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찾다~!!!]
영포산악회 회원들과 충북 괴산 갈모봉에 오르고 선유동 계곡에서 발을 담그다. 지난 주에 이어 고향을 다시 찾으니 내심 기분이 좋다. 그러나 갈모봉(582m)을 오르며 정상을 100여 미터 남기고 체력이 고갈됨을 느꼈다. 순간 높지 않은 산인데 지난 달에 관악산 연주암을 올랐던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왜 이럴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산행준비 소홀로 인한 컨디션 난조였다. 요즘 만보걷기 운동을 하므로 무릎관절이 좋아진 것도 있지만 몸이 가벼워졌다는 생각으로 582미터 정도면 쉽게 오를 것이라 자만을 한 것이다.
내가 왜 이럴까~?
곰곰히 산을 헐떡이며 오르면서 그리고 나의 쌕을 들어주는 맛수다 손수언 대장의 도움을 받으며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첫째, 몸을 가볍게 한다는 이유로 어제 저녁을 먹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그리고 보니 어제 점심도 라면에 김밥을 친구들과 나누어 먹은 것이 모두였다. 그러니 비축된 에너지가 몸안에 없었던 것이다.
둘째, 배낭을 지지않고 쌕을 진 것이 잘못이었다. 소지품이 간단하기 때문에 쌕을 들고 나섰지만 점심도시락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쌕의 용량이 초과되어 쌕의 끈이 몸을 자꾸 죄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사소한 몇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체력안배의 실패인 것이다.
손대장의 도움과 격려로 가까스로 정상을 밟고 회원들과 사진을 찍고 다시 하산을 하다가 점심으로 도시락을 비웠다. 비록 그 휴유증으로 인한 어려움은 있었지만 점심으로 체력을 보강하고 등짐을 가벼이하며 초콜릿으로 피로를 푸니 걸음은 한결 가벼워져 오히려 힘들어 하는 회원 몇몇을 도와주며 선유동 계곡에 도착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정상을 향해 오르며 넘어가는 숨을 참고 발을 내딛으며 37년 전 추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군에서 중대 측정을 받는 중에 소대원들과 10Km 완전군장 구보를 하던 중에 결승선에 들어 오기는 했지만 소대원들의 초반 구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일정구간 낙오를 했던 기억이다. 정말 부끄럽고 얼굴을 들 수 없었던 추억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계곡으로 내려와 물에 발을 담그니 40년 전의 추억이 소록소록 떠오른다. 친절한 회원들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낀다. 인사말을 하며 손대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곳 괴산은 고향이다. 일주 전에도 아버지 산소를 찾아 성묘를 했으니 그곳과 떨어져 있기는 해도 같은 행정구역이니 나에게는 고향의 친근함이 느껴진다. 옛부터 화양동, 선유동을 끼고 있는 청천은 물이 좋고 산이 깊어 인재가 많았다. 이곳의 맑은 물은 흘러 한강으로 흘러 서울을 적시므로 나라에 기여한 인물이 많았다. 그런데 나의 정확한 고향은 증평이다. 증평은 내 어렸을 적부터 괴산군에 속해 있었다가 지금은 독립군인 증평군으로 승격되어 있지만 그 수계가 금강으로 호서지역을 적신다. 오늘 젊은 시절 캠핑을 와서 즐기던 선유동 계곡에 발을 담그고 회원들과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고 하니 참으로 기분이 좋다.
"6시 내고향"이 아니라 "내고향 만세"이다. 지금 서울로 돌아오는 차안에 울려퍼지는 젊은 아낙들의 노래가락과 춤사위가 정말 정겹다.
https://youtu.be/EwAs0U_rHB8
2016.07.09/흙을 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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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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