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본 8.18 도끼만행의 현장]
2017년 8월16일 107연세대학교ROTC동문 ‘연무포럼/延武forum(회장 민경찬, 10기; 총무 민인근, 12기)’의 행선지는 공동경비구역(共同警備區域, JSA)에 대한 안보견학이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 7번 출구 앞에서 총 33명의 회원(22명) 및 가족회원(11명)들이 탑승을 한 대형버스는 판문점을 향하여 미끄러지듯이 출발을 하였다. 행사를 위하여 물과 간식을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준비해준 동문회 사무총장(이찬희 22기)과 오은주 실장의 배려에 모든 회원들이 고마움을 표현하다보니 버스는 이미 ‘자유로(自由路)’를 들어섰다. 포럼 민경찬 회장의 인사 및 환영의 말씀이 있었고 민인근 총무의 견학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포럼 일행이 맨 처음 도착한 곳은 판문점의 공동경비구역이었다. 이미 출발 전에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하여 신원을 조회하였지만 DMZ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절차는 매우 까다로웠다.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며 다시 한 번 일일이 신원을 확인하였으며 그 구역에 대한 안내도 현역 헌병들이 직접 하였고 견학의 태도 역시 매우 엄격하게 요구되었다. 실상은 그 구역을 방문한 것이 실로 대략 15년 만이었다. 당시에는 서울 구로디지털산업단지 방위협의회의 현장견학단으로 참여를 했지만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그 현장의 분위기와 긴장감은 여전한 것이 변하지 않는 조국의 대결숙명(對決宿命)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판문점은 남북 간에 여러 가지의 숨 막히는 상황을 품고 있는 지역이다. 치열했던 6.25 전쟁의 전투가 지나간 후에 지금의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지루한 공방전을 벌이며 조국의 젊은 피를 거두어 간 시간 동안 UN군과 북괴군 그리고 중공군의 대표들이 앉아서 휴전회담을 하던 곳이며 북을 탈출하는 귀순자 때문에 총알이 오가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뇌리 속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것은 역시 1976년의 “8.18 도끼만행 사건”이다. 이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 있는 UN군 측 경비초소까지의 사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시야를 가리던 미루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던 미국 장교 보니파스(Arthur G. Bonifas) 대위 등을 도끼로 내리쳐서 살해를 한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천인공노할 엽기적 살인행위였던 것이다. 이로서 남북의 군대는 defcon2라는 전쟁 일촉즉발의 상태에까지 가는 대치를 하였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북괴를 향하여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며 만고의 진리 같은 필살(必殺)의 한마디를 남기기도 하였다.
공동경비구역의 견학을 마치고 나온 포럼 일행은 인근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제3땅굴의 현장으로 이동을 하였다. 그리고 70여 미터의 지하 갱도까지 내려가 70여 년간 적화의 야욕으로 불타는 북괴만행의 현장을 실제로 목격했다. 다시 이동하여 도라산 전망대(都羅山 展望臺)에 올라 이미 폐쇄된 개성공단(開城工團)이 내려다보이는 조국의 잘린 허리를 보며 핵무기(核武器)와 ICBM급 미사일이 오가지만 해이(解弛)해진 안보불감 시대인 오늘의 현실을 개탄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도라산역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여러 정치지도자의 환영(幻影)을 보았다. 김대중, 조지 부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무너졌던 베를린 장벽의 잔해물을 보았고 통일을 향해 가고 있는 우리나라와 독일의 통일 디지털시계를 보았다. 그러나 독일의 시계는 멎었지만 우리의 시계는 고장도 없이 흘러가는 세월과 발을 맞추어 끝없는 숫자의 증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이 도라산 역에서 102고려대학교ROTC 1기 선배께서 도라산 역을 방문하거나 관광을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도라산역과 통일에 대한 가이드 역할을 자청하고 나서서 10여년 가까이 안보봉사를 해오는 사실을 목격하였다. 8순을 향해 가는 노구의 몸을 이끌고 더운 여름날에 구슬땀을 흘리는 선배께 우리 일행은 고마움을 표현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서 다시 출발지였던 신촌역으로 돌아왔다. 안보견학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의 포럼 활동이었지만 그래도 작금의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오가는 현실 속에서 나름대로 보람된 교육의 장을 다녀온 하루였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판문점이라는 지명이 참으로 묘한 여운을 풍기는 것으로 느껴졌다. 판문점은 휴전 이후 지금까지의 위중했고 급박했던 사건을 머금고 둘로 갈라진 조국을 마치 개미허리와 같이 가느다랗게 남과 북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1945년 2월 얄타회담(Yalta Conference)에서 영국과 미국 그리고 소련이 협의한 결과에 의하여 그어졌던 38선이 휴전의 시점에서 고착된 휴전선과의 공통분모인 교차지역이 바로 판문점인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가? 판문점(板門店)은 한자로 풀어볼 때에 3자(字)로 구성된 지명이면서 각 글자는 8획(劃)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태극기에서 태극문양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국토와 이념적 상징 색깔을 나타내는 것과 휴전선의 곡선과 양극이 휘돌아가는 모양새가 같은 것 그리고 미일중러의 4각을 보여주는 4괘를 보면서 무엇인가 우리의 국기에 우리 민족의 운명이 배어있는 듯해 놀라기도 하지만 판문점이라는 지명에서 38선 분단의 숙명을 보는 듯해 더 놀라기도 했다. 지도상에서 구별하기도 힘들었던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군무(軍務)를 보다가 어이없게도 죽을 맞이한 보니파스 대위를 생각해보니 다시 보는 “8.18 도끼만행”의 현장이 앞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더 보여줄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한편 서글프기도 했다. 그런 분단의 분노와 만행의 참상이 위기로 치닫는 우리의 조국 한반도에서 역사적인 8월18일의 하루가 그렇게 갔다.
2017.08.18/쇠도끼에 휘둘리는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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