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는 뒷모습]
정유년 섣달인지라 망할 망자 망년회인지 잊을 망자 망년회인지는 모르지만 망년을 위하여 하루하루가 매우 바쁜 일상이다. 그래서인가 어머니의 병문안이 일주일 정도 뜸했다. 그 망년회가 하루도 빠지지 않음에 오늘도 어머니를 볼 수가 없을 것 같아 점심시간에 잠시 병원을 들렀다. 일주일 만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표현능력이 저하되어서 그럴까? 나를 바라다보는 어머니는 어딘지 모르게 모르는 사람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전히 나는 어머니에게 내가 누구임을 확인시키느라 내가 누구냐고 물어보지만 안타깝게 어머니는 입만 실룩거리며 말을 하지 못하다가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아들~!!”이라는 한 마디를 아주 힘들게 내뱉는다. 최근 들어서 그래도 어머니의 정신이 맑아져서 마음 한 편이 기뻤는데 그나마 그런 상태를 계속 유지했으면 하는 마음 절실하다.
시간이 되어 다시 어머니 곁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어머니에게 “빠이빠이”를 권한다. 정신이 흐렸던 달포 전만 하더라도 가는지 오는지 모르고 손을 흔들어도 그저 멍하니 허공만 보던 어머니가 이제는 모포 속에서 손을 꺼내어 손을 흔든다. 골절이 되었던 손에 힘이 붙는지 침상에서 일어나려는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는 문밖으로 사라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계속 손을 흔들며 시선을 고정시킨다. 마치 가지마라고 말하는 듯이 말이다.
지금 어머니는 아니 그 방안에 있는 모든 할머니 환자들은 그렇게 다녀가는 가족들의 뒷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1974년 초가을 날 쯤 되었을 것이다. 신촌 창천동의 어느 골목에서 자취를 하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밥이라도 제대로 끓여 먹는지 궁금하여 쌀이며 김치며 밑반찬을 마련하여 보자기에 바리바리 싸들고 담뱃재와 쓰레기와 빨래거리로 가득 찬 아들의 자취방을 찾아온다. 지금 같이 휴대 전화기가 있어 오고감을 쉽게 통보하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문을 열고 나타난 어머니에게 “응~ 엄마 왔네!!!”하고 바라다보던 그런 철부지 대학생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오시면 그 동안에 입었다가 방구석에 처박아 놓았던 옷가지 등등을 종일 수돗가에서 빨고, 청소를 하고 환기도 시키고 순식간에 자취방을 변화시키고 석유곤로에 불을 지핀 다음 아들이 먹을 밥과 국을 짓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어머니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하는 말을 잔소리로 듣고 짜증을 부렸던 것이다. 아마도 조금 뒤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서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하는 일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바빴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이며 이때는 할머니가 불치의 병으로 신음하고 있었을 때이니 아마도 마음부터 바빠 빨리 아들의 자취방을 치워주고 다시 증평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끝나면 삶에 당장 필요 없는 살림을 챙겨서 다음에 올 때를 대비하여 가지고 돌아가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필요 없는 물품도 물품이지만 반찬이나 먹거리를 담는 용기도 구하기 어려울 때였으니 다음번에 오실 때를 생각하여 이런 저런 물품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돌아갈 채비를 마친다. 그리고는 여전히 술 많이 마시지 말고 담배 적당히 피우고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면 나에게는 그것이 잔소리가 되어 뇌리에 꽃인다.
잠시 뒤에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야 하는데 왜 어머니는 시골로 가시지 않는 것일까? 이윽고 어머니는 주섬주섬 챙겨놓았던 짐 꾸러미를 들고 머리에는 커다란 다라를 이고 길을 나선다. 골목으로 나와 어머니의 뒷모습을 본다. 저 골목 끝으로 사라지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사실 마음에 두고두고 남아 왔다. 그것은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말 생각이 있는 아들이었다면 어머니가 이고든 다라와 짐 보따리를 들고 을지로 3가에 있는 고속버스 터미널까지는 못가더라도 신촌로터리 시내버스 정류장까지는 들어다 드렸어야 하는데 말이다. 머릿속에는 온통 친구를 만나 놀 생각으로만 꽉 차있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나는 불효자였다. 지금 병실 문을 나서며 나는 지난 날 불효했음에 젊은 시절을 반성한다.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병상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며 손을 흔들었을까?
2017.12.20/물의 날! 원래는 대선의 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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