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영등포의 삶

[스크랩] [말의 목을 쳐야 한다~]

영등포로터리 2016. 10. 14. 22:57

[말의 목을 쳐야 한다~]

일찌기 중추신경에도 관성의 법칙이 있어 물체뿐만 아니라 사람도 하던 짓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늘 아침 오랜 만에 버스를 타고 구로동 사무실로 출근을 하려던 참이었다. 아직 춥지 않기에 버스 정류장에서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치 남극에서 하얀 배를 내보이며 바닷가를 바라보는 폥귄처럼 버스 정류장에서 차가 오는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닌지라 버스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주는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고자 전화기를 조작했다. 전화기는 버스의 도착시간이 3분 1초가 남았다고 알려준다. 그 시간이면 내가 옷을 입은 상태에서 지갑 등 소지품을 챙겨 넣고 전력질주를 하면 버스정류장에 버스와 내가 동시에 도착할 수가 있다. 그러면 버스를 탈 수 있으니 나는 구두를 신고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다행이 곧 바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오늘 따라 엘리베이터 안에 주민 세명이 탔다. 대충 눈인사 비슷한 것을 하고 층버튼을 보니 지하2층이 눌러져 있다.
지하 2층에 가면 차가 있으니 바로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순간 아차 지금 나는 버스를 타려면 1층에서 내려야 되는데 하고 층수를 보니 엘리베이터는 지하 1층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이것은 낭패다. 어쩔 수 없이 지하 2층에 모두 내리고 다시 1층을 눌러 올라가서 문이 열리자 마자 전 속력으로 뛴다. 하지만 아파트의 쪽문을 넘자 큰 길가에 내 버스가 지나고 있는 것 아닌가!

허탈하게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어 전광알림판을 보니 다음 버스는 13분 뒤에 오는 것으로 표시가 된다. 정말로 나의 중추신경이 하던 일을 계속하는 바람에 선선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버스 정류장에서 오가는 이들을 보며 시간을 흘려보내야 한다.
"에잇! 한 겨울 칼바람 속에서도 30분이 넘도록 기다렸던 적이 있는데 13분 쯤이야..." 하고 열심히 전화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이것저것 뒤적인다.

김유신 장군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나라를 걱정하는 중에 말이 기방을 향해 갔다하여 서슬 퍼런 보검으로 말의 목을 쳤다는 전설 같은 일화가 있듯이 진정코 정신을 차려야 함에 가차 없이 칼을 휘둘러 말의 목을 치듯 내 생각의 목을 치노라~

2016.10.14/쇠말뚝도 차가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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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돌고도는 영등포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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