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영등포의 삶

[스크랩] 자본주의의 역사, 1500~2000, 미셸 보(Michel Beaud) 저/김윤자 역 제1부 황금에서 자본으로

영등포로터리 2017. 8. 4. 17:31

자본주의의 역사, 1500~2000, 미셸 보(Michel Beaud) 저/김윤자 역

제1부 황금에서 자본으로

1. 자본주의는 서유럽의 상업적 화폐사회 속에서 형성되었으나 특유의 창조적이며
파괴적으로 발전되지는 못함
2. 교역증대, 기술개발, 생산증대, 인구증가, 도시화, 부의 축적, 지식과 사상의 부흥
등이 원인일 수 있으나 그러한 성취를 이룬 고대 중국이나 이슬람권에서는 이런
자본주의 발전이 없었음.
3. 그런데 왜 자본주의는 이 반도(유럽을 지칭)에서 1500년대에 나타난 것일까?
- 다수의 왕국, 공국, 도시의 역할이 증가하고 정치권력과 종교적 권위가 구분
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임
- 중국에서의 제국적 지배와 이슬람 영토에서 종교의 압도적 우위가 방해요인임
4. 16, 17, 18, 19세기의 영국 산업자본주의의 발전 과정 추적

1장 자본주의를 향한 긴 여정
- 서유럽 봉건사회는 11세기에 완성되었으나 바로 해체에 돌입
- 노동지대가 현물, 화폐지대로 바뀌어 상인자본주의가 형성되기 시작
- 여정의 첫 단계는 아메리카 대륙의 정복과 약탈, 둘째는 부르주아지의 등장

1. 식미지 약탈과 국왕의 부(16세기)
- 십자군 전쟁은 막대한 보물의 획득기회
- 자본/상품/선박/무기는 새로운 발견과 정복의 수단
- 교권으로부터의 자치 확대, 왕국/각국의 패권쟁탈
- 상인과 은행가는 정복/전쟁/약탈/노예무역/강제노역을 시키는 원동력임
1) 아메리카의 황금
- 1521~1660년 사이에 은 18,000톤, 금 200톤이 아메리카에서 스페인으로 운송
- 인디언, 흑인 등을 노예로 노동 착취, 사탕수수 등으로 부의원천을 이룸
- 외채상환 및 전쟁경비 충당, 방대한 귀금속이 유럽대륙에서 물결처럼 확산
2) 국왕의 부와 화폐의 패러독스
- 귀금속의 풍부함은 물가상승을 초래, 실질임금의 하락을 부추김, 대중 불만 고조
- 물가 폭등을 통제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임금 상승도 통제를 받음
-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나옴
- 귀금속 유입과 생산의 발달은 상업을 번성시킴, 상인과 은행 부르주아지의
힘이 증대되고 대도시 형성
- 새로운 신인 자본이 세계 지배의 준비를 갖추어 감
- 만사를 돈으로 측정하는 곳에서는 정의와 번영이 국사를 지배하는 일이 불가능
3) 낡은 것과 새로운 것
- 낡은 것
. 농업인구와 제한적인 교역 등의 낡은 요소, 길드의 규제 아래 이루어지는
수공업 생산물 위주의 시장거래 및 소량의 농산물 시장거래(Ca->M->Ci)
. 중개자가 개입하면 M->Ci->M'(=M+△M)의 형태가 되어 거래됨
△M은 수공업 장인이나 직인, 도제의 초과노동 혹은 농민에게서 수취한
지대의 일부일 수 있음
. 부의 축적
+ 형태 : 국가에 의한 축적(왕실자산, 왕실을 위한 기간산업 등),
부르주아적 축적(사적 자산, 귀금속 등)
+ 원천 : 미 대륙으로부터의 약탈, 농민의 초과노동
- 새로운 것
. 미대륙으로부터의 엄청난 약탈
+ 현지에서 발견된 보물의 약탈
+ 금은광, 사탕수수 등 농장에서 새로운 가치의 생산(강제노동과 노예화)
. 16세기에 미래의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조건이 생겨나 전개됨(은행 및 상인
부르주아지) => 자본주의의 시작으로 봄
- 16세기의 자본주의는 상업 자본주의로서 근대 자본주의의 맹아에 불과함
- 산업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적 안목이 필요함

2. 부르주아지의 등장(17세기)
- 유럽대륙의 상황
. 17세기는 90%가 농업에 종사, 비료도 없이 경작, 낫으로 수확, 소수의 가축,
음식은 빵과 수프 정도, 흉년에는 기근이 몰아침
. 귀족계급에서는 서열과 특권이 따름
. 교회는 사상영역 내에서 질서를 유지
. 저지대(네덜란드)는 부르주아지의 힘이 강력한 곳이었음
.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보헤미아 왕국과
헝가리 추가)와 동맹으로 전쟁(1588년 무적함대의 패배)을 치르면서 쇠퇴하기
시작
. 17세기의 자본주의를 향한 긴 여정의 시작은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임
1) 식민지의 확대와 네덜란드의 자본주의
- 네덜란드의 상업자본주의 및 매뉴팩처 자본주의는 한층 더 발전함
- 발전의 강력한 세 지주
. 동인도회사 : 인도무역의 독점권 행사
. 암스테르담 은행 : 은행의 환전업을 독점
. 선단(船團) : 물류를 장악, 1600년 일본에 진출, 1601년 중국에 도착,
1621년 서인도 회사 창설로 극동항로를 장악했으나 아메리카는
실패
. 강대한 상업국으로 가공산업을 발전시킴
- 영국의 자본주의와 프랑스의 보호주의가 발흥하여 네덜란드는 대영전쟁,
대불전쟁, 스페인 계승전쟁으로 부채에 허덕이며 지배적 지위를 상실함
2) 영국, 중상주의에서 자유주의로
① 식민지 확장과 중상주의
- 16세기에는 스페인, 17세기에는 네덜란드, 18세기에는 프랑스와 겨룸
- 17세기 초에 식민지 확장에 몰두, 동인도 회사 설립, 17세기 중엽에 대외교역이
두 배로 증가
- 군주와 부르주아지와의 어려운 타협 : 크롬웰은 공격적인 중상주의 정책 실시
- 네덜란드와 치열한 경쟁
② 부르주아지의 형성
- 부의 이동
. 농민의 초과노동 => 왕족, 국가기구, 귀족, 성직자에게 감
. 수공업자의 초과노동 => 무역상, 상인과 점포상
. 식민지 세계무역 => 무역상
- 가난한 수공업자, 노동자 : 품삯 인상, 노동시간 단축, 외국의 경쟁에 대한 보호
- 상인/은행 부르주아지, 법학자, 법률가와 그 지지자들 : 민주주의와 자유를 요구
③ 자유와 자유주의
- 절대주의 국가의 필요성 반박하여 주권의 전복을 주장 : 토머스 홉스, 존 로크
- 존 로크 : “시민정부론”, “사회계약설” 등
. 사회나 정부의 토대가 되는 것은 시민의 자유로운 동의
. 이러한 토대 자체가 봉기의 권리를 정당화 함 : 시민정부를 옹호
. 그러나 노동자 계급의 통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음
=> 즉 사회계약을 맺는 자유로운 인간은 귀족, 성직자, 젠트리, 부르주아지
- 더들리 노스 경 : “무역론” 발표
- 공히 두 사람이 정치적 자유의 원칙을 발표 : 절대군주에 도전할 충분한 힘을
갖는 부르주아지의 등장을 알림
3) 프랑스의 중상주의와 절대주의
- 절대주의(루이14세의 절정의 권력)와 중상주의(아직 힘이 약한 부르주아지)의
순수한 연결이 프랑스에서 일어남
- 부르주아지는 귀족처럼 살기를 원했으나 귀족은 거절
① 중상주의자들의 사상
- 앙뚜안 드 몽크레스티앙 :
. “정치경제론”을 제출하고 남작 칭호를 받음
. 그의 중상주의 사상 : 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생산물로는 돈을
벌 수 없다면 외국인들로부터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 리슐리외, 콜베르 : 정책의 실현을 위하여 일함
② 중상주의 정책
- 리슐리외 추기경은 국정을 맡으면서 절대주의를 확립하는 동시에 무역회사 등
치부의 수단을 재건
- 절대주의와 중상주의의 결합이 꽃을 피우는 것은 콜베르 시대임
. 부르주아를 귀족으로 등용 : 앙리 드 생시몽은 천박한 부르주아지 통치라고
비난
. 무역회사는 왕의 군대이며 프랑스의 제조업은 그 예비군
. 대외교역을 네덜란드의 후견으로부터 해방시킴 : 외국선박의 조세가중/관세인상
. 생산 장려 정책 시행 : 왕립매뉴팩처 설립, 제조업 노동자의 훈련은 혹독했음
. 무역정책 : 네덜란드와 경쟁, 영토의 세계적인 확장
- 네덜란드와 영국의 강력한 상업자본주의에 맞서 프랑스는 굳건하고 신중한
공업자본주의를 육성
③ 중상주의에 대한 비판
- 네덜란드인과 영국인들의 보복으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들고 일어남
- 농민의 궁핍과 농촌의 저소득을 지켜본 부아기유베르는 조세, 인두세, 관세장벽,
관세 등을 문제 삼음
- 보방경의 정치적 유언 : 가격결정의 자유 및 대외무역의 자유를 요구함

3. 1장의 요약
- 다양한 초기 자본주의의 개념은 후에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된 서구유렵에 비추어
사용하는 용어
- 농민은 귀족과 교회, 왕령지에 여러 가지 형태와 다양한 종류의 지대를 바치고
있었음
- 아메리카의 귀금속 약탈과 아프리카 노동력의 야만적 착취가 있었음
- 유럽 부르주아지의 치부를 도와준 것은 상품교역과 화폐교환이 원천
- 국가적 축적과 부르주아적 축적의 두 가지 축적의 형태
- 부르주아들은 세계무역을 지배할 만큼 힘이 생기자 자유주의를 내세워 중상주의
명제를 버리고, 절대주의에 맞설 만큼 강해졌다고 생각하자 자유라는 사상으로
무장함 => 실질적 권력을 확보함
- 자본주의는 일국적이면서 다국적이며, 경쟁적이면서 독점적이고,
자유주의적이면서 국가에 연관되어 있음
- 유럽에서 변화의 주요 동력은 국가였음
. 그러나 변화를 감지하기가 쉽지 않음
. 새로운 복합적 사회논리가 낡은 예전의 논리로부터 국가를 중심으로 형성됨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세계를 구조 짓게 될 두 가지 긴밀한 체계가 생겨남
. 국가체제 : 권력과 국민집단이라는 이름의 혹은 구민집단의 이익을 위한 기획
. 상품화폐관계의 체계 :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화폐로 재단하는 곳에서는...
정의와 번영의 지배란 불가능하다.”라는 예언의 체계

2장 세 혁명의 세기(18세기)
- 18세기
. 계몽의 세기, 세계무역의 세기, 농업/제조업에서 시장 생산이 발달한 세기,
영국 자본주의 강화의 세기(네덜란드는 쇠퇴, 프랑스는 미성숙)
. 19세기 산업혁명의 여건이 조성 : 인클로저, 농촌대중의 프롤레타리아化,
누적적인 축적운동, 기술진보 등
. 시장관계의 전개와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모순이 가속화되는 시기

1. 식민지 지배, 강대국 간의 경쟁, 아메리카 혁명
- 루이14세가 일으킨 전쟁으로 프랑스는 국력을 소모했지만 영국은 해상 우위권을
확보하여 아메리카의 금 생산(10t->20t)과 아프리카 노동력의 착취로 16~18c의
부르주아적 치부 및 자본축적의 기본 토대를 마련함
- 막대한 잉여가치의 창출로 유럽의 민부를 증대시킴
- 수많은 무역회사의 설립과 식민지 창설 => 유럽 국가 간 전쟁을 불러옴
- 영국의 승리는 세계패권시대를 열었고 영국 자본주의의 지배력이 확장됨
- 북미 남부의 개발은 농업적이고 노예의존적인 반면 북동부는 농업, 상업, 제조업
세 분야로 활성화됨
- 서부로의 영토 확장은 프랑스/스페인의 존재, 인디언의 저항에 부딪힘
- 식민화된 농민 및 도시 노동자 계층의 출현은 영국 본국과 갈등으로 표출됨
- 1776년 7월 4일 : 독립선언문과 협정서를 채택, 독립전쟁은 6년 간 지속됨
-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나면서 아메리카의 탈식민지화를 초래하였으며
이는 후에 놀라운 자본주의의 비약적 발전을 부르고 제국주의를 출현시킴

2. 프랑스 부르주아지 귀족의 대립 :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혁명으로
- 인구의 10% 정도만 자신의 처지에 만족을 함
1) 부르주아지 대 귀족
- 1만 가구 정도만 유복했고 그중 일부는 고위 귀족이었음
- 루이14세가 죽자 관직에서 멀어져 있던 귀족들이 복직을 시도했으나 노력과
근면의 부족으로 다시 절대 군주제로 회귀함
- 평민은 고위직에서 배제됨 그러나 많은 평민은 사업을 발전시키고 부를 축적
- 그러나 대부분의 하층민(노동자, 농민, 무직자 등)은 초근목피로 생활함
- 그렇다고 식민지무역과 제조업 덕분에 부를 쌓고 힘이 세어진 부르주아는 아직
국사에서 배제됨
2) 이데올로기의 동요
- 18세기는 과학적 탐구와 발견의 시대, 철학사상의 배경이 깔려있음
- 인간의 진보는 개인의 지적 진보, 정신과 인식과 자각의 발전으로 뻗어나감
- 130명의 공동저작인 철학적, 과학적 대전인 “백과전서”가 부르주아에게 보급됨
- 이 책이 “신학대전”을 능가하므로 교회가 비난을 하지만 소용없었음
① 민주주의, 자유, 일반의지
- 권력, 정치체제, 법과 권리, 사회계약 등에 대한 사색이 지속됨
-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 공화, 군주, 전제군주 등 여러 정치체제를 고찰
. 주권자의 의지가 곧 주권임 :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군주이자 신하이다.
. 영국의 입헌군주제를 극찬
- 루소의 “사회계약론” : 민주주의, 자유, 사회계약의 새로운 사상을 확립
.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다.
. 시민적 권리를 주장, 국민이 주권을 일반의지라 함
. 정부가 하는 일과 권력은 시민이 하는 일과 권력과 동일해야한다고 주장
. 루소는 민주주의(우리가 말하는 직접 민주주의)가 작은 나라에서 합당하고
오히려 해악이 적은 귀족 선출제(우리가 말하는 대의 민주주의)를 선호한 듯함
- 인민주권, 일반의지, 자유 등등 : 부르주아 혁명의 대주제가 마련됨
② 평등과 소유권
- 상인자본주의의 현실 앞에서 농촌과 도시의 빈곤과 참상에 분개하기 시작
. 매혹적인 유토피아 전통선상에서 이 상황을 새로이 다듬는가 하면
. 다른 사람들은 동정심과 자비에 호소함
- 루소 : “백과전서”의 ‘정치경제학’을 담당하여 저술
.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제안한 사회계약을 혹독하게 비판
. 부는 부를 부른다. 무산자들이 무엇인가를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빈부의 격차는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 “인간 불평등 기원론”
. 그렇다고 해서 루소가 사적 소유의 폐기를 지지한 것은 아니다.
- 에티엔 콩디야크의 형제인 마블리 신부
. 인간을 괴롭히는 주된 원인이 사적 소유 때문이라고 비판
. 국가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개인에게 필요한 것을 배분하는 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경제학임을 주장
- 클로드 엘베티우스
. 대부분의 나라에는 부자와 빈자라는 두 개의 계급뿐이 없다.
. 많은 사람 것을 줄이고 없는 사람 것을 늘려주어야 한다.
. 경장되지 않는 땅은 평민 대중에게 돌려줘라.
- 레날 신부 : 불평등과 부를 “두 인도의 철학사”에서 비난
- 시몽 랭게
. 불평등을 더 거세게 비난(“시민법 이론 혹은 사회기본 원리” 등)
. 부자의 부를 만들어 내는 것은 피고용인의 생명인 것이다.
. 노동자들은 팔 것이 자신의 팔뿐이다.
③ 경제학자들의 사상
- 볼테르 : 자본주의란 부자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들에게 항상 더 많은 일을
시키게 하는 체제
- 루소 :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논리를 펴는데 사회주의 사상의 기초가 됨
- 프랑수아 케네 : 중농학파의 대표자로서 부가 농업에서 나온다고 주장한
농업자본주의 이론가(당시 머물고 있는 자본주의 수준)
- 튀르고 : 중농주의 영향을 받아 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경제 현실에 대한
풍부한 경험으로 1766년부터 매뉴팩처 자본주의에 발전을 주시함
. 계급을 분석 : 대자본의 소유자와 단순한 직공(마르크스에 가까움)
. 매뉴팩처 자본주의를 옹호, 통제경제와 보호주의를 반대함.
. 경제적 자유를 인정함 : 그대로 내버려둬라
- 18세기는 군주제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적 무기고가 형성됨
. 귀족의 특권에 문제를 제기하는 무기(자유, 평등)
. 농민과 도시수공업자들을 규합하는 무기(자유, 평등, 소유권)
. 제조업자와 상인의 열망에 부응하는 무기(생산과 교역의 자유)
- 1789년 프랑스대혁명으로 왕이 처형됨
. 노동자 : “빈민의 요구”를 통하여 가혹한 임금 개선, 노동인구의 보전을 헌법상
목표가 될 것을 요구(노동자의 생계 보장요구)
. 르 샤플리에 법(1791) : 고용주건 노동자건 조직화와 공모행위의 금지
. 부르주아지들은 귀족에게 승리할 것이 확실해지자 노동자계급에 맞서 방어시작
3. 영국 산업혁명의 여명기
- “동인도 무역에 관한 고찰”(1701) : 익명으로 출간됨, 분업과 대량생산을 예상
- 영국도 농업 중심이었으나 식민지 착취에 기인한 세계무역의 가속화는 변화 초래
1) 식민지 수탈과 세계시장
- 17세기 말 독점 동인도 회사는 비난의 대상이었음
. 특권이 없는 상인들이 경쟁사 설립(1698)
. 두 회사의 합병으로 유나이티드 회사 설립(1709)
- 잉글랜드 은행 설립(1694) : 지폐발행권 획득, 외국환업무
. 지방은행이 속출 : 런던의 은행 수 52개(1786), 지방은행 수 400개(1793)
. 교역의 세찬 팽창으로 영국이 전체가 변해감
- 무역의 발달은 : 수송수단의 개선으로 수송비 절감, 상품유통 촉진, 생산 증가
. 18세기 중반 : 도로망 건설
. 1720년 경 : 운하 건설
2) 자본주의적 생산의 등장 : 공장
- 인클로저 운동이 18세기에 다시 격렬하게 전개 : 부자권세, 빈자고통
. 경작방법의 개선으로 농민은 생계수단을 박탈당하여 광업과 제조업으로 고용됨
. 임금제도가 확대되었지만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
- 생산방식의 개량
. 수공업 형태의 가공산업도 18세기 후반부터 공장제도가 가속화
. 생산증대를 위한 기술적 발명이 이루어짐
. 견직기계, 용광로 실용화, 증기펌프, 수력방적기, 제임스 와트 증기기관 발명,
. 농촌을 떠나온 빈민 프롤레타리아에게서 노동력을 확보함(여자와 어린이 위주)
- 영국의 생산의 자본주의적 변화가 시작되어 산업혁명으로 명명됨
. 생산이 비약적으로 증대되고 임금 노동자 역시 증가 : 노동자 투쟁 조직화
. 국가는 빈민 치안 및 노동자 소요 억압이라는 보호주의적 조치 실시하며 또한
중상주의 정책의 특권과 독점 부여 등 광범위한 역할을 함
- 부르주아지의 융합이 자리를 잡아감 : 상인-<제조업자, 제조업자->은행가가 됨
3) 정치경제학과 자유주의의 전개
- 자유주의 사상과 새로운 경제현실의 인식이 병행됨
- 리샤르 캉티용 : “무역 일반의 본성에 관한 시론”에서 풍부한 화폐는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국가의 힘이 되지만 그것은 점차 보이지
않는 사이에 국가를 궁핍으로 몰고 간다고 주장
- 흄 : “경제시론”에서 자유주의적 논리를 설파
. ‘부는 귀금속의 풍부함에 있지 않다고 강조하며 풍부한 귀금속은 물가의 등귀를
일으켜 무역수지의 불균형을 가져오기 때문임’이라고 함
. 사람은 규칙이 아니고 이기심에 의하여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
- 애덤 스미스 : 흄을 추종함
. “도덕감정론(1759)”에서 시욕의 추구에 기초한 사회질서를 강조하고 심화시킴
. ‘보이지 않는 손’을 제시함
.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비참한 빈궁함에 눈을 감았던 사람
. 자본에 관심을 갖고 자본이 사용되는 형태를 분석 및 자본의 활동을 분류
. 불평등을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기존의 사회질서를 옹호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는 시민정부가 재산의 안전을 그 목표로 삼는 한 현실적으로 빈민을 억압
하고 부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립하게 됨을 의미
- 토머스 페인 : 자유주의적 유토피아를 극단적으로 묘사
. “상식(1776)”에서 ‘사회는 우리의 필요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고 정부는 우리의
약함에 의하여 생겨난 것으로 사회는 언제나 축복이지만 정부는 필요악에
불과하다고 기술
. “인간의 권리(1791)”에서 일반적인 시장사회가 성립되면서 정부의 필요성은
소멸된다고 주장
- 국가의 소멸을 예견하거나 주장할 것도 없이 지배계급인 자본주의 부르주아지는
여기서 무궁무진한 이데올로기적 자료를 발견함
4. 2장의 요약
- 공장의 등장과 함께 18세기는 “전통적인 농민의 초과노동 착취 및 식민지의
약탈“이라는 두 가지 원천으로부터 자본주의가 그것에 고유한 생산양식을 갖추어
가는 때였음
- 시장 및 교역의 확대는 생산의 증대를 요구, 기술력과 동력원의 사용도 생산의
증대를 요구하여 화폐의 유통, 소상품생산, 상업적 교환 외에 자본을 이용하기
위해 조직된 생산이 전개됨
- 매뉴팩처는 이 전개를 시작하고 공장은 이를 완성하며, 인구증가와 농업생산의
근대화에 따라 노동력이 풍부해지므로 더욱 용이하게 전개됨
- 국가적 축적(기간산업, 도로, 수로, 항구, 함대, 행정기구 등)이 계속되기는 해도
부르주아적 축적은 결정적으로 변화하게 됨
- 생산적 노동으로부터 ‘순생산물’이 산출되고 이것은 무엇보다도 ‘선대’를 가져옴
이 선대(?) 덕분에 생산기반이 확장, 개선되며 이는 나중에 마르크스도 “자본에
대한 노동의 형식적 종속”이라는 이름으로 분석함
- 이 움직임의 견인차는 은행부르주아, 상인부르주아, 부유한 무역상과 제조업자,
귀족(영국의 경우) 등으로 형성되며 이들 신흥 지배계급은 “자유”라는 핵심적인
단어에 관심을 가져옴
. 영국 : 경제적 자유(국무에 관여 했으므로)
. 프랑스 : 정치적 자유(국무에 관여하지 못했으므로)
- 이는 프랑스 혁명, 미국혁명, 산업혁명으로 전개되어 저지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발흥으로 특징지어지는 새로운 시대가 열림
- 유렵사회가 각각의 변화는 읽었지만 전체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음
. 이러한 변화의 동력은 국가가 가장 강력한 것임
. 과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계몽정신을 각성시키고 자극함
. 하지만 자본과 자본가가 가지고 있는 생산, 시장, 사회, 세계를 전복시키는
거대한 잠재력을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음

3장 거침없는 산업자본주의의 발흥(1800~1870)

- 1500년은 신과 왕의 이름으로 무장 탐험대가 광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고
학살과 보물을 약탈이 시작됨
- 처음에는 국왕이 부였으나 신흥계급은 귀족과 맞서기 위하여 세력을 증강하기
위하여 왕에게 의지하였으며 18세기에는 국왕과 맞서는 국민 개념이 확립됨
- 신도 종교개혁과 더불어 분열, 해체되거나 철학자들에 의하여 추상화됨
- 귀족도 왕과 부르주아지 사이에서 힘과 특권을 상실해가며 부르주아들은 왕이
없이도 지낼 수 있게 되었으며 부의 핵심은 식민지 회사와 금융가들이 관장함
- 자본주의 형성은 국민적 부르주아지에 의해 활기를 띠었으며 국민국가에 의하여
유지되고 보호됨
- 유럽의 혁명과 그 분위기는 한 쪽에는 어마어마한 부의 축적을 다른 한 쪽은
궁핍의 심화를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함
- 격렬한 이데올로기적 대립으로 이러한 발전이 가져온 갈등이 첨예화됨

1. 세기의 전환기, 사상의 대립
- 영국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와 산업의 발전은 19세기 초에는 아직 결코 지배적인
것이 못되었으며 구사회의 계급들도 건재했음
- 당시에 전개된 논쟁은 19세기 전반을 통하여 되풀이 되고 오늘날까지 이르면서
확립됨
1) 빈자와 부자
- 고드윈은 불평등으로부터 얻은 이득(노동의 착취)을 얻는 부자들을 비난함
- 이런 착취는 사상과 가치의 영역까지 침투함 : 억압의 정신, 노예근성, 사기근성
- 맬서스는 빈들을 비난함, 빈자의 빵을 부자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님
- 모든 계약과 마찬가지로 임금도 순수한 시장의 자유에 맡겨야 하며 입법자가
관여할 일이 아님 : 구빈법(poor law)을 비난함
2) 두 유토피아의 대립
- 19세기 초부터 미래의 이상세계에 관한 두 가지 견해가 매우 광범위하게 형성됨
- 하나는 자유주의적 견해,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적 견해로 양자는 모두 만인의
행복을 약속함
- 자유주의적 유토피아
. 다른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닌 모든 규제는 소유권에
대한 침해
. 리카도 :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균형을 보장함 => 상호 이익을 보장하는 것
. 프레데리크 바스티아 : 정부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질서유지, 안보, 정의에
국한되며 이를 벗어나면 인간의 자유를 침탈하는 것
. 자유방임(laissez-faire)하면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관리가 될 것이며
규제(empeche de faire)를 하면 자유와 지갑에 불행한 사태가 생길 것임
- 사회주의적 유토피아(1830년대부터 이와 같이 불림)
. 평등주의, 박애주의, 우애주의 등으로 불리며 자유주의와는 대립함
. 프랑스 혁명기간 앙주와 프랑수아 바뵈프, 모반, 실뱅 마레샬의 글에 표현됨
. 뉴턴의 찬미자인 생시몽고하 푸리에는 혐의스런 노동에의 노예화를 비난함
. 로버트 오언은 최초로 자본주의 산업의 ‘사회주의적 고용주’가 된 사람 중 하나
. 훗날, 마르크스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뒤에 올 것임을 논증함
3) 부는 어디서 오는가?
- 경제학자들은 스미스의 저서에서 이러한 기번적인 질문을 계승함
- 영국인 ‘리카도’와 프랑스인 ‘세’는 아주 대조적인 태도를 보임
. 세
+ 낭트직령으로 제네바로 추방된 상인의 아들->은행서기->영국여행->
프랑스혁명애서 지원병으로 근무->면방적공장설립->공예학교 강의->교수
+ “정치경제학 개론 혹은 부의 생성과 배분과 소비 방식에 관한 간단한 설명”
간행 및 “라 데카드”지에 기고
+ 생신이란 효용가치를 증가시키는 것, 노동/자본/토지라는 3요소가 생산에
기여하며 그 기여도에 따라 보상을 받으며(정치경제학 문답집, 1817년),
노동자와 자본가, 지주의 이해는 일치함
. 리카도
+ 네덜란드에서 이주한 유대인 은행가 아들->증권거래인->증권투기성공->
부동산 구입->국회의원
+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 출간
+ 효용의 크기가 가치를 결정할 수 없고 생산의 난이도가 가치의 척도(1),
노동자와 자본가, 지주의 이해가 대립됨(2)
- 기계에 대한 입장은 세와 리카도가 일치함
. 세 : 기계의 사용은 새 기계가 사용되기 시작하는 시기에만 노동자에게 해로움
. 리카도 :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은 때때로 노동계급에게 대단히
무겁고 고통스러운 부담이 됨
2. 산업자본주의의 발전
- 19세기 자본주의는 이전의 그것과 기계화를 통한 생산양식 확대에 의해 발전
- 이전의 매뉴팩처 공장에서는 노동력을 최대한 착취하여 생산을 늘렸으므로
참상과 억압 속에서 근대적 노동자 계급의 핵심이 형성
1) 영국 자본주의의 전진
- 세계적 규모의 자본주의적 공업화는 세 번의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진행
. 1780~1880, 1880~1950, 1950~오늘날
. 산업휴영에 따라 부문적이며 나라와 지역에서 지리적으로 두드러진 확장으로
특징지어짐
. 1780~1880에는 면공업, 철공업, 철도레일의 세 분야에서 높은 성장률과 성과를
가져옴
. 수력발전과 증기기관의 이용한 기계화, 유순하고 값싼 노동력 고용
. 뒤이어 프랑스, 독일, 미국으로 확대되고 가속화됨
. 천년왕국인 농업생산이 해체되기 시작함 : 도시화 촉진
. 18세기, 19세기에 이어 가속화
- 영국은 공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반면 프랑스는 늦고 소비재 공업생산 위주
- 이와 동시에 ‘직업’, ‘경제활동의 성격’이 변하고 비중도 바뀌면서
새로운 계급구조가 나타남
2) 새로운 계급구조
- 전체적인 수치로 보아 공업고용의 증대, 도시화, 임노동자화가 진행됨
. 프랑스와 미국에서는 농촌과 농업분야의 수적 우세, 영국은 공업, 교역, 서비스
및 사무직 등의 분야가 고용의 2/3~4/5를 차지함
. 영국의 이농, 몰락한 수공업자, 인구증가가 비참한 노동자 군을 형성
. 남아도는 노동인력은 공업노동자가 붐비는 도시로 퇴적됨
. 대도시에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대립이 격화됨
- 임노동자화 : 영국에서 가장 빨랐음
3) 노동자계급의 이질성
- 엥겔스 : 공장 노동자의 가혹한 노동 조건, 생활 상태, 낮은 임금을 폭로하며
공업체계를 통해 “부르주아가 프롤레타리아를 속박해온 노예제도”임을
강조함
- 영국의 공업체계
. 이전체계 : 수공업, 가내노동, 매뉴팩처, 구빈원, 18세기 말에 등장한 공장형태
. 공장체계는 새로운 형태의 가내노동인 고한제도(苦汗制度, sweating system)임
. 기계화는 어린아이조차 간단하게 익히는 기능을 제공
. 비인간적인 착취노동이 공업발전의 토대가 됨
- 프랑스의 공업체계
. 수공업생산과 공장생산의 영역은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임
. 발자크 : “아르시의 국회의원”에서 프랑스의 면직물의 전부가 트루아의 사방
4Km이내에서 생산됨
. 리옹 견직업은 수공업 종사자가 공장 노동자보다 2배가 많았음
. 장시간 노동, 비위생, 영양부족, 아동노동, 질병과 사고, 혹독한 착취 등 영국과
유사
4) 부르주아지의 확립
- 자본주의의 형성은 노동자 계급의 구성과 새로운 지배계급의 등장을 가져옴
- 상층금융 및 국제무역의 대가문, 상인, 제조업자, 선주, 은행가, 국회의원, 법률가,
법학자, 사업에 참여한 귀족과 젠트리 가문, 그들과 혼인한 인척, 학연, 공업 등의
사람들이 사회의 주도적 계급인 부르주아지로 자처함
- 17세기 절대왕정의 타도는 토지귀족 및 부유해진 계급들의 토지구입은 의회
진출의 수단이 됨 :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미동함
- 부르주아지의 등장
. 영국 : 부르주아지가 귀족과 대립하면서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지배계급화
되었으며 이의 등장은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를 특징짓는 것은 사실임
. 프랑스 : 부르주아지의 등장은 영국과는 다른 여건이라서 영국보다 덜 명확하며
이들은 소부르주아임 소농민과의 동맹이 필요했음
. 독일(프로이센) : 부르주아지 혁명이 없었으며 비스마르크 치하에서 토지귀족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국가지원을 받아 내부적으로 자본주의
국가를 향하여 변해갔음
. 미국 : 유럽과는 다른 환경 속에서 전쟁 중에 자본가가 형성되며 자유로운
자기발전의 길을 걷게 됨
5) 식민지배와 세계시장
- 영국
. 50개의 식민지를 확보하여 나폴레옹 전쟁이 끝날 무렵 바다의 주인이 됨
.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며 최강의 상업국가
.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무역은 적자
. 19세기에 세계 최초의 식민지 제국 확립하였으나 미국의 독립 이후 축소
. 이에 자본주의적 공업화와 교역확대 과정에서 영토 확장 정책 추진(아프리카,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아덴, 홍콩, 캐나다, 인도 전역)
- 프랑스
. 같은 기간에 프랑스는 미국, 유럽국가, 여타의 세계로 확대해나감
. 왕정복고 이후에 식민지 점령에 나섬
-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쇠퇴,
- 네덜란드는 안정
- 러시아는 계속 팽창 아시아로 진출

3. 자각과 저항
- 19세기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부유한 부르주아지와 가난한 노동자,
교양 있는 안락과 야만적인 불안, 권력과 종속 사이에 격렬한 대립이 일어남
- 같은 공장, 같은 도시에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함
. 질서와 평온과 온당한 취미가 지배하는 구역
. 불결과 혼탁, 저속, 불안이 지배하는 불건전한 구역
1) 노동자운도의 성숙
- 노동자의 투쟁 : 19세기에 기아와 궁핍으로부터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행동
- 조직화와 결사, 단결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룸
. 구조단체나 공제조합, 협동조합 같은 단체를 결성
. 오언, 푸리에, 피에르 프루동 등의 사상이 보급되어 토론되고 왜곡되어 적용
- 사회주의 사상 : 19세기의 거장들
. 오귀스트 블랑키, 프루동, 미하일 바쿠닌, 엥겔스, 마르크스
. 생시몽주의자들 : 직접 노동자와 함께함
. 플로라 트리스탕 : 여성의 억압ㄱ솨 프롤레타리아트의 억압을 비난
. 존 스튜어트 밀 같은 고정 경제학자도 노선을 지지
- 다양한 노동자 계급의 내부 충돌도 하였지만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위해 싸우는
여러 세력과도 접촉을 함
- 영국
. 오언 : 영국의 대표적인 노동운동가
. 대규모 대중운동인 차티스트 운동(1838~48)에 노동자들이 투입됨
. 정치적 민주주의 확립, 보통선거 등이 목표였으나 혼란 속에 무너짐
. 19세기 중반 이후 이민이 배출구 역할을 함
. 실질임금이 상승하고 착취의 조건이 완화됨
. 부르주아지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
- 프랑스
. 1830년 노동자들이 샤를10세를 축출, 계속되는 파업, 폭동, 가두운동으로 표출
. 1848년 2월 실제로 공화국이 선포되고 보통선거권과 노동의 권리가 승인됨
. 불안을 느낀 자산가가 합쳐서 노동자 수천 명이 죽고 알제리로 추방당함
. 노동의 권리가 노동의 자유로 바뀌고 대통령을 보통선거로 선출하게 되었으며
초대 대통령이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노사분쟁조정위 설치, 빈곤퇴치추진
- 독일
. 1844년 슐레지엔 방직공의 봉기 : 격렬한 유혈투쟁
. 1862년 페르디난트 라살이 독일 노동자총연합을 결성
. 1867년 보통선거 규정
. 1869년 사회민주당이 결성
- 미국과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서도 노동운동이 강화되고 노조가 조직됨
. 런던에서 국제노동자 협회 창설
. 노동운동의 새로운 차원이 열리고 국제주의를 구체화한 시도
- 부르주아지가 지배계급에 오르자 노동자 계급도 사회적 세력으로 인식됨
. 스스로 정당, 노조, 신문, 조직구성의 수단을 갖춤
. 자본주의 변화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됨
2) 자본주의 분석으로의 “자본론”
- 마르크스 : 고전 경제학자의 고찰, 자본주의를 지켜본 경험자들,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을 통하여 방대한 이론적 노력과 직관으로 자본론을 체계화함
. 계급의 존재는 오직 생산의 발달과 관련된 어떤 명확한 역사적 투쟁에 결부됨
.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이르게 됨
. 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자체는 단지 모든 계급의 폐지와 계급 없는 사회를 행해
나아가는 과도기에 불과함
- 계급투쟁 :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
. 인간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장인과 직인, 요컨대 이들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계속되는 상호대립 속에서 끊임없는 투쟁을 수행
. 이 투쟁은 언제나 사회전체의 혁명적 전복으로 끝나든가 아니면 투쟁하는
계급 공동의 몰락으로 끝남
- 투쟁의 토대
. 인간의 표상과 이념 등을 만든 것은 인간이지만,
. 현실에서 활동하는 인간은 그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과 그에 조응하는 온갖
형태의 관계에 의하여 조건 지어져 있음
- 계급투쟁의 전개 : 아시아적->고대적->봉건적->근대 부르주아적 생산관계로
경제적 사회구성체가 전진해온 각 시대
- 계급투쟁의 절정 : 자본주의와 함께하며 절정에 이르되 서로 대립하는 양대
적진, 양대 계급인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 나뉨
- 자본주의의 붕괴 : 모순의 심화로 가게 되는 길
. 소유관계에 대한 근대적 생산력의 반역의 역사
. 사회가 지나치게 문명화 하여 생활수단과 상품이 지나치게 많아져 공업과
상업이 절멸
. 생산력은 부르주아적 소유관계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으며 이 부르주아적
소유관계가 생산력을 감당하지 못하게 강력해짐
. 생산력이 부르주아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그 소유권의 존립을 위협
(부르주아 체제는 자체 내부에서 창출된 부를 계속 유지하기에 너무 협소해짐)
- 계급사회의 종식
. 해방의 적극적 가능성은 한 계급이 형성되어야 함
. 이 사회를 해체하는 하나의 특수한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그것임
- 근대의 메시아는 프롤레타리아트인가?
. 마르크스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답함
.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상황에 축약된 현 사회의 모든 비인간적인 생활조건을
타파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생활조건을 지양할 수가 없음
.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고유의 모든 수취양식을 폐기해야만 사회의
생산력을 장악할 수 있음
. 그렇지 않다면 적대적인 부르주아 사회의 내부에서 발전하는 생산력은 동시에
적대 관계를 해체하는 물질적 조건을 만들음
- 마르크스의 확고한 신념 : 부르주아지와 더불어 사적 소유권은 붕괴가 되고
노동자계급의 승리로 신분 계급투쟁은 영원히 끝남
. 마르크스는 이 신념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데 열중함
. “정치경제학 비판요강” : 생산관계는 사회의 생산력 발전의 진보적 형태이던
것이 이제 생산력에 대한 질곡으로 변하며 그리되면
사회변혁의 시대가 열릴 것임
. 마르크스의 연구목표
① 자본의 생산물로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생산물로서의 상품
② 잉여가치 생산으로서의 자본주의적 생산
③ 모든 사회관계의 생산과 재생산으로서 자본주의적 생산
- 자본론의 탄생(1867년)
. 서문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는 ‘상품의 거대한 집적’
으로 나타나고 개별상품은 그 부의 기본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의 연구는 상품을 분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 상품(판매될 물품), 사용가치(상품+교환가치), 가치(원가), 잉여가치(이익)를
고려할 때 자본은 죽은 노동이며 흡혈귀처럼 산 노동을 빨아먹어야 살아나는
존재(이해하기 매우 어려움)
.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가에게 파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이며 노동력은
노동자와 그 가족을 부양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에 의해 결정됨
. 노동력의 가치보다 더 많이 생산하도록 강제되기 때문에 노동자의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임
. 노동착취율을 증가시키고 잉여노동과 잉여가치의 수취를 증가시키는 것은
노동시간의 연장과 노동 강도의 강화에 의하여 이루어짐
- 필연적으로 자본주의가 붕괴되는 기초가 마련됨
. 자본주의 축적과 확대재생산, 이윤율 저하 경향, 공황, 프롤레타리아 화 등
. 마르크스가 가장 큰 영향력을 남긴 것은 무엇일까?
+ 지배계급에서 멸시를 받아온 세력 그의 사상은 신흥 지배계급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
+ 엥겔스라는 선동가를 발견함 : “유물론적 역사관” 그리고 “잉여가치”를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의 신비를 폭로했다는 것.
- 엥겔스는 사회주의가 하나의 과학이 될 수 있었던 것
. 유물론적 역사관과 잉여가치라는 것은 위 두 가지를 발견한 것
. 이후 과학적 사회주의 외 공상적 사화주의가 대립하게 됨

4. 3장의 요약
- 19세기의 2/3의 시기는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맹렬하게 발흥
. 농민의 초과노동 착취 -> 자본주의적 노동 착취 -> 임노동자와 함께 더불어
진전 -> 세계적 규모의 가치착취(식민지 착취 및 부등가교환)가 자본축적의
중요한 원천이 됨
. M->C(mp/lp->P->C'->M'이라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논리가 보편화됨
. 잉여가치의 배분은 자본가 상호 간의 맹렬한 투쟁을 통해 결정됨
- 부르주아지의 등장
. 부르주아지의 부와 권력은 19세기 노동자들의 극심한 궁핍에 의하여 증대됨
. 1860년대에 노동자 세계의 조직은 중대한 전진을 이룸
- 이 시기에 경험한 자본주의의 두 차례 위기로 궁핍과 기아가 가혹하게 몰아닥침
. 경제학자들은 구제책을 제시하기 위한 연구를 함
. 사회주의자들은 이를 고발하고, 마르크스는 이를 분석하여 필연적 붕괴를 예언
- 19세기 전반에 자유주의적 유토피아와 사회주의적 유토피아가 대면하게 되어
적어도 20세기 말까지 살아 있었음
. 자유주의적 유토피아
+ ‘수요와 공급의 법칙’, ‘한계효용이론’을 내걸고 ‘과학적 이론’의 모습을 갖춤
+ 존 스튜어트 밀은 지속적인 정상상태(正常狀態)가 이룩되어 인류가 생산성
높은 사회의 안락함을 누릴 것으로 봄
.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 ‘과학적 사회주의’의 분석에서 유래하는 ‘역사적 필연성’으로 둔갑
+ 마르크스에 의하여 공산주의(共産主義)의 강림(降臨)을 예고함
- 튀르고, 스미스, 고드윈, J. B. 세, 리카도 등 나름대로의 새로운 출현을 고찰
- 마르크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고찰인 ‘자본론’과 예언은 큰 파급력을 보임
. 자본론은 정치경제학적인 수많은 저작을 촉발시키고 또한 어리석은 교리문답을
범람하게 만들음
. 사회적 관계의 복잡성 및 국가와 정치의 현실 등을 무시하게 만들고 전체적
변화를 파악하는데 방해가 됨
-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은 19세기 산업자본주의의 진면목이 대상
. 그 이전의 상업자본주의, 은행자본주의, 매뉴팩처 자본주의를 이해하는데
유용하지 못함
. 20세기 산업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는 더욱 부적절하고 장애가 됨
- 자본주의 일반에 대한 고찰이 필요함
. 이윤추구,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이 확대된 축적과 재생산 또한 따라서 시장의
확대 등이 본질을 이룸
. 자본주의가 지닌 변화의 힘이 기본적이고 핵심적이며 본질적인 것임
+ 생산과 사회를 ‘혁명’(마르크스)하는 자본주의의 경향
+ ‘창조적 파괴’(슘페터)의 능력
- 산업혁명과 산업화와 더불어 자본주의가 획득한 전례 없는 변화의 힘
. 영국에서 진행된 생산체제와 생산계급, 의식구조와 가치관, 존재양식과 소비
양식, 운송과 통신 등의 대대적 변화
. 이로 인하여 유럽 각국으로 줄을 잇고 인도를 비롯한 세계로 영향을 미쳤으며
미국도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길을 걸어감
. 기술의 발전으로 자본주의의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지며 자본주의 변화의 힘은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됨

2017.08.04.쇠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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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돌고도는 영등포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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