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Ice Cream]
예전에는 술을 한 잔 걸치면 반드시 2차, 3차를 갔다. 1차에서 소주(燒酒)를 마시고 2차로 생맥주(生麥酒)를 마시고 3차는 노래방에 가서 캔 맥주와 다시 깡 소주를 번갈아 마시면서 노랫가락으로 늘어지고 메말라오는 목을 축인다. 그런데 이 코스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는 거의 쥐약과 같은 수준의 치명적(致命的)인 순서이다. 술을 마실 때야 잘 모르지만 밤이 지나고 잠을 자도 나는 알코올 분해(分解)가 늦어 해독(解毒)이 잘 안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아프고 뒤집어진 속은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힌다. 내가 어렸을 적에 본 아버지의 모습이 딱 지금의 나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술 마시는 풍속도(風俗圖)가 좀 달라진 듯하다. 술도 예전 같이 두주불사(斗酒不辭)로 많이 마시지도 않지만 조금만 마시고 2차를 생략(省略)하던지 기껏 가봐야 커피숍 아니면 아이스크림집이다. 그런데 커피숍도 이제는 식상하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스크림을 찾아 사람들이 길을 나선다. 전에는 “31번”이라는 아이스크림집이 대림3거리와 4거리 사이쯤을 가야 있었는데 다행인지 뭐인지는 모르지만 신풍역 근처에도 한 곳이 개업(開業)을 했다.
빙과류(氷菓類)의 발전에도 눈부신 면이 있다. 우리 나이의 사람들이 어렸을 적에는 네모난 나무통 속에 얼음을 채우고 “아이스께끼”라는 얼음과자를 담아서 팔던 빙과를 즐겼는데 70년대가 되면서 우유(牛乳)를 가미(加味)하여 만든 빙과류가 나오기 시작하여 얼음과자의 획기적인 변화(變化)가 왔다. 하여튼 아이스크림도 다양해지고 맛도 보강이 되어 엊그제 “31번”이라는 집에를 갔더니 “엄마는 외계인(外界人)”이라는 맛의 아이스크림을 먹는 기회가 있었다. 솔직한 얘기가 맛이 정말 좋았다. 그전에는 주스(juice)라고 하는 것도 삼각형의 비닐봉지에 오렌지 색 설탕물을 담아서 팔았지만 지금은 주스전문점이 생겨서 커다란 통에 빨대를 꽂고 다니면서 즐기는 제품으로 변모(變貌)되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생각하면 자식으로서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었기에 어머니에게 야속(野俗)한 짓을 한 기억이 하나 있다.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이니 얼추 30년 전 쯤의 일이었다. 일본에 한 달 간 교육을 갔다가 남겨서 가지고 온 돈과 생활을 하면서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을 보태서 차를 사가지고 아마도 처음으로 차를 몰고서 온 가족이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는 내 고향 증평(曾坪)을 갔을 때의 일이다. 아마도 1988년경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자식이 차를 샀다는 것은 고향에 살고 있는 부모에게도 커다란 자부심(自負心)이었다. “우리 아들 내외가 차를 사서 손주들을 태우고 집에 왔어~”하고 친구 분들에게 자랑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고향집에서 하룻밤을 부모님과 아이들과 지내고 다음 날 얼추 점심 무렵이면 서울을 향하여 길을 다시 나서야 한다. 아마도 점심식사를 하고나서 나는 차에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틀어놓고 집사람과 아이들을 모시고 트렁크를 열어 우리의 짐과 아버지, 어머니가 준비해주신 것들을 싣고 트렁크 문을 아주 세차게 쾅하게 닫는다. 이제 아버지,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아버지, 어머니는 차안에서 손을 흔드는 손자손녀에게 잘 가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그런데 어머니의 손에는 커다란 아이스크림 통이 들려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는 날도 더운데 서울을 가다가 보면 목이 탈 테니 애들하고 시원하게 먹으라고 근처의 가게에 가셔서 사 오신 것이다. 하지만 집사람이 하는 말은 차안에서 아이스크림이 녹으면 먹기가 불편하고 옷을 버릴 수가 있으니 가져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것 정도는 서울로 올라가다가 차를 잠깐 세워놓고라도 먹으면 될 텐데, 아이들의 눈치도 먹고 싶어 하는데, 손주들을 생각해서 사오셨으니 얼른 받아들고 떠났으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을 하면서도 내 입에서는 “먹기 불편하니 아버지, 어머니 드세요!!!” 하고 말이 튀어나왔다.
물론 아버지, 어머니의 입맛에는 맞지도 않을뿐더러 그 당시 어른들은 아이스크림을 즐겨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도 손주들을 주고 싶어 사온 아이스크림을 건네주지 못하니 얼마나 마음이 상하셨을까?
어머니는 그때 나의 말이 엄청 야속하셨을 것이고 솔직한 마음이 나 역시도 30년이 지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음이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인데 왜 그 당시 흔쾌히 “야~ 알았시유! 이리 주세유~”하고 받아들지 못했을까 말이다.
그러니 말이다!!!
오늘 아침에 애써 끓여놓은 짜파게티를 아들 녀석이 먹지 않았다고 야속해 할 자격(資格)이 없는 나 아닌가 말이다.
https://youtu.be/s_W-9wHTQNI
2017.11.22/해는 져서 어두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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