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영등포 소식

자신감,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다.

영등포로터리 2009. 3. 10. 00:36



윌마 루돌프(Wilma Rudolph); 1960년 로마 올림픽 육상 3관왕

윌마 루돌프(Wilma Rudolph)양,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100, 200, 400 미터에서 3관왕이 된 미국의 흑인 여자 육상 선수.

윌마 루돌프 양, 그녀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냈다.
홍역, 수두, 백일해 등 그녀가 살던 클락시빌
마을에 돌림병이 발생하면 그녀를 빼놓고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클락시빌의 유일한 병원은 백인 전용이었다.
윌마는 5살이 되기 전에 성홍열을 심하게 앓더니
폐렴에 걸렸다.
죽을 고비를 넘기는가 싶더니 별안간 왼쪽 다리가 휘기 시작했다.
의사는 소아마비 선고를 내리고 살아남더라도
걷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의 선고를 들은 후 그녀는 절망의 수렁에
빠졌다. 끝없이 절망의 늪으로 추락했다.

..................
그녀를 구한 것은 가족이었다.
가족들이 지치지 않고 격려하고 보살핀 덕으로 절망을 극복하고 힘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적의 아이”로 다시 태어났다.
의사들은 “다시는 걸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녀도 어머니 말을 믿었다.

윌마 양과 어머니는 토요일 마다 내시빌에 있는 메하리 의과대학으로 가서 물리치료와 마사지를 받았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그 시기에 흑인을 담당하는 의사는 단 1명뿐이었다.
가족들은 마사지 치료방법을 병원에서 배워서 어머니 언니 오빠가 하루 네 번 마사지를 해 주었다. 21명의 형제자매 중 20번째로 태어난 그녀에게 대가족이 정성을 다해 모두 매달렸다.

그녀는 아주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9살 때 걷기 보조기를 집어던졌고 11살 때는 농구를 시작했다.
그녀는 걷기도 하고, 뛸 수 있게 되었다. 가족의 정성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그녀는 계속 걷고, 뛰고, 걷고, 뛰고를 반복했다. 치료가 우선 목적이었다.
이 소녀의 모습을 지켜본 테네시 주립대학교의 여자 육상 팀 감독이었던 에드 템플은 윌마 양을 대학 육상 팀 여름 캠프에 초대했다.
여름캠프 내내 그녀는 달렸다. 그리고 달리기를 배웠다.

1956년 16살이 된 윌마는 호주 멜버른 올림픽의 미국의 여자 육상 대표로 나갔다. 100미터, 200미터에서는 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했으나 400미터 계주에 나가 동메달을 땄다.
4년 후 20살이 된 그녀는 건강한 60킬로그램의 날쌘 육상선수로 성장했다.
여자 100미터, 200미터, 400미터 계주에서 피스톤처럼 질주하는 그녀를 아무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녀는 여성 최초로 올림픽 3관왕이 되었다.
가난한 집안의 소아마비 흑인, 병치레나 하던 허약한 소녀가 인종차별의 장애와 절망을  극복하였다.
세계 사람들은 그녀를 기적의 아이, 검은 가젤이라고 불렀다.
...................
그렇다.
이렇게 보면 절망이고
뒤집으면 기회다.


윌마 루돌프(Wilma Rudolph) 양의 자서전을 요약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