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 밥도 아니다]
밥을 하는 솜씨가 서툴면 삼층밥을 만들게 된다. 즉 밥을 하면서 불 조절을 제때 못하고 뜸을 잘못 들이다 보면, 냄비의 바닥 쪽 밥은 타고 뚜껑 쪽 밥은 설어버린다. 그 나마 다행스런 것은 가운데 밥은 제대로 되니 이름 하여 삼층밥이다. 그런가 하면 물 조절을 잘못하면 죽도 밥도 아닌 것이 되어 죽인지 밥인지 모르는 경우가 발생을 한다. 결국은 어느 경우든 모두가 지식과 경험이라는 솜씨가 부족하여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작금의 정치상황을 보면 북핵과 미사일에 대처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설프지 않으면 무언가를 숨기고 하는 짓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계속해서 국제사회가 취하는 행보와는 엇박자가 나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북의 핵실험은 일찍이 2006년 가을에 동네 체육대회에서 규탄을 하였건만 모든 이들의 무관심과 안이한 안보태도에 의하여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을 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주 어리석게도 말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거늘 어찌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늦었음을 알았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있다. 다시 말해서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주어 담지는 못할지라도 첫사랑 여인이 써준 사랑의 편지가 젖지 않도록 손이든 발이든 써서 엎질러진 물을 닦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한반도의 비핵화는 깨져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핵 경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구소련이었던 러시아, 중국은 이미 어마어마한 핵 강국이고 인도나 파키스탄도 핵보유국이며, 말이 비핵국가라고 하지만 일본이나 대만 그리고 우리나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예쁘기 짝이 없는 핵탄두를 만들 능력을 보유하고 있니 동아시아는 핵경쟁의 한 복판에 서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NPT라는 테두리에 갇혀서 그리고 미국의 핵우산이라는 그늘 아래서 통제를 받다가 보니 더 어려운 지경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사실 NPT의 규정을 보아도 한 국가가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면 NPT를 탈퇴하여 핵개발을 할 수도 있다는 조항의 내용을 많은 동영상을 통해서 듣고 보았다.
그리고 핵무기는 쓰기 위해 만드는 무기가 아니고 쓰지 않기 위해 만드는 무기라는 말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이 말은 서로가 핵무기를 사용하면 모두가 망가지는 것이고 여차하면 인류의 공멸이라는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지만 핵무기는 엄청난 위협의 수단이다. 그것은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히 도전이나 장난을 걸 수 없도록 매우 위엄 있고 근엄한 자태를 뽐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지극히 단순하고 빤한 것이다. 너무도 쉬운 답이 보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전술핵도 아니고 핵 개발도 아니라고 한다. 하긴 아닌 것도 답이니 십분 이해를 하자. 그러면 그것이 아니라면 다른 답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찌되었든 이 땅 위에 있다면 지난 십여 년간 아니 20여 년 간 반복해온 말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긴 시간과 여러 사람이 수없이 6자회담(six-talks)을 해왔지만 저들은 대를 이어가면서 그 길을 걸어왔고 우리는 오늘의 갑갑한 현실 위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온갖 외교적 수사도 그렇고 코리아 패씽(Korea passing)이니 뭐니 하는 볼 상 사나운 꼴에 너무도 우리의 모습이 초라해 보인다.
그런가 하고 맞은 편을 되돌아보니 그곳도 볼 상 사나운 것은 매 한 가지이다. 지금은 영어의 몸인 박대통령을 보고 시체에 칼질이니 뭐니 하더니 정치투쟁에서 졌으니 정치적 책임을 져야하네 뭐네 하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물론 그러한 행위가 말 같이 쉽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엄동설한에 대한문 앞에서 만났던 백두서생(白頭書生)에 의하여 그런 말이 나오니 사실 아연실색(啞然失色)이다. 정치판이 뭔지도 모르고 들어와 보니 이놈 저놈 모두가 자기주장이 있고 패거리들이 뭉쳐서 쉽게 풀리지 않았을 것임은 내가 이미 익히 잘 안다. 개혁이니 혁신이니 하는 것이 사람이 자기 가죽을 벗겨 내어 새것으로 바꾸어 입는 것이니 그 얼마나 힘이 들까 생각하면 그 심정 이해를 하고도 남음이 수만리이다. 무릇 정치라는 것이 생물일지니 단단한 각오도 없이 그곳에 가서 살아있는 살쾡이 같은 존재들에 칼을 대어 가죽을 벗기려고 했으니 그 얼마나 무섭도록 소름끼치는 일일까? 차라리 그보다 “시체(屍體)에 칼질”하는 것이 훨씬 쉬었을지니 그 길을 택한 마음 이해도 된다. 하지만 혁신, 개혁, 혁명 그런 것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볼 때에 몇 번 고상한 자리에서 만나 그래도 친구 같이 느껴졌던 백두서생이 너무도 사안을 쉽게 보았거나 정치를 몰랐던 것 같다. 사실 그 때 쓰라고 만들어 준 칼이 한 자루 있는데 그 칼의 이름은 사퇴(辭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비록 숨을 쉬지 않는 것 같다고 하여 그가 시체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시체라고 해도 시체에 칼이 그리 쉽게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보듯이 예수가 삼일 만에 부활(復活)을 했지만 부활이 혼자되는 것이 아니다. 그 주변에 있는 가족과 제자들과 그를 그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성령(聖靈)으로 부활을 한 것이거늘 사람이든 살쾡이든 죽었다고 하여 그냥 땅 속에 파묻어서도 안 되지만 진실이 있는 한 아무리 파묻어도 파묻어지지 않는 것이 진리이고 자유이다. 그래서 “진리(眞理)가 너희를 자유(自由)케 하리라”고 그 부활하신 분이 말씀하셨던 것이다.
하여튼 여기를 보나 저기를 보나 되어가는 것이 죽인지 밥인지 모르겠다. 죽도 밥도 아닌 것은 줏대가 없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다 처먹으려하다가 받게 되는 푸짐한 밥상인 것이다. 그 무엇에 쓰려고 그런 음식을 만들었는가? 아니 그것은 정녕코 무슨 레시피(recipe)인가? 내가 어려서, 즉 60년대에 보았듯이 그것이 죽이든 밥이든 그저 주기만 하면 잘 먹는 인간군상들이 있었다. 바로 거지이다. 지금은 나라 곡간에 쌀이 많아 살만해져서 그런 사람들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노숙자(露宿者, homeless)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셰프(chef)라는 이름으로 목에 빨간 나비 넥타이를 매고 지금 시도 때도 없이 밥을 짓고 있겠지만 거지를 주려고 일부러 그리 죽도 밥도 아닌 음식을 만들었나? 참으로 곤란한 지경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슨 음식을 그렇게 만드냐?
2017.09.18/달빛 교교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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