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 고향인 증평, 괴산, 음성, 진천군이 묶여 있는 충북 중부4군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기 위하여
한나라당에 공천을 지난 2009년 9월 29일(화) 1700시에 신청하였습니다.
이번 보궐선거는 10월 28일(수)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예상되어 왔기는 하지만 9월 24일(목) 막상 김종률 전의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니까 저의
마음이 무진장 급해짐을 느꼈습니다.
25일부터 서류를 준비하는라고 이리 저리 분주히 돌아 다니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어찌되었든 그 문제도 해결되어 9월 29일 서류를 모두 준비하여 공천신청을 마무리 했습니다.
이에 따른 중앙당의 후속조치는 매우 급박하게 돌아 갔습니다.
30일 오전 10시에 중앙당에서 공청신청자에 대한 면접이 있다는 통보를 받고 30일 아침에 중앙당을 다시
찾았습니다.
가나다 순으로 경대수, 김경회, 김영로, 안재헌, 양태식, 조영호 순으로 면접이 실시되었습니다.
면면을 들여다 보면 공천신청자들 대부분이 중학교, 고등학교, 군의 선후배 사이였습니다.
면접 차례가 되어 면접장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원탁 주위에 장광근 공심위원장을 비롯하여 4명의 공심위원이
좌우로 2명씩 앉아 있었습니다.
먼저 장광근 공심위원장은 공천신청의 변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4가지를 말했습니다.
1. 서울시의회에서 바라다 본 우리 사회의 현실이 너무도 갈등과 분열의 흔적을 보여 이의 화합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이를 위하여 많은 생각을 하고 노력을 해보았지만 지방의회에서는 한계를 느끼며 역시 세상을 개혁
하려면 국회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여 공천을 신청했으며,
2. 전통적으로 여당지향적인 충청북도에서 한석 뿐이 없는 한나라당의 의석을 늘려야 정권 유지 및 재창출에
보탬이 될 것이라 판단하며 보수표의 분열로 빼앗긴 의석을 바라보면 분노가 치밀기에 이를 시정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지는 것이고,
3.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고향과 조국을 위하여 몸 바칠 각오로 이번 보궐선거에 도전하겠되었으며,
4. 개인적으로 이미 돌아 가셨지만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공천신청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공심위원들의 주요한 질문 몇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민주당의 정범구 후보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는 사람인데 이에 대해서 어떠한 대책을 갖고 있는가?
=> 그가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지도 비교라는 측면에서 따지면 공천을 신청한
여섯명이 정범구를 따라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른 신청자들의 인지도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중부4군의 내부에 있는 지엽적인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정범구보다 더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는 인물을 부각시켜 그것을
잠재우는 것인데 그러한 인물로는 당연히 박근혜 전대표이다.
당 차원에서 그에 대응가능한 바람을 일으켜 주어야 한다.
2. 증평이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고향을 떠난지 40여년이 흘렀는데 그간의 공백을 어찌 극복할 계획인가?
=> 공부를 위하여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난 것은 사실이지만 고향이 멀지 않은 청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기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 그리고 군 선후배들이 4개군이 흩어져 있으므로 그 간에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주 지역을 방문하여 행사에 인사를 드리고 했으며 아직은 외삼촌을 비롯한 친인척이
지역 내에 많이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충분히 그 공백이라고 하는 것을 극복할 수 있고 승리를 할 수
있다고 확신을 한다.
3. 나머지 질문과 대답은 생략합니다.
공천면접이 끝나고 나와 조영호 장군이 군선배이자 고등학교 선배이기에 그분의 면접이 끝날 때까지 남아
깍듯이 예우를 해드리고 나오니 오후가 되었습니다.
지역 사무실로 돌아 오는 길에 충북 도당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10월 1일 충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10월 1일 11시에 충북도청 기자실에 도착하니 민주당 정범구 후보, 민노당 박기수 후보의 기자회견이 먼저
진행되고 있기에 고등학교 동창이며 연세대학교 동문인 도의회 이대원 의장실을 찾아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기자회견이 시작이 되어 6명의 신청자가 경선의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을 하였고 이 기자회견은 이날
충북의 지역방송을 통하여 지역에 방영이 되었습니다.
사실이 얼굴과 이름알리기 작업을 시작하였으나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매우 많은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짧은 기간인데다가 추석휴일이 3일간이 겹쳐서 제대로 작업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10월 5일 여론조사를 중앙당에서 실사하였으니 인지도 제고가 정말 어려웠음을 짐작이 갈 만도 할
것입니다.
사실 이 것을 예상했기에 한 여인의 마음을 사려고 했지만 그 연결고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여 인지도의
제고에는 실패를 하였습니다.
10월 6일 인지도에 따른 압축작업이 시작되었으니 무엇인가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감지하고 밤중에
서울로 올라와 여러 채널을 중앙당에 접촉하였지만 결과를 뒤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10월 7일에 3배수 압축결과가 언론에 보도가 되었고 그에 따른 정범구 후보와의 가상대결이 다시 시작되었
습니다. 이제 공천의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시립대학교에 가서 박사과정의 영어 작문시험을 보고 오기도 하였으나 공심위 결정에 승복을 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10월 8일은 공천을 받는 일에 실패한 자로서 그에 승복을 하는 날이고 따라서 기간 중에 저를 위하여 애써주신
고향의 모든 분들에게 인사를 남기려 다시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일단 군청을 들러 군수실을 찾아 인사를 하고 기자실을 들러 공심위 심사결과에 승복하는 보도자료를 남기고
기간 중에 도와주신 지지해주신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을 찾아 인사를 드렸습니다.
돌아 오는 길에 진천군에 개소된 경대수 후보자의 선거사무실을 들러 선전을 당부하는 인사를 하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발길은 약간 무거웠습니다.
그 이유는 기간 중에 보아온 증평괴산 통합제의와 반대로 인한 괴산군과 증평군의 갈등을 회상하는 일을 포함
하여 음성군, 진천군, 괴산군, 증평군이라는 소지역주의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초미니군 증평군 출신으로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커다란 숙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늘 풀리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안 마련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며
선거공약으로 검토되었던 "한국판 디즈니랜드"의 건설 및 청주<->동해간 고속도로의 건설에 더욱 더 심도있는
연구를 기울일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밤길의 중부고속도로에서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저의 공천을 위하여 날마다 성당에 가서 기도를 해주신 어머니는 "수고했다. 너무 마음 상해하지 마라. 이제
건강 생각해서 좀 쉬도록 해라"고 담담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다른 것은 다 참았는데 어머니와의 통화를 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에잇! 사나이가!!!"
다음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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