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사(煉missa)와 병자영성체]
언젠가 말했지만 나는 제대로 된 천주교 신자는 못된다. 그저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던 운전기사 같은 입장이었으나 이제 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잊혀져가는 기억의 끝자락을 잡고 망각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이제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내가 성실히 주님 앞에 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렇게 몸과 마음을 다잡고 있는 것이다.
몇일 전에 어머니가 바람을 쐬고 싶다고 하여 힘들게 차에 태워 대림동 성당 마당에 와서 기억을 더듬어 오르게 해보았지만 십년을 다닌 성당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도 아직 어머니가 50년 전에 증평 성당에 다니면서 외운 "주님의 기도"를 잊지 않았기에 성모상 앞에서 "주님의 기도"를 바치도록 해드렸다. 그리고 성당 사무실을 들러 바로 다가오는 일요일이 아버지의 기일이라 연미사를 신청하였다.
바로 오늘이 일요일이라 오후 6시에 있는 아버지의 연미사에 참례하기 위하여 집을 나서면서 성당을 가기 전에 먼저 어머니를 찾았다. 오후 5시에 나오는 어머니의 저녁식사를 챙겨드리고 나니 5시 반이 되어 부랴부랴 대림동 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미사 시작 전 신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다. 내가 하는 일과 나와 관련된 이들을 위하여, 어머니의 영육 간의 건강을 위하여, 가족의 건강과 발전을 위하여 그리고 삶에 대한 강퍅한 마음의 해소를 위하여 올리는 기도이다. 신부님께서 아버지 바오로를 위하여 미사를 바친다고 하니 문득 벌써 11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오르고 암으로 고통 받으시던 순간에 왜 조금 더 살갑고 또 효성스럽게 해드리지 못했던가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성체를 받아모시며 "생명의 양식"을 찬송하려니 뜨거워진 눈에 눈물이 맺힌다. 이제 아버지께서도 주님 곁에서 평안하며 질병의 고통도 없는 영생을 누리실 것을 나는 믿는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의 요양병원은 대방동 상당 근처에 있으므로 7월 "병자영성체"를 대방동 성당 사무실에 신청해야겠다. 성체를 모시므로 해서 잊혀져가는 세상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어머니가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로 인하여 어머니가 주님 곁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라는 믿음으로 남은 삶을 즐기시기를 바라며 나 역시 이제 그런 믿음으로 어머니의 여생을 바라보려 한다.
https://youtu.be/so6pA_qqkhU
2016.07.03/해는 지고 날이 바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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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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