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順序)의 망각]
한때 기억(記憶)과 언어(言語)를 잃어 가던 어머니가 얼마 전부터 정신이 맑아지더니 그래도 그 상태가 오래 지속이 된다. 오늘이 12월 10일이니 벌써 3주 정도 그런 상태를 어머니가 보이니 한 편 마음이 기쁘다. 전에는 병실을 찾아도 누가 왔는지를 몰라보아 멍하니 바라만 보았지만 이제는 그래도 아들이 왔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그래서 짓궂게 나는 어머니에게 ‘내가 누구유?’하고 물어본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들!’하고 대답을 한다. 이어서 ‘내 이름이 뭐유~?’하면 어머니는 “김영로”하고 내 이름을 말한다. 매번 같은 질문이지만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들을 몇이나 두었지유?’
- 셋
‘딸은 몇이유?’
- 하나
‘큰 아들 이름이 뭐유?’
- 김영호
‘둘째 아들 이름은?’
- .........
‘막내는?’
- 김영식
‘딸 이름은 뭐지유?’
- 김영숙
‘나는 몇째 아들이유?’
- 김영로
‘내 이름이 뭐유?’
- 둘째
참 이상한 일이다. 어머니는 나에 대해서 물어보면 나를 알아보고 이름을 말하고 둘째라는 것도 알지만 아들 아름을 순서적으로 물어보면 알지 못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오늘은 일요일이니 11시 반이 넘어서 마을버스를 집 앞 정류장에서 타고 거대한 공사장이 된 신길5동과 신길3동을 한 바퀴 돌아 신길7동으로 들어가 대방동 성당 앞에서 내린다. 지하 마트에 가서 어머니가 좋아하는 요구르트를 사가지고 병실로 올라간다. 식사가 나오는 12시가 다 되어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긴 복도를 보니 입원실 문 앞에 간병인들이 서서 배식 카트를 기다리는 것이 지난 날 군에서 우리가 점호를 받기 위한 내무반 막사(幕舍)를 떠올린다.
겨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식사 시간에 맞추어 어머니에게 와서 미음(米飮)을 입에 떠 넣어드린다. 어머니는 치아(齒牙) 때문에 이미 알곡으로 된 식사를 못한지 오래되었고 더구나 전해질의 부족으로 매 끼니마다 작은 소금을 한 봉지씩 미음에 섞어서 식사를 해야 한다. 미음을 입에 떠 넣을 때 마다 어머니는 잘 받아 드신다. 그런데 오늘은 반 정도 드시더니 그만 먹겠다고 하신다. 그러지 않아도 연하기능이 약해져서 노인들이 식사를 못하면 비위관(鼻胃管)으로 엄청난 영양식을 공급하므로 침대 위에 그대로 누운 채 오히려 체중이 불어 환자가 더 고통스러우니 이 문제를 어이하느냐고 간병인들이 모여서 하는 말을 들은 터라 혹시 어머니가 미음도 넘기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여 걱정이 된다.
간병인에게 전에도 식사를 저렇게 반 정도 만 드신 적이 있었느냐고 물어보았지만 간병인은 “할머니가 미음을 잘 넘기지 못하지만 말을 못해 그냥 입에다가 떠 넣을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전보다 말을 잘 해서 드시기 싫다는 의사표현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니 조금 더 두고 보도록 하지요. 이따가 배가 고프다 해도 간식을 두세 시간 간격으로 드리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한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엄니!
나도 점심을 먹으로 가야하니 편히 쉬다가 잘 주무세요.
빠이빠이~”
정신이 맑아진 이후로 내가 병실을 떠날 때면 어머니도 빠이빠이 하면서 손을 곧잘 흔든다. 병실을 떠날 때면 가지마라고 하던지 언제 다시 올 거냐고 어머니가 말하면 정말 돌아서는 발길이 무겁다. 병실을 떠나 밖으로 나오니 아침에 내렸던 눈이 녹아 길을 적셨고 이면도로(裏面道路)에는 잔설(殘雪)이 남아 발길이 미끄럽다. 신길동의 많은 주택가가 아파트로 재건축을 하는 중이라 집들을 모두 철거하여 공사장 전체가 눈 덮인 야산이 되었다.
저 눈 덮인 야산을 넘어가는 나그네가 되어 오늘도 어머니의 편안한 밤이 되기를 기도한다.
2017.12.10/해가 나도 차가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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