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라구유~¿¿¿]
정말로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치매(癡呆)라는 병이다. 비록 말수가 줄어든 요즘이지만 엊그제만 하더라도 어머니가 나를 알아보았는데 오늘은 전혀 아닌 것이다. 엊그제 간병인(看病人)의 말로는 주변에 사신다는 할머니가 병문안을 왔다고 하는데 어머니는 그것도 기억을 했다. 간병인에게 혹시 머리가 하얗고 몸집이 작으며 말을 ‘다다다다~’ 하는 투로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마리아 할머니이다. 그 할머니는 연세(年歲)로 보아 어머니보다도 대여섯 살 위이니 지금 90은 족히 넘었을 연세이다.
10여 년 전 쯤 전에 아주 뜨거운 여름 보라매공원에서 행사가 있어 두 분을 모시고 갔다가 마땅한 그늘조차 없어서 노인 분들이 더위를 잡수실까봐 행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시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비록 두 분은 영등포구 대림동이라는 객지에서 만난 사이이지만 대림동 성당이라는 공동체에서 매주 여러 차례 만나고 노인정에서 우정을 나누어 온 사이이다. 마리아 할머니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어 손녀와 둘이 사는 형편이었는데 그러던 중 마리아 할머니는 손녀와 같이 신길7동에 있는 대방동 성당 인근으로 이사를 했다.
어머니는 마리아 할머니와의 이별(離別)을 매우 서운해 했다. 하지만 사람의 주거지란 쉽게 움직일 수 없는 것인데 벌써 3년 3개월 전에 어머니도 신길7동으로 원치 않은 이주를 하였다. 그것은 치매라는 병을 얻어 그곳에 새롭게 들어선 요양병원에 입원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어머니의 정신이 명료(明瞭)하여 병원이 대방동 성당 근처라는 말을 듣고 전화 통화를 하여 두 분은 다시 만났다. 그 후로 마리아 할머니는 종종 어머니 병문안을 왔는데 어머니의 정신이 명료치 않아 만남과 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엊그제 두 분의 만남은 어떠했을까? 간병인의 말로는 아직 마리아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여전한 모양인데 어머니의 상태가 많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입원초기와 비교를 하면 어머니는 기억력도 극도로 감퇴하고 기력도 없으며 손허리뼈(metacarpal)가 부러진 탓에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아주 열악한 상태에 있으니 두 분이 말이나 제대로 나누었을지 궁금한 것이다.
지난 3년여의 시간 동안에 어머니에게는 전해질(電解質) 부족이라는 치매환자에게 흔한 증상으로 정신의 명료함이 단계적으로 점점 주저앉아 오고 있다. 그것도 경험인지라 기력이 빠지는 듯한 상태가 보이면 혈액검사를 수시로 의뢰하여 전해질 수치를 확인하여 링거를 통하고 또 매 끼니마다 소금을 한 봉지씩 식사에 혼합하여 몸에 소금기를 보충해왔다. 소금기의 부족은 기력을 빼앗아 간다. 그러더니 지난겨울 아직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머니의 오른손 3번 손허리뼈가 부러져서 제반 움직임을 앗아가 버리는 바람에 침대에서 아예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더니 지난봄에는 어마어마한 출혈(出血)이 있어 매우 위험한 지경까지 갔었다. 하여튼 그 이후부터는 어머니가 말수가 없어졌다. 아마도 말을 통제하는 뇌의 기능이나 인후(咽喉)의 기능이 저하되어 의사표현이 잘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도 변함없이 퇴근을 하여 어머니 병실을 찾았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어머니의 침대 앞에 서서 나는 어머니를 보고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는 간이 의자를 가져다가 놓고 어머니 옆에 앉아 오늘은 잘 지내셨냐고 묻는다. 하지만 어머니는 무표정(無表情)이다. 꽃피고 날 좋아지는 지난 5월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내가 누구유~?”하고 묻는다. 하지만 어머니는 무언가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말이 안 되는 것인지 입을 씰룩거리다 다시 무표정한 상태로 돌아가 무엇인가 한마디를 뱉는다.
엊그제는 내가 누구냐고 묻는 말에 어머니는 한참 만에 그래도 “아들!!”하고 대답을 했다. 그러면 기억의 실마리가 풀리는지 이름을 물어보면 이름도 대답을 했다. 어머니의 기억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나는 매일 어머니를 볼 때 마다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누구냐고 물으니 “오빠!!!”라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무어냐고 물어보니 3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외삼촌의 성함을 어렴풋이 말한다. 아마도 어머니의 기억이 젊은 시절 친정식구들과 해후(邂逅)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아들을 몰라보는 어머니를 보니 마음이 안타깝고 안쓰럽다. 나도 모르게 부러진 손에 찬 보호대를 풀러 어머니의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어 본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씰룩거리는 모습에 내입도 씰룩거려지는 것은 천륜일 것이리라.
“엄니!”
“....”
“오늘 모임이 있어 청국장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야되니 잘 주무시고 내일 봐유~”
“...”
어머니는 이제 멀어져가는 아들을 보고도 말이 없다. 마치 어린 아이와 헤어지면서 “빠이빠이”를 하듯 하지만 이제 어머니는 그 “빠이빠이”조차 망각을 했다. 하지만 내일은 어머니의 정신이 다시 맑아질 것을 믿는다. 왜냐하면 엊그제는 병실을 나서는 나를 보고 “더 있다가 가~”하고 했으니 말이다. 어머니의 기억이 성당을 모시고 다니던 이아들과의 시간을 추억한다면 내가 누군지도 알 것이고 이름도 기억할 것이며 간혹 그러했듯이 나를 보고 “건넌방에서 자고 내일 가~~”라고도 말을 하니 말이다. 벌써 어머니의 발병으로부터 시간이 3년 3개월이 지났다. 나는 어머니와의 시간이 지나온 만큼은 더 있을 것이라는 나만의 확신이 있다. 그래서 아침마다 구로3동 성당 앞을 지나면서 영육(靈肉)간의 건강을 주시어 여생을 고통 없이 평안하게 보내고 먼저 가신 아버지 곁으로 데려가 달라고 주님께 빌고 또 빈다. 비록 어머니가 나를 보고 어떤 때는 아들이라고 했다가 어떤 때는 오빠라고 했다가 어떤 때는 누군지 모르겠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육신의 고통 과 정신의 방황이 없이 오래오래 머무시다가 육신(肉身)을 고향 땅에 뉘이고 주님 곁으로 가서 영생(永生)을 누리도록 기도(祈禱)를 드리는 것이다.
2017.09.08/쇠족발보다 돼지족발이 더 맛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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