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영등포의 삶

[스크랩] [멋쟁이인지, 양아치인지 꼴볼견인지~]

영등포로터리 2017. 8. 30. 14:56

[멋쟁이인지, 양아치인지 꼴볼견인지~]

차마 초상권 때문에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전철 맞은 편 자리에 앉은 노인네 한 쌍이 볼만하다.
남친으로 보이는 노객이 올백으로 넘긴 희끗희끗한 머리를 했는데 까만 와이셔쓰가 그의 몸에 짝 붙었다. 팔소매는 걷었는데 손목시계의 줄장식이 참 멋있다. 하얀 칠부 바지를 입었는데 그것 역시 다리에 쫙 붙었고 양말은 벗고 백구두를 신었다. 껌을 짝짝 씹으면서 옆 여친과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떠드는데 내가 중학교 다닐 때 보았던 거리에 침뱉으며 휘젖던 말썽꾸러기 딱 그 수준이다.
여친 또한 가관이다. 염색한 까만 머리지만 얼굴에 새겨진 연륜은 빤한데 하얀 머플러를 머리에 두르고 남자의 장단을 맞추는데 볼만 하기는 매 한 가지이다.

방충망을 부착한 모자를 파는 아줌마가 막 중앙통로를 지나갔다.
그에 한 눈을 파는 사이 그 두 만추남녀가 내렸는지 보이지 않는데 웬 희잡 같은 것을 둘러쓴 중년의 여인이 희고 짧은 핫팬츠를 입은 키크고 늘씬한 딸과 함께 내 옆에 앉았다. 나이든 할아버지가 다가오니 딸이 자리를 양보하는데 보니 교포일지 한국말이 어눌하다. 한참을 둘이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더니 자리들 뜨는데 딸이 내민 손을 잡고서야 그윽하게 일어나서 전철을 떠난다.

종로를 지나오며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의 7할이 할아버지, 할머니로 가득찬 전철 안에서 본 광경이다.
순간 그들이 멋쟁이인지 양아치인지 꼴볼견인지 구분이 잘 안되었다.
하지만 옆사람의 뭇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행동하는 그들이 한 편 부럽기도 하다.
나는 왜 저런 인생을 살지 못했을까!!!

2017.08.30/물이 마시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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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돌고도는 영등포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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