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등의 의미는 무엇인가? #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가? # 만일 여성들이 남성과 평등하다고 주장한다면, 여성들은 어떤 남성과 평등하다고 주장해야 하는가? # 그리고 어떤 문제에 있어서 평등을 주장해야 하는가? # 여성은 기회의 평등을 주장해야 하는가, 아니면 결과의 평등을 주장해야 하는가? # 만일 여성들이 차이를 인정하고자 한다면, 이런 차이들은 자연적, 생물학적 차이인가, 아니면 특별 한 사회적, 경제적 조건의 결과의 차이인가? |
▶여성과 남성 경험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들
우리는 살면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듣는다. 여성과 남성의 생각, 태도, 정서의 차이, 관심의 차이 등등 남녀의 차이에 관한 주제는 연구논문, 잡지, 대중서적의 중요한 주제가 되어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몇 가지 예를 보자면 다음과 같다.
사례1<< 관심분야의 차이
여자들은 소규모 집단을 이루어 함께 놀고 또 친화관계의 한 형태로 다른 여자들과 ‘비밀’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십대의 소녀들은 남자 친구들의 체중, 옷, 다른 여자친구에 대해 이야기 한다. 어른이 되면 다이어트,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 결혼, 자녀, 애인, 성격, 의상, 남들의 행동, 직장의 인간관계, 사람과 관련된 화제들을 이야기 한다.
남자는 사물과 행동에 대해서 애기한다. 누가 무엇을 했고, 누가 무엇을 잘하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물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등... 십대소년들은 스포츠, 기계, 직장, 뉴스, 그들이 한 일과 방문한 곳, 기술, 자동차, 기계부속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사례2<< 언어능력의 차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언어 능력이 뛰어나서 말을 잘하고 많이 한다고 알려져 있다. 남성들은 여자와 비교해 볼 때 말을 잘하지 못한다.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보다 말을 빨리 시작한다. 세 살짜리 여자아이는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보다 두 배나 많은 어휘를 습득한다.
사례3<< 스트레스 대체 방식의 차이
남자는 스트레스 받으면 술을 마시거나,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남자를 상징한다.
만약 ‘생각하는 사람’이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면? 로댕이 만약 여자를 주제로 하여 그 조각을 만들었더라면 그 제목은 아마도 ‘말하는 삶’이 되었을 것이다.
▶ 성차는 성역할 규범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
남녀의 차이를 단순히 선호의 차이 정도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이유는 여러 세기 동안 이야기 되어 온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여성과 남성에게 상이한 사회적 기능을 부여한 출발점이자 도구로 사용되어 여성과 남성 간에 불평등한 관계를 정당화 시켜왔다는 점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 여성의 임신, 출산, 수유 능력 등 보편적으로 힘이 약한 신체로 인해 가정의 잡일과 아이들을 기르는 일을 하게 됨으로써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이 가정에 국한되는 것이고,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는 공적 영역에 참여 하기에 부적합하다. 여성은 남성보다 덜 합리적이고 정서의 지배를 더 많이 받기 때문에 정치적 결정 능력이 없다고 평가됨. (여성은 가정을 기반으로 사적 세계의 활동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는 서구의 철학자들뿐 아니라 동양의 음양이론에서도 뿌리 깊게 반복되고 있다. (하늘과 땅, 씨와 밭, 늑대와 여우)
생물학적 성 차이 사례1<<< 두개골 학
남녀 사이의 지능의 차이가 있다는 학설을 수립하기 위해 뇌의 크기를 측정.
두개골 학은 두개골의 크기나 뇌의 질량으로 남녀의 차이를 설명. 평균적으로 볼 때 여성의 뇌는 남성의 뇌보다 덜 나 갔으며 크기도 더 작았다. 따라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치명적인 반격에 부�히게 되었다. 코끼리의 문제이다. 만일 뇌의 절대적인 크기와 질량이 중요한 기준이라면 사람보다 훨씬 큰 뇌를 갖고 있는 코끼리가 만물의 영장이어야 한다는 것.
생물학적 성 차이 사례2<<< 사회 생물학
인간진화와 생존의 요구와 관련해서 남성행동과 여성행동을 설명하려 함. 남녀간의 차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우리 몸 곳곳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도저히 변화 될 수 없다고 주장. 현재의 위계질서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에 대해서도 그 것은 진화의 순리를 거스리는 일 이라고 주장.
페미니스트 사상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시몬느드 보봐르는 <제2의 성>이라는 책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진다”는 유명한 주장을 하였다. 즉 여성들의 열악한 위치는 “자연적인” 것이거나 생물학적인 사실이 아니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함축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과연 성 차이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남성과 똑같다는 것을 근거로 동등한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가? 아니면 여성들은 동등하지만 다르며 특수하게 “여성적인” 특성이 “남성적인” 특성만큼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해야 하는가? |
▶우리가 사회에서 혹은 가정에서 느끼는 성 차별을 이야기 하자
예시>> 1. 인종차별/ 미국의 한 화장실(백인과 흑인)
2. 인권운동/ 크레파스의 이름변경 (살색- 살구 빛 색)
3. 여성의 성 상품화(사과와 바나나)
4. 최근 일어난 러시아의 여성관
▶ 평등-차이 논쟁을 넘어서
성별의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것은 남녀간의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흑인 노예 문제가 그들이 흑인이기 때문에 생겨 난 것이 아니라 백인과의 관계에서 흑인을 노예로 만들어내는 사회적, 정치적 구조의 문제인 것과 같다. 우리는 이점을 기억해야 하는데 차이가 차별을 낳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별을 만든다는 점이다.
모든 차별은 인간들 사이의 차이를 서열화하고 위계화 하는데서 시작한다. 여기서 개인들 간의 차이를 서열화하는 기준은 대부분의 경우 권력관계에 있어서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집단의 의해, 그들의 이해와 관점에 의해 정해지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남해’가 서울 사람에게는 ‘남해’일 수 있겠지만 제주도 사람에게는 ‘남해’일수 없듯이 사회에서 ‘능력’의 판단기준은 남성적 속성을 띠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가정에서 아이보고, 살림하는 것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과연 그 능력은 누구의 관점에서 인정되는 것인가?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의 평등과 차이 사이에서 딜레마를 느끼는 것은 바로 양자를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 오류에서 비롯된다. 평등의 반대는 차이가 아니라 불평등(차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부장적 성별 체계는 남성을 기준으로 여성에 대한 다양한 차별과 배제를 체계화하고 있다. 우리들은 진공상태에서 살고 있지 않고 이러한 가부장적 성별체계가 작동하는 공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성차별적인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여성을 차별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 관한 잘못된 가정들 때문에, 그리고 그런 가정들을 개선시킬 수 있는 의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다. 차별 중에서 가장 무서운 차별은 바로 선입관이나 편견에 의한 무의식적인 차별인 것이다. 우리가 ‘외국인’을 떠올려 보라는 질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백인 남성을 떠올릴 것이다. 흑인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의식 깊이 박혀 있는 차별의 한 예이다.
평등과 차이의 이분법을 넘어서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식의 부단한 변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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