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영등포의 삶

[스크랩] [말의 힘(2)]

영등포로터리 2017. 6. 24. 10:02

[말의 힘(2)]

우리는 꽃을 보고 추하다고 하면 시들고 예쁘다고 하면 화사하게 핀다는 실험적 결과를 흔히 접할 수 있다. 굳이 "레비스트로스(주1)"를 들먹이지 않아도 또 "구조주의란 무엇인가?"까지 가지 않더라도 "말의 힘"이 강하고 무섭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때 공직(公職)에 있을 때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의 일을 회상한다. 모 국장이 하는 보고에서 나왔던 용어(用語)에 대한 추억이다. 그것은 당시 제반 정책이 서울시민 누구에게나 가장 이상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하며 정책의 개념을 "서울형"이라는 용어를 통하여 유도해가고 있었기에, 나는 '국장님이 말하는 “서울형”이라는 개념이 무엇입니까?'하고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마치 정책 앞의 형용사 마냥 사용하던 그 "서울형"이란 의미의 설명에는 주저거리는 머뭇거림이 있었다.

당시는 서울이란 지자체가 일방적인 한 우파(右派) 정당의 흐름 속에서 제반 정책을 추진할 때이다. 마치 다섯 살짜리 어린 애가 경험하는 "서울 판타지"였다고나 할까? 아마도 그러한 상황은 이 나라 정치현실에 앞으로는 다시 못 올 꿈같은 일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아쉬움은 용어에 대한 개념 정의가 덜 되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본래 우파(右派)란 땅(?) 위의 생명(?)으로서 존재하는 방식 및 도구가 주둥이(口)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좌파(左派)는 움직임(工)이다. 내가 보기에는 우파는 좌파에게 용어의 개념정립이라는 작업에서 그 우선권을 주둥이만 놀리다가 손과 발과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선점(先占) 당해 버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좌파는 말이라는 기능과 그 기능이 갖는 사회적 파급효과를 좌견천리(座見千里)하고 있는데, 우파는 주둥이 속에서 나불대는 세치 혀를 놀리며 탁상공론(卓上空論)에 열중해왔다는 뜻이다.

일단 우파는 용어전쟁(用語戰爭)에서 패배를 하였다. 좌파는 부정적 용어전쟁에 능했으며 다분히 전략적이라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첫째, "헬조선(hell朝鮮)"이라는 용어이다. 헬조선이란 이 나라가 마치 지옥(地獄) 같은 조선시대(주2) 같다는 의미를 일반 백성(百姓)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들은 기간 중에 표출되는 온갖 사회적 갈등에 이 용어를 갖다 붙여 마치 접두사 같이 사용을 했다. 요즘은 이 용어의 사용이 두드러지게 감소했다고 보여 진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는가? 여전히 모든 백성은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땅을 딛고 있다.
둘째, "이게 나라냐?"이다. 이 말 역시 헬조선에 버금가는 의미와 파급효과를 갖는다. 다시 말해서 나라꼴이 개판이라는 뜻을 지극히 함축적으로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최순실 국정농단"은 "이게 나라냐?"라는 용어를 가장 강력한 부정적 이미지로 개념지원을 한다. 즉 그러지 않아도 살기 힘든 지옥 불구덩이 같은 헬조선이 진정 나라냐 하고 질문을 던져 놓고 50년대 신파극에나 나올 법한 "촌스런 여인"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을 갖고 온갖 농간을 부려 나라꼴이 개판이 되었다고 모든 기레기들을 동원하여 대통령까지 감옥에 보내는 폭발적 수치감을 온 백성의 머릿속에 주입을 시켰다.
넷째, "블랙리스트(blacklist)"이다. 여기에서는 블랙(black)이라는 의미를 최대한 살렸다. 마치 거대한 음모(陰謀)가 도사린 살생부(殺生簿)가 그것인양 온 백성에게 알린 것이다. 백성은 그에 치를 떤다.
다섯째, "국민은 개돼지"이다. 이것은 덮어씌우기 용어로 보여 진다. 저들이 저리 하니까 저들은 마치 국민을 사육하는 개돼지로 보고 있구나 하는 엄청난 치욕감을 백성들이 느끼도록 유도한 것이다. 매우 치밀한 용어선정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많은 용어들이 있다. 그것들을 일일이 다 거론(擧論)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이렇게 몇 가지만 살펴보아도 말이 갖는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힘을 활용하는데 좌파는 성공을 했다. 그런데 우파는 그것이 뭣인지도 모르고 멍~ 때리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니 그 이전에 무어라 한 마디를 하려고 하면 "막말"한다는 공격에 요실금(尿失禁) 환자처럼 찔끔한다. 그 이유는 주둥이로 먹고 사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작은 공세에도 오줌을 지리기 때문이고 마치 자신의 품격에 손상이 갈 것이라는 자괴감(自愧感)에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전투력이 없음"을 "품격의 손상"으로 포장하는 세치 혀, 주둥아리 우파로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세계가 바로 "말의 힘이 지배하는 인간 세상이며 21세기의 조국 대한민국"이다. 요즘 새롭게 등장한 말이 "블라인드 채용(blind 採用)"이다. 여기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서 어떤 방향으로 백성들을 움직일 것인가?

아~!!!
나는 오늘도 개돼지가 되어 땡볕 아래 숨 막히는 아스팔트를 걷는다.

https://youtu.be/KjxtmOTPR_M

2017.06.24/흙이 다 말랐다!!! 날이 너무 가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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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Claude Lévi Strauss), 프랑스의 사회 인류학자
문화체계를 이루는 요소들의 구조적 관계라는 관점에서 문화체계(예를 들어 친족 및 신화체계)를 분석하는 데 쓰이는 구조주의는, 20세기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철학·비교종교학·문학·영화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주2) 조선시대
조선시대는 전 국민의 약 40%가 노비였던 시대가 있었다고 하니 같은 종족이 같은 종족을 노예로 삼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출처 : 돌고도는 영등포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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