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의 진화]
벌써 달 수로 3개월 째 매주 토요일 애국시민 태극집회에 나가면서 피로가 누적되는 느낌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가 참 이상한 것도 동시에 느낀다. 그것은 집회에 나가지 않으면 애국시민에게 빚을 지는 것 같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라면 굳이 빚지지 말고 매번 참여하여 떳떳하게 살고자 함이다. 그래서 장거리 이동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은 당분간 양해를 구하여 참석을 하지 않아도 마치 참석한 것처럼 주민이나 지인이 생각을 해줄 지경이 되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주말이면 경사가 많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계좌로 대체할수 있는 수단이 있어 다행이며 심지어는 월 1회의 모임조차 장소를 집회가 있는 곳 근처로 정하여 진행을 해보니 집회에 결근이란 없다. 물론 뭐하러 다니느냐고 핀잔을 주는 주변의 사람도 있지만 나의 집회 참여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라 말하고 싶다. 그 사명감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나라와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진단과 함께 그에 대한 적극적인 처방을 개인적으로 국가사회적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편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전쟁이라고 처음부터 선언을 했다. 즉, 그 전쟁이 종류로 보아 첫째, 이념적 전쟁이고 그것은 내 조국 대한민국의 기본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둘째, 그것은 신수구세력의 반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사회적으로 헬조선을 젊은 영혼에게 주입시키며 불만을 조장하여 놓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무리들을 평정하려는 사회적 전쟁이라는 것이다. 셋째, 이념적 전쟁과 사회적 전쟁의 전사 역할을 하는 울분의 군중(때로는 우매한)을 이용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취하려고 하는 자들과의 정치적 전쟁인 것이다. 여기에는 지금 와서 보니 소위 진보를 표명해온 그러한 정치세력과 그 꼴난 보수를 자처해온 정치세력과의 구분이 없더라는 데서 나는 분노를 느꼈다. 오직 권모술수, 부정부패 등과 같은 부정적 에너지에 기반한 더러운 패거리들의 추악한 음모가 이땅의 젊은 영혼들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목이 터져라 함성을 외치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저들은 촛불을 들었다. 그러나 촛불은 희생의 상징이지 변화의 상징이 아니다. 따라서 수구적인 희생을 당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저들에게는 한계가 있을 수 뿐이 없다. 촛불은 가냘프게 흩날리며 자신을 태워나가야 하는데 그래서 몸이 뜨거워지는데 그 상징적인 형상이 물리적으로도 관념적으로도 보이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한 때 저들은 횃불도 들어보았지만 그것은 그곳에 모였던 시민들에게조차 정서적으로 동의를 얻지 못하는 행위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것이 저들의 한계이고 촛불의 경계선인 것이다.
우리는 태극기를 들었다. 태극기는 국가와 민족의 상징임을 부정할 수가 없고 3.1독립운동이나 8.15광복이나 어떠한 행사에 있어서도 그 의미가 불문률처럼 각인되어 있다.비록 그것을 부정하려는 명백한 적이 있고 그에 부화뇌동하는 사악하며 우매한 무리들이 있기에 안타까운 일면이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변할 수 없는 이 시대와 조국이 그려온 역사의 상징인 것이다. 나는 지난 3개월 간의 집회를 통하여 보니 시민들이 흔드는 태극기가 진화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것은 처음에는 비용의 문제가 대두되니 종이로 된 태극기를 제작하여 모두가 나누어 갖고 흔들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종이 태극기는 세차게 몇 번 흔들면 찢어져버리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초기에 그렇게 버려진 태극기의 잔해를 두고 쓰레기 언론은 마치 사막에서 시원한 오아시스를 만난 듯 태극기의 뒷처리가 엉망이라고 비난을 해대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찢어지지 않도록 비닐로 만든 태극기가 나왔다. 그러나 비닐 태극기는 찢어지지는 않지만 휘감겨서 펄럭이는 태극기의 기능에 한계를 초래했다. 이때 잠시 나온 것이 LED태극기이다. 이것은 촛불이 밤에 빚난 보이니 야간에 잘보일 것이라는 생각에 그에 대적하여 만든 것이지만 일반적인 태극기가 바탕이 희므로 야간에 가로등 빛에 의하여 반사됨에 빛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촛불에 맞대응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 휘감기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헝겊으로 된 태극기이다. 헝겊 태극기가 나오니 시민들은 마음껏 태극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기저항이 적기 때문에 휘두름에서 오는 태극의 쾌감이 반감되었다. 여기서 태극기가 다시 진화한다. 그것은 태극기의 크기가 점점 커져간다는 것이다. 비용의 문제가 뒤따라오므로 시민들은 재활용을 위하여 태극기를 배낭이나 가방에 고이 간직하여 다음 집회에 들고 나올 뿐만 아니라 이제는 대형 태극기를 구입하여 프라스틱 통에 넣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면 꺼내어 흔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난 3개월 간의 집회를 통하여 점점 태극기의 견고함과 크기에 있어서 진화를 해왔다는 것이다.
태극기의 진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처음부터 나왔지만 긴 천에 태극기를 연속적으로 그려서 여러 사람이 들고다니면서 마치 차도와 행진을 구분하는 폴리스라인과 같은 역할을 하는가 하면 비올 때를 대비하여 태극기 우산도 나오고 월드컵 때 보여주었던 것 처럼 많은 시민들이 태극기를 어깨와 몸에 두르고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애국을 외친다. 그에 아주 길고 긴 깃대에 태극기를 여러 장 매단 형태의 태극깃발도 등장해 있으면 여러 사람이 들고 길거리를 행진하며 드는 대형 태극기도 등장을 했다. 급기야는 지난 강남 집회 때는 태극 스티커와 뱃지가 대거 등장을 했다. 그 뱃지를 옷에 달고 스티커를 옷소매와 배낭과 모자와 등에 부착하고 거리를 활보하여 마음껏 목청껏 구호와함성을 외친다. 그러나 아직 보디페인팅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날씨와 관계된 면도 있겠지만 지금은 월드컵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기에 사치스럽게 보디페인팅을 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의 반증이다.
하여튼 태극기의 진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내가 보기에 이 진화는 2017년 내내 이어질것이고 이 태극집회로 촉발된 애국운동은 대한민국 헌법에 가장 부합되는 대통령의 출현을 기다리는 시민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육사가 읊었던가?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느냐며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울리라고 말이다.
이제 내달 4일이면 입춘이고 곧 봄이 오니 백마 탄 초인이 모습을 드러내리라~^^!!!
https://youtu.be/7psu1717afY
2017.01.09/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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