전개 되고 있었던 사태
. 분열이유
① 소련의 국가집산주의가 세계시장에 단단히 뿌리박은 쐐기로서 전개되어
갔기 때문임
② 어제의 주도적 제국주의 국가 영국이 국제결제제도를 규제할 능력을 잃고
경제 최강국 미국에는 아직 이를 물려받을 만한 역량이 없었기 때문임
③ 각 강대국이 국가적 목표 즉, 미국의 번영, 파운드화 방어, 프랑화 방어,
강력한 독일의 회복 등에 치중한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임
④ 세계의 분열은 불황의 난국 속에서 각 강대국이 자국의 고치(영국의 영연방,
프랑스의 제국 블록) 속에 혹은 자체 계획(미국의 뉴딜)에 안주했고 독일은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민족의 영광을 위해 재군비, 정복, 유럽과 세계의
제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임
. 분열된 세계에서 각국이 보호주의로 후퇴하면서 위기가 확산됨
+ 공급을 담당한 나라들이 피해를 입고 그 나라들이 상품구입을 줄이면서
선진 공업국과 신흥국 또한 위기에 휘말림
+ 그들의 ‘생활공간’과 적절한 수준의 경제적, 상업적 확장을 위한 영향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은 팽창주의 정책을 선택함
. 이들의 충돌이 전쟁을 불러오게 됨

2017.08.08/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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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돌고도는 영등포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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