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요리식당]
1987년 3월에 해외출장을 두번째 가게 되었다. 그 행선지는 미국이었고 LAX를 거쳐 SFO에서 1박을 하고 일을 본 다음 JFK에 내리니 새벽 6시였다.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일행이 많고 첫 미국 출장이라서 별 느낌이 없었는데 뉴욕에 새벽에 내리니 동행한 송진수 실장이 그래도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터라 공항 빵집에서 빵과 음료를 사서 둘이 먹게 되었다. 빵을 한 조각 떼어 입에 넣는 순간 무엇인지 모를 미묘한 맛에 나는 식욕을 완전히 잃어 버렸다. 처음부터 음식이 입에 맞지않아 배가 고팠던 터에 이날은 내가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할 때까지 하루를 거의 굶었다. 허기가 대단했던 기억이 있다.
외국에 출장을 오거나 여행을 오면 먹는 것이 큰 과제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기억이 있어 출장을 가면 억지로 현지음식에 충실하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억지로 한국식당을 찾아다니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해외를 오면 어느 경우든 한국식당을 반드시 들르게 된다. 그런데 한국식당을 찾는 이유는 한국음식을 그리워한다기보다는 솔직히 말해 "소주에 대한 추억"이 더 강하다 할 것이다.
오늘은 이곳 크론버그 인근의 한국식당을 찾아 점심식사를 했다. 식당이름은 "Biergarten/맥주의 정원"으로 한식과는 좀 어울리지 않지만 순두부, 설렁탕, 떡갈비, 제육볶음 등 우리 식단으로 근사하게 점심을 먹었다. 식당은 약 30평 정도로 호텔을 겸한 형태였고 넓은 주차장과 휴식을 할 수 있는 마당을 갖추었다.
자리 배치로 보아 순간 최대10~15팀 정도의 손님을 받을 수 있는 규모인데 손님은 입추의 여지 없이 꽉 찼다. 손님의 반 정도는 독일인, 인도인, 중국인들이고 대충 나머지 절반은 한국사람으로 보면 될 듯하며, 대부분 젊은 부부들이 어린 자녀들을 동반함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신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독일 이민사회 및 사업교류를 이루고 한 시대를 끌고 나가는 한국인들이 오늘 보니 젊은이들로 대치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한 때는 해외로 이민을 떠나든 출장을 가거나 주재원으로 나가든 아니면 여행을 하든 내가 즉 우리 세대가 주축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주축인 것 같은 착각을 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나 같은 젊은 노인조차도 없는 것을 오늘 느꼈다. 나는 오늘 "이제 우리의 시대는 갔다!!!"라고 마음을 고쳐 잡았다. 아니 더 멋있게 말해서 "그래! 이제 우리는 일을 할만큼 했어. 이제부터는 좀 쉴테니 너희들이 우리보다 더 멋있게 해봐~"라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래!
이제는 우리도 마음 편하게 살자~
식당 마당에 보니 강아지를 들고온 한국손님이 강아지가 잘못했다며 벽에 앞발을 대고 서게 하고 회초리를 들고 벌을 주고 있었다. 아주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독일에 와서 느낀 것인데 애완동물을 데리고 식당을 드나들고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하는 것이 우리나라보다는 매우 너그럽다는 것이다. 독일인들은 작은 애완견이 아니라 커다란 개를 끌고 다니면서 산책을 한다. 우리가 애완견을 품에 안고 다니면서 빨고 핧고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고 흡연자가 담배를 피우면서 분노를 느끼지는 않게 해준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2017.10.03/불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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