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영등포의 삶

[스크랩] [짜빠게티]

영등포로터리 2017. 10. 22. 16:54

[짜빠게티]

딸아이의 출산(出産)으로 집사람이 자리를 비운지 한 달이 되어 간다. 생각을 해보니 집안에 여자가 없으면 사람의 꼬라지가 꾀죄죄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러니 “홀아비는 이가 서 말”이라고 한 것일 게다. 내 딴에는 주말이 되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청소(淸掃)를 하기는 하는데 집안은 어딘지 모르게 지저분한 듯해 보이는가 하면 마루에는 먼지가 쌓인다. 정말 아들 녀석과 둘이 먹고 마시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하는 일상적(日常的)인 일들이 일상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고향(故鄕)을 떠나 자취(自炊)와 하숙(下宿)을 번갈아가며 해왔기에 먹고 마시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들이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일상생활의 수준으로 말하면 낮을 수뿐이 없지만 그래도 서툴고 품질(品質)이 낮아서 그렇지 할 일은 다 할 수 는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것이 그런 “낮은 단계의 일상생활(마치 낮은 단계의 연방제 같이 들려서 듣기 불편할 수 도 있겠지만)”에 도달하기에는 시동시간(始動時間)이 필요하다. 펄스신호(pulse信號)가 전자회로에서 상승시간(上昇時間, rising time)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주에 아들 녀석이 아침에 굶고 학교로 가는 것이 안쓰러워 인근(隣近) 마트를 가서 모닝 빵과 잼 그리고 버터를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아침에 서로가 집을 떠나는 시간이 다르니 식탁(食卓) 위에 빵을 차려놓고 보니 우유(牛乳)와 같은 마실 것을 깜빡했음을 알았지만 아직은 잠에 빠져있는 아들에게 “우유를 사지 못했으니 물이라도 마시면서 꼭 아침을 먹고 학교를 가라”고 문자(文字)를 남기고 출근(出勤)을 했다. 그런데 우유를 두 통을 사가지고 퇴근(退勤)을 해서 보니 차려놓은 아침식단에 손도 하나 대지 않았음을 발견(發見)했다. 밥 11시가 돼서야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물어보니 배가 고프지 않아서 먹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다시 아침에 되어 같은 동일한 식단에 우유를 더하여 식탁에 준비를 해놓고 다시 문자를 남기고 출근을 하였다. 그러나 보람찬 하루의 일과(日課)를 마치고 불이 꺼진 집으로 돌아와 다시 식탁과 냉장고를 둘러보니 이날도 먹을거리에 손끝도 대지 않았음을 보았다. 다시 아들에게 “저녁 굶지 말고 꼭 챙겨먹어라~ 그리고 왜 우유도 있는데 아침에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갔니?”하고 문자를 보냈지만 돌아온 대답(對答)은 저녁은 먹었는데 우유를 마시면 설사를 해서 우유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빠가 모처럼 아들을 위해서 준비(準備)를 한 것인데 조금이라도 먹고 갈 것이지 하는 아쉬움이 내 마음 속에서 묻어 나왔다.

오늘은 일요일 아침이라 기상(起床)이 좀 늦었다. 그래서 쓸고 닦는 방청소를 하고 빨래통에 쌓여있는 빨래거리를 세탁통에 넣고 집사람이 벽에다 써서 붙여놓은 지시서(?)대로 세탁기(洗濯機)를 돌렸다. 얼추 한 시간은 세탁기가 돌아갈 터이니 오랜 만에 아침 준비를 한다. 우유를 마시면 설사가 난다니 오늘은 무엇을 준비할까 고민을 하다가 짜파게티를 발견하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역시 포장지에 기재(記載)되어 있는 조리법을 참조해야만 했다. 이윽고 물이 끓어 면(麵)과 스프를 넣고 5분이 지난 뒤에 면을 건져내고 짜장 양념으로 면을 비빈다. 이제 그럴 듯하게 짜파게티가 완성이 되었다. 식탁에 짜파게티와 압접시 그리고 수저를 챙겨놓고 아들을 불러서 짜파게티를 만들었으니 아침을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 녀석의 한 마디는 “아침에는 면을 먹지 않는다.”였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것 역시 망연자실(茫然自失)이었다.

덕분에 생각지도 않게 아침부터 짜파게티 2인분을 먹고 말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들 녀석이 그렇게 야속(野俗)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솜씨가 없고 맛이 없을 것 같아도 나 같으면 네 할아버지가 이런 상황에서 아빠에게 라면을 끓여주셨다면 품질에 관계없이 참 맛있게 먹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녀석은 제 아빠가 만들어 준 음식은 맛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인가? 녀석은 그 음식을 먹어봐야 삶에 보탬이 결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말로 야속하다 못해 속이 상했지만 또 그렇다고 뭐라고 한 마디 하는 것도 어려운 것 아닌가?

야속한 마음으로 설거지를 해놓고 TV를 보다보니 녀석이 일어나 세수(洗手)를 하더니 주섬주섬 옷을 입고 학교를 가겠노라고 하며 집을 나선다. 그래도 학교를 가면 음식을 파는 식당(食堂)이나 피자, 햄버거를 파는 푸드점이 있을 것이니 굶지 말고 뭐래도 꼭 먹으라고 하니 그러겠다고 하며 녀석은 문밖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보니 세탁기가 임무를 마쳤다고 신호를 보낸다. 서툰 솜씨지만 나름대로 세탁이 된 옷가지를 빨래대에 널면서 야속한 마음을 달래본다.

그런데 TV에서는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왔다가 외지로 떠나는 딸을 보내는 아버지가 딸의 뒷모습을 보고 딸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나서 쳐다보지를 못한다고 목이 메어 얼굴을 돌린다. 그러나 그렇게 고향집과 아버지를 뒤로 하고 떠나는 딸은 그러한 아버지의 애절(哀切)한 마음을 알까? 아들 녀석에의 야속한 마음이 다시 요동친다. 순간 나 자신과 아버지와의 지난날이 뇌리(腦裏)를 스친다.
“맞아! 나도 지난날에 아버지, 어머니에게 저렇게 야속하게 한 적이 많았을 거야~ 단지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어차피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니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울고불고 할 때는 부모 또한 늙고 병들어 힘없는 노인이 되어 있을 테니 이미 늦은 것이다.
그냥 그것이 인생(人生)이겠지...

2017.10.22/해 뜨는 집(https://youtu.be/0LoGDZYll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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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돌고도는 영등포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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