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영등포의 삶

[스크랩] [빈곤(貧困)의 미학(迷學)]

영등포로터리 2017. 6. 6. 20:58

[빈곤(貧困)의 미학(迷學)]

내 기억으로 1980년대 중반 쯤 되었을까?
회사에서 하는 과부장들을 상대로 하는 관리자 교육을 받을 때인데 당시 어느 강사가 L 모 백화점 같은 쇼핑센터가 수백개 생겨날 것이니 인력수급부터 제반 투자를 그에 맞추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 당시는 경제가 마구 팽창하던 시점이었고 무엇보다도 성장의 기쁨은 젊은 사람들에게 넘치는 일자리를 제공하던 때였다.
그렇게 세상이 변해갈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고 마이카 시대와 선진국으로의 도약이라는 국민적 설레임과 희망이 진하게 배어 묻어나고 있을 때였다.

이때 들은 어느 부장의 말이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그것은 해가 거듭될수록 삶이 빡빡해져 여유가 없다는 일종의 회고담이었다. 왜 그럴까를 생각했다. 분명히 그 부장이 과장일 때보다 내 급여가 많았고 그 부장은 지금 전보다 더 많은 급여와 복지혜택을 받고 있을텐데 말이다.
정말 무엇이 그 원인일까?

각설하고, 그런데 처음으로 해외라고 나가서 본 일본은 우리보다 몇 배 더 풍요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당시에 반공교육을 받아야 여권을 받고 해외를 나가서 외국문물을 보았던 젊은 세대(지금 대개 60세 전후의 나이겠지만)는 그때까지와는 다른 세계관을 보았을 것이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대량이동의 교통수단,
조선?제철?정유?자동차?중장비? 원전 등 중화학 공업으로의 질주,
사통팔달로 뻗어나가는 국가기간시설, 어디를 가나 풍부한 물산이 들어찬 유통단지와 서비스 산업 등등...
우리나라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아니고 선진국의 모습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70년대에 개학을 하면 돌을 찾다가 돌이 없으면 보도블럭을 깨어들고 유신을 반대한다며 독재자는 물러나라고 데모대 앞에 서서 깔짝거렀던 나 자신이 그 화려한 선진국의 실상에 투영되어 머리 속에 아른거렸다. 나는 그때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길"이 옳았다고 판단을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유신독재를 반대하며 젊음을 옥살이와 군징집으로 보냈던 선배동료들이 떠올라 한 동안 망설이기도 했지만 나는 생각의 틀을 바꾸기 시작을 했다. 그래서 이념적으로 동지였던 모임에서 지난 "민주화 투쟁" 시간을 역사의 한 장으로 기술을 해놓겠다며 원고를 제출하라고 해서 "생각을 하다가 만 사람의 변"이라는 뜻으로 같은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지 못했다고 에둘러 표현을 하며 반유신투쟁과 신군부의 출현으로 일어난 5.18사태와 투옥되어간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절절하고 솔직히 많은 번민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풍요는 박정희의 길이 아니었으면 올 수가 없는 사건이었다는 확신을 한다. 그가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했지만 설사 그리하여 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그 무덤에 침을 뱉는다 하더라도 나의 지금 판단과 상념을 이제는 바꿀 수가 없다.

어제는 아들녀석의 생일이라 여의도에 있는 IFC mall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분명 이 아들 녀석도 좌파스런 생각에 빠져있겠지만). 이 시설을 보니 아들녀석이 태어나던 80년대 중반에 어느 강사가 말했던 바로 그 거대하고 풍요롭고 화려하며 고급스런 쇼핑몰이다. 한 층이 모두가 극장가인 곳에서 많은 젊은 남녀가 데이트(요즘은 부둥켜 안고 입맞추는 것은 기본)를 즐기고 있었고 나이 어린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뛰어놀며 어른들은 자식들의 안내를 받으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뇌리를 스치는 것은 역시 앞에서 말한 그 부장의 말이다. 이렇게 풍요로운 경제상황 속에서 모두가 삶이 빠듯하고 내심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훨씬 더 풍요로운 시대에 사는데 소득활동을 하면서도 여전히 빈곤함을 느낀다. 화려하고 풍요로운 물산의 앞에서 사람들은 상실감과 자괴감을 느낀다. 바로 상대적 빈곤함이 그것이다. 더 많은 급여를 받으면서도 삶이 빠듯해져 감을 느낀 그 부장의 생활체감도가 바로 그것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 들춰보아야할 빈곤의 미학은 과연 무엇인가?
먼저 소위 복지국가로 가야한다며 약20년 전에 이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여 실시하고 있지만 그 빈곤의 굴레는 여전하다. 이렇게 절대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이 있는가 하면 남들이 누리는 풍요로움(엄격히 말하자면 사치일 수 있음)에 분노하고 시기하며 이 사회에 복수하는 상대적 박탈감에 몸부림치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다.
다음은 여전히 정치는 이러한 사회적 특징과 현상을 정치투쟁에 적극 활용을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좌고 우고 둘 다 뚜렷한 해법도 없으면서 선택적이니 포괄적이니 탁상공론을 하고 엄청나게 배려를 하는 듯이 "낙인(stigma) 효과"를 운운한다.

어렵고 조심스런 말이지만 이왕 화두를 던졌으니 한 마디 하고 이제 정리를 하자.
지극히 교과서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욕심을 버려야 한다.
가진자는 사회에 자신의 부를 환원하고 국민에게 명예롭게 봉사를 해야 한다. 국가는 그러한 부자들의 행위에 삶의 영예를 안겨주어야 한다. 환원하는 부의 양 만큼 금전적이지 않은 편안한 마음의 명예를 갖도록 해줘야 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못 가진자는 가진자를 분노와 증오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 국가는 정치적 득실을 계산하여 이 집단의 분노를 부추겨서는 안된다. 국가는 모두가 사회적으로 존경받기 위하여 몸이 으스러지도록 일을 해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빈곤한 자는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 그들이 먹고 자고 마시고 입는 일을 도와주고 그들의 재활능력을 배양하여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시켜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을 누가 모를까!!!
다 아는 사실이고 이름 모를 교과서에 모두 나와있는 말이다.
그러니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가?
미천한 단견이지만 욕심을 버리기 위한 "도덕의 재무장(MRA : Moral Re-Armament)"이 그 답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운동도 사변적이거나 공허해서는 아니되며 바로 실천적이고 역동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사회가 바로 가려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에게 국가의 기초를 닦고 성장을 이끌어준 탁월한 지도자는 있었지만 현명한 분배를 해주는 지도자가 아직 없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어렵고도 슬픈 일이다.

2017.06.06/불 같은 열정으로 도덕을 재무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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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돌고도는 영등포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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