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분석및평가(3) : 성인지적 복지정책
무엇이 ‘변화’하고 있으며,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 새로운 사회적 위험 속에서의 성인지적 복지정책 패러다임 설정 -
Ⅰ. 들어가며
최근 사회복지의 발달과정을 보면, 선별주의 내지 잔여주의에서 보편주의 내지는 제도주의 방향으로 점차 발달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는 복지권과 평등에 대한 인식제고 및 확대가 맞물려 있다. 사회복지가 더욱 발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두 측면이 서로 유기적인 관련을 가지면서 강화될 필요가 크다. 이러한 강화에서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점은 복지정책의 수립에 있어서 성에 대한 시각과 발상을 재전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정책들은 성인지적 관점을 고려하고 있지 않아서 여성들은 정책대상에서 배재되는 경향이 있었다. 사회복지란 근본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의 요소를 최소화하여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삶을 보장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따라서 성평등사회의 실현과 모든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서, 그동안 정책결정과 시행에서 고려되지 못했던 여성의 요구와 가치를 반영하기 위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사회적 위험(NSR: New Social Risks)과 관련하여 여성의 사회적 위상과 처우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은 1990년대부터 경제적 세계화로 인한 신자유주의적 방식의 유입으로 생산방식과 산업구조의 변화를 수반하는 탈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출현하였다.
이에 본 고는 성인지적 복지정책이 필요한 이유를 새로운 사회적 위험 속에서 그 정당성을 재확보하고, 사회적으로도 재인정을 받을 수 있는 측면에서 접근해 보려고 한다. 그저 단순히 차별적이고 모순적 이유만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겠다는 보상적 단순논리가 아니라, 성인지적 접근을 위한 패러다임을 설정함으로써 복지정책 논의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해 보려는데 그 의의를 두고자 한다.
그렇다면 과연 성인지적 관점이란 무엇이며, 이 용어가 왜 모든 영역에서 화두가 되고 있으며, 현실적인 성인지적 정책방안은 무엇인지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응체제의 하나로서 한국사회에 적실한 성인지적 복지정책 패러다임을 설정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예시해 본다.
Ⅱ. 성인지적 관점에 대한 이해
1. 성인지적 정책이란?
먼저 성인지적 정책에 대한 이해에 앞서 성인지적 관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확실한 개념이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성인지적 관점(gender-sensitive perspective)이란 여성과 남성은 다른 이해나 요구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특정개념이 특정성에게 유리/불리하지 않은지, 성역할 고정관념이 개입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검토하는 관점을 의미한다. 즉 여성과 남성의 이해와 요구가 다름을 전제로 사회적 조건이나 상황 및 현상이 여성과 남성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양성평등한 대안을 도출하기 위한 것이다(송인자, 2008). 그동안 우리사회는 사회문화적으로 기대하는 성역할을 기준으로 가치평가가 이루어져 왔으며, 이러한 경향은 일상적인 삶뿐만 아니라 정책에서도 성별이 고려되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최근 탈산업사회로의 전환과 함께 여성의 역할과 여성적 가치에 대한 인식전환과 여성과 남성의 파트너십의 형성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성인지, 성주류화란 용어가 부각되면서 정책영역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따라서 성인지적 정책이란 여성과 남성의 서로 다른 요구와 삶의 경험, 특성과 차이를 반영하여 국가의 정책과 사업을 실행함으로써 그 결과가 양성 간에 형평성과 평등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즉 성인지적 정책은 여성적인 것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여성이 가족과 사회를 위해 수행해온 노동과 활동의 생산성을 인정하며, 여성들이 지닌 욕구와 이해를 충분히 고려하면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고 평가하려는 시도이다(송인자, 2008). 이렇게 성인지적 정책은 성별을 중요한 하나로 사용하면서 점차 성주류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성주류화 개념이 성인지 정책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성주류화란 국가정책의 모든 영역에서 양성평등의 시각이 통합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류화란 Mainstreaming이라는 영어의 번역어로써, 주류가 아니던 사람이나 사상을 주류로 만드는 과정을 뜻한다. 주류화라는 개념은 사회발전의 전체적인 방향을 결정하고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발전의 결실을 향유하는 주류와 그러한 과정에서 배제되고 주변화된 비주류의 양분화된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의 주류화란 여성의 사회적 배제, 여성의 사회적 주변화를 문제의 핵심으로 파악하는 여성발전의 전략이다(최선화, 2005).
최근 들어 전체사회의 경제적 생산성이 고도화되어도 여성과 남성 간의 경제적 지위의 격차가 좁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는 현실적 인식이 성주류화 담론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실제로 여성고용을 촉진하고 노동조건과 사회보장의 혜택 등 단편적인 개선과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사회주의적 페미니즘에서 중요하게 거론하는 가부장적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접근은 아직 미약한 실정이다.1) 점점 빈곤화되고 있는 여성노동에 대한 구조적 개선은 미비하고, 이에 따라 여성은 경제적 의존성에서 탈피하기 어렵다. 여기서 성평등과 성주류화라는 정책목표와 현실 간 간극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간극에 대해서는 성인지적 복지정책을 달성하기 위한 단계적 접근으로 현실적인 기반구축과 사회적 여건조성을 마련해 나가는 지속가능적인 안목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성주류화 개념은 외부적으로 국제적인 변화와 도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내부적으로 성인지적 정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이를 실행할 행정기관의 점진적인 확대를 통하여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먼저, 국제적인 동향과 함께 UN의 적극적 권유 하에 범세계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국제적 쟁점들을 살펴본 다음, 국내적인 변화추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2. 성인지적 정책의 국제적/국내적 동향
1) 국제적 동향 및 쟁점
탈산업사회로 진입하는 1980년대부터 복지국가의 위기와 재편의 필요성이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기존 복지국가들은 근대자본주의가 낳은 여러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한 관리체계로 국민경제 그리고 완전고용과 전일제 노동을 기초로 전형적인 가족모델인 남성부양자/여성보살핌제공자라는 가정에서 발전해 왔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오면서 인구고령화, 이혼증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증대 등 급격한 가족구조의 변화와 경제적 세계화로 인한 신자유주의적 방식의 유입으로 노동계층의 고용불안정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여성들이 노출되고 있다(김영란, 2006). 이렇게 생산방식과 산업구조의 변화를 수반하는 탈산업사회가 도래되면서 기존 케인즈주의식 복지국가의 방어선은 붕괴되고, 이에 따라 전후복지국가의 역할과 그 토대는 기능부전에 빠지게 되는데, 이를 에스핑-안데르센(Esping-Andersen, 1999)은 ‘복지국가의 위기’라고 하였다.
이렇게 촉발된 복지국가의 위기논쟁은 21C 접어들면서 새로운 사회적 위험과 이에 대응하는 복지국가의 현대화에 관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논의과정에서 정책적 재편의 목소리가 일면서, 최근 북미, 유럽, 오스트리아 등 많은 선진국에서는 성을 중심으로 복지정책을 재구조화하고 있다(최선화, 2005). 복지와 성의 결합은 베버리지식 복지의 전제이자,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의 전형적 가족모델로는 사회적 변화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국제적 기구의 협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ILO와 UN의 여성차별철폐협약을 통해서 성인지적 관점에서의 국제적 동향과 쟁점 등을 살펴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 정책발전을 위해서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주요쟁점으로는 첫째, 성에 의한 분업으로부터 탈피, 가정에 대한 남녀의 공동책임을 명백히 하고,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의 사회화를 주장하고 있다. 둘째, 가정 내 돌봄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정 및 수당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셋째, 모성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넷째, 사회복지수급권의 동등한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이미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최근 결혼형태의 변화, 이혼증가, 수명연장 등 가족구조의 변화 그리고 여성의식의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부장제와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적 태도변화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성에 의한 분업에 대한 시정과 사회복지 수급권의 동등한 인정은 바로 가부장적 제도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며, 또한 모성보호와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사회화는 여성노동력에 대한 자본주의적 착취를 거부하고 노동시장에서의 동등한 참여와 인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결국 국제적 협약에서 제언하는 평등의 개념은 전통적인 성에 의한 역할분리를 넘어서 가정과 사회에서의 공동책임과 공동참여를 강조하는 것이다.
2) 국내적 동향
최근 여성부에서는 1995년에 제정된 ‘여성발전기본법’을 ‘성평등기본법’으로 개정을 추진 중에 있다.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법적토대를 마련했던 여성발전기본법은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성차별을 해소하고 여성인권보호와 여성권익신장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여기에는 일반여성의 의제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여성정책에 대한 책무성을 명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발전기본법을 기반으로 추진되어온 정책은 여성인권 3법-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피해자보호-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으로 주로 수행해 왔다.
여기에 비해 성평등기본법은 여성-남성 모두 중심에 두어 사회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오고자 하는 정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전체시스템이 문제를 예방하거나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틀 자체를 바꾸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성발전기본법이 문제해결책의 목록인 여성정책기본계획을 통해 운영되었다면, 성평등기본법은 성평등지표와 정책에 대한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통해 성평등을 달성하고 유지하려는 데 있다. 여기서 성평등지표는 성평등정책의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고, 성별영향분석평가는 정책이 입안되어 집행되고 환류되는 전 과정에서 정책이 수요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여 성평등성을 유지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아직 개정안이 여러 여론수렴 단계를 거쳐야 하는 과정의 숙제로 남아있지만, 실효성있는 방안의 정책으로 기대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더욱이 중요한 점은 이러한 성평등기본법에 규정될 비전과 계획이 각 복지정책에 반영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방향수립과 정책실천, 평가를 통한 반영에 주력하여야 하므로, 각 정부 부처와 지자체의 성주류화 정책에 대한 모니터링과 성별영향평가, 성인지 예산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 말은 결국 국민들에게 현실접근성이 있는 것인지 혹은 실현가능한 것인지, 열악한 재정형편상 어떤 정책이 국민의 수용도가 높은지, 어떤 시책에 중점을 두어야 효과적인지, 이런 부분에서 검토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다.
지속가능적인 성인지적 복지정책의 방향을 논하기에 앞서 여성부(2001)에서 실시한 “한국여성의 삶과 일에 대한 국민체감 의식조사”를 살펴보았다. 이 조사는 남녀가 평등하게 통합되는 사회를 지향해가는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점을 도출하고 보다 뿌리 깊은 성차별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비록 이 조사를 본 고에서 거론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어느 정도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정책에 대한 요구라는 점에서는 변함없는 여성들의 바람이 잘 표출되어 있다. 여기서는 ‘의식개혁주도’가 19.3%, ‘보육및여성지원시설확충’이 19.3%, ‘여성의사회참여기회제공’이 17.0%, ‘법률및제도개선’이 14.8%, ‘여성능력개발관련프로그램제공’이 9.4%, ‘여성스스로의노력’이 9.2%, ‘여성의권리회복’이 7.2% 등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조사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성평등의 실현과 여성의 참여증진과 권리보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를 원하는 내용으로는 ‘보육및여성지원’, ‘참여기회제공’, ‘능력개발프로그램제공’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양성평등실현의 욕구는 여성의 참여를 넓힐 수 있는 여건의 마련으로 등식이 성립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성평등’과 ‘여성참여’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성의 경제활동참여가 점증하고 있는 요즈음 성평등이 과연 이루어지고 있는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인지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Ⅲ. 무엇이 ‘변화’하고 있는가
1.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출현
과거의 사회적 위험(OSR: Old Social Risks)은 근대산업사회의 산물인 노동력 상실과 관련된 위험-주로 빈곤, 질병, 실업, 노년 등-에 한정된 것들로, 당시 완전고용과 전일제 노동을 기초로 하는 동질적 노동시장에서 형성된 복지국가의 사회복지정책으로 이러한 위험에 대한 보호가 가능했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노동시장의 유연성, 산업구조와 인력구조의 재조정, 기업조직의 슬럼화를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출현하게 되는데, 이를 Taylor-Gooby(2004)는 다음과 같이 요약설명하고 있다.
첫째, 가족구조 및 성역할의 변화와 관련한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출현한다. 이는 여성의 고용증가와 더불어 전통적인 유형의 보살핌-무급노동으로 여성이 전담해왔던 보살핌-으로 해결하기가 힘들어졌다.
둘째, 노동시장의 변화와 관련한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출현한다. 지식정보산업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탈산업사회의 노동시장은 교육과 기술수준 및 고용간의 연관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자연스레 비/저숙련 직종의 비율이 감소하고 저임금직과 비정규직이 만연하게 된다. 그러므로 적절한 보수와 안정성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얻는 것 자체가 힘들어지게 된다.
셋째, 사회보장과 관련한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출현한다. 탈산업적 복지국가는 민영화를 통하여 사적복지를 강조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안전하고 충분한 복지급여와 복지서비스를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이상과 같이 산업사회의 사회적 위험과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을 종래의 그것과 비교정리해보면 <표 1>과 같다.
<표 1> 과거의 사회적 위험과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비교2)
|
과거의 사회적 위험(OSR) |
새로운 사회적 위험(NSR) |
시대 |
산업사회 |
탈산업사회 |
사회적 토대 |
제조업 중심의 완전고용 |
지식정보 중심의 단절적 고용 |
핵가족에 기초한 남성부양자 모델 |
양소득자 모델, 한부모가족의 증가 | |
형태 |
산재, 실업, 질병, 노령, 폐질 등으로 인한 소득의 중단이나 상실 |
아동 및 노인에 대한 보살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가족보호기능의 약화 단절적이고 불안정한 고용 비정형적인 직업경력 |
위험의 담지자 |
남성산업노동자 |
여성노동자, 저/비숙련 노동인구, 청년실업자, 아동, 노인, 편모(여성가장) |
2.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특징: 신빈곤 그리고 빈곤의 여성화
지식정보산업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탈산업사회에서의 산업구조의 변화는 노동과정의 고도화로 나타나기 때문에, 노동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 접근성의 약화로 나타나는 위험이 발생된다. 이러한 위험은 사실상 빈곤과 직결되므로,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가난한’ 근로빈곤(working poor) 계층을 양산시키고 있다.3) 근로빈곤은 과거 주변노동자층이 고도성장단계를 거치면서 일시적으로 노동시장의 공식부문에 편입되었다가 안정적 성장단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2차 노동시장으로 다시 탈락되는 불안정한 고용형태에서 주로 발생한다.
<표 1>과 같이, 기존 빈곤이 제조업 중심의 완전고용 형태를 띤 근대산업사회의 산물인 노동력 상실과 소득중단에 관련된 위험 속에서 형성되었다면, 신빈곤은 지식정보 중심의 단절적 고용의 형태를 띤 탈산업사회의 불안정한 고용과 관련된 새로운 사회적 위험 속에서 형성된다.
이에 빈곤에 대한 접근은 이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성장기에서 발생하던 빈곤과 질적으로 다르게 등장하고 있는 ‘신빈곤’의 특징은 절대적 빈곤보다는 상대적 빈곤, 일시적 빈곤보다는 만성적 빈곤 그리고 경제적 차원의 빈곤에다 사회심리적 빈곤까지 다차원적으로 불이익이 중첩된 복합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4) 이러한 변화는 여성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한다. 왜냐하면 세계화로 인한 경쟁력 추구와 정보통신기술의 혁신 등의 급격한 사회구조의 변화는 저학력, 저기술 및 보살핌을 담당하는 여성에게 더욱 불리한 체제로 작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더라도 주로 불안정한 고용직에 투입되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시장에서의 주변부적 위치를 강화시켜 여성을 자연스럽게 빈곤층으로 편입․증대시키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여성화’로 나타나며, 이는 다시 ‘신빈곤의 여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3. 한국사회에서의 새로운 사회적 위험
김대중 정부에 겨우 기본 틀을 형성한 사회복지는 채 성숙하기도 전에 IMF 경제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서 근대적 사회적 위험과 탈근대적 사회적 위험을 동시대처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5) 그러다보니 사회적 위험을 순차적으로 경험한 서구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과거의 사회적 위험과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중첩적으로 나타나는 ‘이중적 사회적 위험(Dual Social Risks)’ 속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령, 실업, 산업재해, 환경재해 등 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위험에서부터 노동시장 및 가족의 변화에 따른 불안정고용의 증가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가족보호기능의 약화라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까지 그 스펙트럼 폭이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위험에 대한 국가차원의 관리는 미약한데다가 일찍이 여성은 사회복지정책에서 배제되어 왔으므로 사회적 위험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신자유주의는 경쟁력 강화의 필요성을 내세워 근로자 파견, 파트타임노동제, 정리해고제 등 ‘신인력정책’으로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대시키고 있다. 이런 방식은 여성들에게 경제활동참여의 질적인 변화에 제한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여성노동력 가치에 대한 여전한 가부장적인 인식이 지배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노동유연정책 파생노동에 여성들이 많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차별과 배제되는 노동계층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여성이라는 신분에 의해 가장 먼저 실직되거나 빈곤화된다. 최근 노동시장 변화와 함께 부상한 근로빈민층에 여성이 3/4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를 짐작할 수 있다(통계청, 2005). 이런 사실은 일하지만 빈곤할 수밖에 없는 노동시장의 모순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노동에 대한 자본지배력이 탈산업사회에서도 여전히 강화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런 현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족 내 보살핌은 사적영역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사회정책의 영역에서도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사회적 보호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여성의 책임으로 주어지는 보살핌으로 인해, 여성은 취업선택과 포기의 양자택일 기로에 놓이든지, 아니면 노동시간을 조절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는 결국 임금노동의 접근성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렇게 성분절화된 노동시장에 저임금노동이나 미숙련노동에 집중되는 동시에 보살핌의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여성들은 중첩된 사회적 위험 속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Ⅳ. 무엇이 문제인가
산업사회에서 형성된 성별분업에 의거하여 설계된 남성부양자 모델은 전후복지국가의 이상적 형태로 평가되어 왔다. 이에 가족 내 보살핌은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으며, 사회정책의 영역에서도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런 성별분업이 최근 자녀양육에 갈등요인이 되어 보살핌의 위기라는 사회적 위험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앞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자동화에 따른 탈숙련화 또한 위계적인 성별분업의 재강화를 배태하고 있으며, 이렇게 성분절화된 노동시장에 여성들은 저임금, 미숙련노동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사회적 보호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여성에게 편중되고 있는 보살핌노동으로 인해, 여성들은 가정과 일자리를 병행하기에 한계가 많다. 또 이로 인한 경력단절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와 정규직에 진출하기 어려우며, 결과적으로 저임금의 단순직종이나 비정규직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여성의 노동참여는 증가하고 있으나, 임금노동의 접근성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6) 결국 정보기술발달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이런 새로운 사회적 위험으로 인한 이중삼중의 부담에 시달릴 수밖에 없으며, 이는 역량있는 여성들에게 사회․경제적 참여의 기회를 차단하는 역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적 위험과 관련된 문제는 단순한 격차의 문제를 초월한 복합적인 문제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표 2> 합계출산율 변동추이
년도 |
1960 |
1967 |
1970 |
1975 |
1980 |
1985 |
1990 |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합계 출산율 |
6.00 |
5.30 |
4.53 |
3.47 |
2.83 |
1.67 |
1.59 |
1.65 |
1.58 |
1.54 |
1.47 |
1.42 |
1.47 |
1.30 |
1.17 |
1.19 |
1.16 |
1.08 |
자료: 통계청, 2005. “2005년 출생통계 잠정결과”
[그림 1] 합계출산율
자료:통계청, “2006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2006.
통계청(2005) 조사결과, 2005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08명으로 세계최저의 수준이다. 2000년에 대비하여 0.39명 줄고, 전년도 2004년 1.16명 대비 큰 폭으로 하락한 수치이다.7)
사실 자녀출산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율적인 선택권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독립적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저출산은 자녀양육에 드는 비용과 보살핌 둘 다 줄일 수 있는 방법이므로 여성들은 저출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출산율 저하는 인구규모의 축소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노동력 감소 및 인구구조를 비정상적인 형태로 변화시키는 사회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이렇게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과정이나 사회과정과의 상호연계적인 관계로 국가의 존속과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저출산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저출산문제는 주로 고령화사회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생산연령 인구의 감소에 따른 사회적 활력저하 및 사회복지비 지출 증대 등 인구문제, 경제문제, 복지문제 등으로 논의되어져 왔다. 그러나 최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증가와 함께 보살핌에 대한 사회적 보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증가하는데, 그들을 돌볼 인구는 가족구조의 변화로 적어지고 있다는 어려움 즉 ‘보살핌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보살핌의 위기는 ‘삶의 안정망의 위기’이며 그것은 ‘공동체 재생산의 위기’와 이어지면서 공동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결코 개인적이거나 사적인 것이 아닌 공적인 문제로 정책의 차원에서 접근되어질 문제이다(허라금, 2005).
<표 3> “결혼하는 것이 결혼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에 대한 성과 연령별 찬성비율
연령 |
남자 |
여자 |
20대 |
61.8% |
54.1% |
30대 |
67.7% |
59.1% |
40대 |
70.3% |
62.9% |
50대 |
74.3% |
67.2% |
60대 |
75.7% |
72.9% |
70대 |
74.0% |
77.5% |
자료: 장혜경 외, 2003
그 한 예로, 인생에서 결혼을 필수적인 것이라고 보던 관념이 선택개념으로 바뀌는 것을 <표 3>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향후 국가의 존속과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적 문제로 제기되는 저출산은 보육의 공공성 문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살핌 위기에 따른 파생문제’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미비하며, 이는 보살핌을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공적인 과제로 남기고 있다. 따라서 ‘보살핌의 공공성’에 대한 정책적인 합의가 있어야만 성주류화 복지정책에 대한 체계가 마련될 것이다.
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성평등과 성주류화가 성인지 정책의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으면서 성인지적 관점에서의 복지정책의 패러다임도 [그림 2]와 같이 계속 진화 중에 있다.
성인지적 관점의 초기단계는 남녀평등을 위한 성 편견 제거라는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반영에 급급하였으므로 그 다음 단계 역시 양성평등을 위한 제도적인 틀을 갖추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에 ‘여성특수주의’에서 ‘양성평등주의’로 이동을 하고 있으며, 민주화 이후 정치적 기회의 변화 속에서 ‘갈등과 대립’의 대상이던 정책들이 ‘갈등과 협상’의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젠더제도화’는 어느 시기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8)
국가의 정책전반에 성인지적 정책의 개념으로 포함하려는 현 단계에서는 성인지적 목표만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성인지적 관점을 통해 이루려는 보다 상위의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한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이해에 따라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기획되어져야 할 것이다. 즉 젠더를 포함하는 정책 나아가 젠더 동등한 정책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발전의 관점을 통합한 총체적 접근의 성주류화 전략으로 수행되어져야 한다.
WID 단계 |
===⇒ |
GAD 단계 |
===⇒ |
HACD 단계 |
남녀평등 | ||||
양성평등 |
성평등 | |||
사회참여 권유 | ||||
역할변화를 통한 여성의 권한 증진 | ||||
인간발전의 관점을 통합한 총체적 접근, 인간중심(people-centered) 관계와 보살핌 중심 |
[그림 2] 성인지적 관점의 패러다임 전환
1. 발전적 단계에서 본 젠더적 접근
1) WID(Woman-In-Development)
1970년대의 ‘발전에의 여성개발’인 WID 전략은 국가발전의 전략안에서 정책수행 시 제외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사회발전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권유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는 제3세계 개발연구에 영향을 받아 근대화 과정이 여성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국가정책과 기존논의를 전제로 여성의 존재를 고취시키는 의식을 확대시키면서 발전해 왔다. 그래서 제3세계 근대화과정에서 전통적인 성역할체계에 입각해서 여성을 '재생산자‘로 제한했던 복지접근의 대응전략으로 개발되었다.
그러나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는 여성의 능력개발로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고, 만연해 있는 고용상의 성차별에 대한 예방 및 시정, 성별임금격차 해소, 남성 집중직종에 여성진출 확대, 여성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마련과 병행되어져야 한다. 즉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은 상황에서 여성 경제활동 참여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이 마련되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럴려면 저임금 등 차별적인 여성들의 고용조건, 직종 등 고용의 질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이렇게 성차별이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서의 핵심정책 중 하나는 여성인력 개발 및 활용인 것이다.
따라서 근대화 이론에 기반한 WID 접근의 프로그램은 교육기회 향상, 고용 및 임금창출 기회를 만듦으로써 여성의 실제적 요구에 부응하도록 초점을 두었다. WID 접근은 여성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요보호여성복지, 소득증대, 건강관리 등을 중시하며, 여성들의 국가발전참여에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었다. 그러나 여성참여영역이 제한되는 한편 여성을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로 규정하여 여성들의 공적진출에 대한 관심에 비하여 사적영역에서의 여성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였다(박미석 외, 2004). 이는 여성을 별도의 집단으로 취급하여 여성의 관심사안을 주류의 발전에 ‘추가적’이며 주변적인 것으로 초래한다. 이처럼 ’생산자‘로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여성을 생산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고자 하였으나, 남녀 간의 격차를 충분히 좁히지 못하고 여성을 발전의 주변적 한계에 머무르게 하는 한계점이 있다.
2) GAD(Gender-And-Development)
1990년대의 ‘성과 개발’인 GAD 전략은 여성정책이 발전정책의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발전과정에서도 남성은 행위자/여성은 수혜자로 주변에 머무르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성으로 인한 권력관계에 중점을 두는 GAD 접근은 남성과 여성 모두 평등한 관계를 이루기 위한 적극적 방법으로 전통적 성역할에 기반한 정책을 지양하고 양성간의 평등한 권력관계를 중시하였다. 따라서 성관계를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행동패턴으로서 여성의 지위를 결정짓는 주요인으로 규정하며, 여성은 인종, 계급, 문화, 경제질서에서의 위치에 의하여 상이하게 억압을 경험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여성과 남성의 상대적 지위에 관심을 두고, 남녀 모두의 역할변화를 통해서 여성의 권한을 증진시키려는 입장이기 때문에 성불평등을 견제하면서 여성이 갖는 경쟁력을 강조하고 부각시킨다. 그렇지만 여성과 남성의 상황을 비교하고 여성과 남성 간의 관계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성불평등 외의 불평등에 대한 고려는 자원과 에너지 분산이라고 회피하는 한계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AD 전략과 함께 성인지적 관점의 중요성 및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에 따라 성주류화 정책을 국가의 모든 정책에 점진적인 단계를 통하여 적용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성을 기준으로 하는 모든 불평등한 요소들을 근절해 나가기 시작하였다(김경희, 2002).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후반부터는 GAD 관점으로 여성관련정책이 국가정책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국가의 정책전반에 삽입하도록 하기 위하여 성인지적 관점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강남식, 2001). 이러한 시도는 2001년 여성부가 설치되고 2002년 여성발전기본법에 성인지적 정책분석․평가의 의무화가 신설조항으로 삽입되면서 본격적인 성인지적 관점에 입각한 국가정책의 분석이 이루어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박미석 외, 2004).
3) HACD(Human-And-Care-Development)
앞서 두 단계는 복지적 관점의 여성대상 중심의 전략에서 젠더적 요구가 반영되는 성인지적 전략으로의 전환이다. 앞으로 진행되어야 할 HACD 접근은 최근 세계화와 정보화로 인해 기존의 불평등과 사회적 위험을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전제하고, 지역적인 것과의 단절과 대립보다 혼융과 대체를 추구하고 보살핌을 중심적으로 복지를 강조하고 인간중심적인 정책입안이 지속가능한 발전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이다. 즉 사람-지역사회-정부의 이해관계에 주목하여 경쟁화되는 시장을 대비하여 지역사회와 주민에게 더 친화적일 가능성을 감안한 전략이다.
사실 성주류화는 정책의 남녀평등에만 초점을 두고 있으므로 발전의 다른 당위적 측면들과의 연계성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총체적 조망을 결여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김영혜, 2005). 실질적인 성주류화 전략은 발전의 총체적 맥락 속에서 수행되므로, 인간발전의 총체적 조망을 결여한 성주류화는 전략적 효과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주류화의 패러다임은 인간발전의 총체적 맥락 속에서 수행되어져야 한다. 이런 영향때문에 최근 성인지적 관점이 정책적 관심에 대한 것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남녀를 떠나서 사회현상이나 현실적 상황에 대한 분석을 시도할 수 있는 접근법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이 접근은 무엇보다 Ⅲ장에서 살펴 본 새로운 사회적 위험 속에서 초래되고 있는 여성들과 관련된 위기를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데서 이루어질 수 있다.9) 성평등정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보육과 가족 등 집행기능이 많이 포함된 정책들로 구성되는 문제해결형 전략으로 진일보되어야 한다.10) 여성의 노동참여가 늘어나고, 더 이상 남성부양자에 의존할 수 없는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그리고 여성노동의 질적개선이 요구되면서 이 부분은 더 이상 간과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야만 여성들도 노동권이 보장되고 노동을 통해서 경제적 자립이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사회적 상황의 변화 그 자체가 정책수립에 외면할 수 없는 당면과제가 되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서 무엇보다 주시할 부분은 세 단계가 상호배타적이거나 모순된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완결 위에 다음 단계의 기틀을 마련하는, 즉 개별적으로 발전적이면서 동시에 상호조율적이면서 상호연계적이어야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2. 성인지적 복지정책 프로그램 예시
현재 한국사회의 새로운 사회적 위험 속에서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정책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그 대상은 누구인가? 이런 핵심적인 질문에 도달하기 위해, 이미 앞장에서 탈산업사회에서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부상과 이에 따른 문제점들을 파악해 보았다. 이렇게 표면적으로 발생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대응체제의 하나로 앞서 세 단계의 특성을 감안한 성인지적 관점의 발전적 단계로 접근하는 하나의 프로그램인 <표 4>를 예시해 본다.
이것은 탈산업사회에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을 인지하고 그 위험으로 인한 파생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설정이라는 주제로, 이런 이슈에 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암묵적인 정책방향과 암시적인 해답을 함축하는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 속에서 여성적 특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단계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실정상, 프로그램 예시 중 첫 번째 WIDP 단계는 여성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지만, 역할변화를 통해 여성의 권한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두 번째 GADP 단계는 양성평등이라는 모습으로 구현시키려는 취지에서 일반여성들에게 가장 큰 현안일 수 있다. 세 번째 HACDP 단계가 삶의 질 향상이라는 복지측면과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인 위험관리체계로 도입되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이런 프로그램 자체가 여성의 역할 및 위상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다. 기존 정책을 젠더 동등한 정책으로 이행시키기 위해서는 여성 스스로의 의식고양은 물론, 정부와 민간부문 모두가 탈산업사회에 일어날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한 철저한 대응이 필요하다.
<표 4> 성인지적 복지정책의 발전적 단계의 프로그램 예시11)
단계 |
전제 |
프로그램 개발 내용 |
WIDP (Woman In Development Policy) |
․ 남녀평등은 차별을 타파하는 사회발전이므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 여성이 이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참여 확보 ․ 성불평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 기존 사회관계,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내재된 문제점은 고려하지 않음 |
․ 생산자로서의 역할 강조-사회발전/생산노동에 적극 참여 ․ 고용 및 임금창출 기회 ․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요보호여성)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 ․ 성불평등 해소 프로그램 |
GADP (Gender And Development Policy) |
․ 양성평등은 역할변화를 통한 여성의 권한 증진에서 촉발→ 정보화에 여성이 갖는 경쟁력 강조 및 부각 정책-현실 사이의 괴리 ․ 성차별적 결과를 견제하면서 성불평등을 보완할 방안을 정책입안과정으로부터 체크하여 성별영향평가 실시 ․ 성불평등 외의 불평등에 대한 고려는 자원과 에너지 분산이라고 회피 ․ 교육과 훈련 시행자인 여성은 대상자들이 배우고 따라야 할 모델 |
․ 기존의 위계적 성별분리에 따른 생산적/소비적 여성을 그대로 편입 ․ 교육과 훈련을 통해 여학생/여성을 엘리트 집단으로 진입시킴 ․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여성들에게 창업, 이공계 진출 여학생 지원 ․ 공공기관의 직업교육훈련 및 취업/창업지원사업 실시 |
HACDP (Human And Care Development Policy) |
․ 탈산업사회는 불평등과 새로운 사회적 위험을 심화/극대화하는 경향 ․ 사람-지역사회-정부의 이해관계에 주목→ 세계화되는 시장과 기업을 대비하여 지역사회와 주민에게 더 친화적일 가능성 감안 ․ 보살핌 중심적으로 복지 강조 ․ 인간중심적인 정책입안이 지속가능한 발전임을 강조 ․ 성평등과 성주류화라는 정책목표와 현실 간 간극 해소 |
․ ~친화적, ~맞춤형 프로그램 개발 ․ 지역에 주어진 여건과 일상생활에 적실한 내용 개발(온-오프라인블랜디드통합교육, 개인관리) ․ 교육자와 피교육자 간의 역학관계에 대한 감수성 견지 ․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 간 라포형성 ․ 보살핌의 사회화 |
Ⅵ. 나오며
한국은 고도의 압축성장과정에서 여성들을 저임금노동력으로만 활용했을 뿐 성불평등을 개선하려는 정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러한 무성적 정책에 대한 부메랑 현상이 지금 여성들에게 새로운 사회적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하이테크 경제가 중요시되면서, 이들이 요구하는 전문성과 숙련의 차이는 저임금과 그로 인한 신빈곤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런 불평등한 여성지위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성들은 지난 반 세기동안 노력해 왔으며, 정부차원에서도 다양한 정책들이 실시되어 왔다.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의 제정에 따라 1998년 여성발전기본계획이 수립되면서 성주류화를 위한 도구로서 성인지적 관점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성인지적 관점의 도입 그 자체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꾸준한 발전적인 입장에서 정책이 개발되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복지정책도 인간발전의 관점을 통합한 총체적 접근, 인간중심(people-centered) 관계와 보살핌 중심에서 의미있고 생산적인 활용을 도모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이에 부합하는 성인지적 복지정책의 발전적 단계의 프로그램을 본 고에서 예시해 보았다.
이 프로그램을 토대로 정책이 보편성을 추구할 때, 인권보장과 평등이라는 이상적 가치를 추구할 때, 여성들은 복지정책을 통하여 기존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역동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가시적인 개념의 제도화만을 ‘생산적’인 것으로 보지 말고 지속가능적인 복지의 ‘잠재성’에 투자하는 정책을 모색할 중요한 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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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ylor-Gooby. P. 2004. New Risk. New Welfar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이 어렵도록 구조화되어 있어서, 빈곤여성노인과 여성가구주 가족이 공공부조의 주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빈곤의 여성화 현상은 사회구조적 문제로 남성부양자가 없는 여성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현 추세라면 남성부양자가 없는 가족은 증가할 것이며, 이들의 생계문제는 국가적으로 큰 부담이 될 것이다(최선화, 2005).
2) <표 1>은 본 연구자가 김철주와 박보영의 2006년 자료의 표를 인용하여 수정․보완시킨 것이다.
3) 미국의 경우, 빈곤선보다 낮은 임금을 지불하는 일자리가 늘고 있으며 유럽의 경우, 높은 직업계급에 기술투자가 집중된 나머지 저숙련직업에의 기회는 차단되어 가고 있다(Esping-Andersen, 1999).
4) 과거 빈곤층은 자녀교육을 통한 사회이동으로 다음 세대에 빈곤탈출의 희망을 가졌던 반면, 새로운 빈곤층은 이러한 세대간 빈곤탈출의 가능성이 낮아져 빈곤의 세습화를 강화시키는 개연성이 많다. 따라서 신빈곤층은 이전의 빈곤층에 비해서 빈곤탈출의 가능성이 낮으며,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갖게 되는 소위 ‘절망의 빈곤’ 속에서 악순환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저소득층에서 주로 발견되는 근로빈곤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한 특징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오늘날 신빈곤 현상의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다.
5) 1997년 이후 최소한의 욕구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로 인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 등 복지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응은 초기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미약한 상태이다(김영순, 2005).
6)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추이>
|
1960 |
1970 |
1980 |
1990 |
1997 |
1998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여성 |
26.8 |
39.3 |
42.8 |
47.0 |
49.5 |
47.0 |
48.3 |
48.8 |
49.8 |
49.0 |
49.9 |
48.4 |
51.3 |
남성 |
73.5 |
77.9 |
76.4 |
73.9 |
75.6 |
75.2 |
74.0 |
73.6 |
75.0 |
74.7 |
75.0 |
74.6 |
74.8 |
자료: 경제기획원
7) 이는 OECD 국가를 비롯한 전세계국가 중 최저수준의 출산율로 전망되며 2001년 이후 대부분 선진국들의 출산율이 증가하고 있어 향후 선진국들과의 출산율 격차가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2004년도 합계출산율이 1.16명으로 당시 OECD 국가의 평균인 1.6보다 낮아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정부로 하여금 복지정책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출산율 저하는 두 가지 점에서 서구선진국과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출산율이 너무나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 출산율 저하 등 가족구조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는 종합적인 복지정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이에 대한 준비도 미흡하다는 점이다.
<선진외국의 합계출산율>
|
일본 |
미국 |
영국 |
프랑스 |
독일 |
이탈리아 |
체코슬로바키아 |
2001 |
1.33 |
2.034 |
1.63 |
1.888 |
1.349 |
1.256 |
1.146 |
2004 |
1.29 |
2.048p |
1.74e |
1.90p |
1.37e |
1.33 |
1.23 |
자료: 통계청, 2005. p: 잠정 e: 추정.
8) 여기서 양성평등주의란 개념은 차이와 다양성이 반영되지 않은 기계적인 평등으로 인식될 수 있으므로,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차원에서 양성평등이 아닌 성평등이란 단어 사용이 바람직하고 적절할 것이다.
9) 최근 가족구조의 변화와 노동시장의 여성참여 증가는 여성으로 하여금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에 갈등을 초래하게 되며,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증가하는데 비해 그들을 돌볼 인구를 적어지고 있는 어려움 즉 ‘보살핌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동과 노인에 대한 보살핌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는 사회적인 인식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10) 탈산업사회의 여러 변화 속에서 보살핌은 단지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무능력자, 보호를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국한되어 요구되지 않는다. 보살핌의 위기는 이 시대적 삶의 조건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잔여적 또는 특수적인 복지정책의 차원에서 접근되는 것을 넘어서 보편적 복지에서 접근되어야 할 문제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허라금, 2005).
11) <표 4>는 본 연구자가 Anita Grumurthy의 2004년 자료 BRIDGE의 내용을 인용하여 한국 실정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작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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