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과 혼란]
요즈음 어머니의 요양상태는 의학적인 관점은 어떤지 모르지만 보호자의 눈으로 볼 때 육신은 노쇠한 상태지만 그 상태에서 안정을 찾고 있으나 정신은 많이 쇠퇴한 상태라고 보여진다.
내가 사는 집 옆에 있는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모신지도 벌써 1년 3개월이 경과했다.
그간의 우여곡절이 많이 있었지만 늘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말씀드리며 거의 날마다 찾아 뵙지만 어머니는 왜 당신께는 찾아오는 자식이 하나도 없느냐고 한탄을 하신다.
즉, 어제 그제의 일을 명확하게 기억을 못한다는 것이다. 대화를 하며 일깨워 줘야 '그랬던가 아니면 그런 것 같다'는 정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어제는 모처럼 독특한 내용을 묻는 전화를 하셨다.
전화가 왔길래 내가 받으니 마치 레코드를 틀어놓은 듯이 '이따가 퇴근할 때,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되니 말랑말랑한 사탕(상품명 "말랑카우") 좀 사다가 줘!!!'라는 말 대신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냐?'는 것이다.
40여년 전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보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잠시 고민을 하며 바로 대답을 못하니 어머니는 나에게 '외할머니! 엄마의 엄마를 말하는 겨~'하고 친절하게도 가르쳐주신다.
그래서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다 돌아가셨으니 어머니가 집안의 제일 어른이에요~'했더니 그제서야 그리되었구나 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지금 지워져가는 기억이 느껴지는 것일 게다. 치매약으로 그 끈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음에도 기억이 멀어지고 희미해지는 망각의 오솔길에서 '내가 왜 이럴까?'하고 의아해 하고 있는 것일 게다. 하지만 당신께서 치매환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치매에 걸리면 살아서 뭐하겠니?'하고 나에게 말씀을 하시니 말이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여전히 전화를 걸어서 퇴근할 때 말랑말랑한 사탕을 사다달라고 하신다. 굳이 통계를 내본다면 약 2~30분 간격이며 최대로 많이 전화를 했을 때 하루 15번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전화를 할 때마다 처음 전화를 하는 내용으로 말을 한다.
쉽게 말해서 손녀가 딸을 낳았으니 외증손녀를 봤다고 좋아하시길래 딸아이에게 전화를 해서 통화를 하게 해드렸더니 애를 잘 키우라고 축하한다고 많은 말씀을 해주셨지만 전화를 끊고 5분 정도 지나니 나를 보고 "경미는 학교 잘 다니지?" 하고 물어보는 것이 그런한 것이다.
하루에도 예닐곱번 사탕을 사달라고 하니 여느 때와같이 오늘도 어머니가 좋아하는 말랑말랑한 사탕을 사들고 전화를 드렸다.
곧 병원에 도착하니 휴게실로 나와 계시라고 말이다.
대충 십분 정도 지나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어머니는 그곳에서 나를 반긴다.
그러나 아들을 보고 반가워하는 모습까지는 현실적인데 날도 저물어 어두운데 뭐하라 왔냐고 반문하는 것은 망각의 길 위에 서있음이다. 그리고는 깜깜하니 빨리 집에 가라고 성화가 대단하다. 멀리 서울 사는 아들이 왔는데 길은 어두운데 이 아들이 밤길에 언제 서울을 갈까 걱정을 하는 것이다. 하기는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일테니 그도 어쩔 수 없는 절실함일 것이다.
나의 관찰로 지금 보면 대략 20년의 시간 속에 각인되었던 어머니의 기억이 마치 비바람에 바위가 깎여나가듯이 풍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이 된다.
어머니는 지금 20년 전의 기억으로 지금의 아들을 보고 간간이 이어지는 추억과 상념을 소지한 채 순간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사라져 가물거리는 더 먼 기억을 생각하며 친정어머니와의 삶을 추억하는 것이다.
아~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어머니의 중첩되고 망각된 기억이 온통 뒤죽박죽일테니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까?
빠져버린 기억의 퍼즐을 나름대로 꿰어 맞추어 보려고 하지만 마음대로 안되니 말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현실의 아들이 생각나면 전화를 해서 사탕을 사다달라고 하는 것이겠지...
한동안 나에게 전화를 하면 "바쁜데 전화를 해서 죄송햐~"하고 말씀을 하셨다.
내가 어머니의 전화를 귀찮은 듯이 받은 적이 있었던가?!
"어머니가 자식한테 전화를 하는데 뭐가 죄송해유~ 그런 말씀 말어유~"라고 하지만 내가 혹시 짜증스럽게 어머니에게 대했나 싶어 그것도 마음이 착잡하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편히 쉬고 계시려나...?
정말 마음이 허전한 날이다.
YouTube에서 '어머니노래모음' 보기
https://youtu.be/0dhCQocEzMY
2015.10.25/해
¤
치매 어머니에 대한 글을 가급적 올리지 않으려 했지만 이것도 곧 추억이 될 테니 안스러운 마음으로 오랜 만에 올려봅니다.
'22-영등포 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울적한 날] (0) | 2016.01.25 |
---|---|
[스크랩] [건강 검진] (0) | 2016.01.25 |
[스크랩] [다섯 구비 띠동갑] (0) | 2016.01.25 |
[스크랩] [자유낙하시험] (0) | 2016.01.25 |
[스크랩] [개 같은 세상?] (0) | 2016.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