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영등포의 삶

[스크랩] [어머니의 골절상]

영등포로터리 2016. 12. 23. 06:46

[어머니의 골절상]

어제는 학기 말이 되어 학교로 출근을 하여 수강 학생들의 성적처리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 어머니를 모신 요양병원의 담당의사로부터 늦은 오후에 전화가 왔다. 이야기인즉 어머니가 오른손 손가락 뼈에 금이 갔으니 보호자가 와서 정형외과적 조치를 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지금은 공간적으로 먼 거리에 있으니 우선 응급조치를 부탁하고 서둘러 일을 마치고 상경을 하니 사방이 깜깜하고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사실은 고등학교 친구들의 송년모임이 있어 오랜 만에 반갑고 정겨운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소주 한 잔으로 담소를 나누었지만 "뼈에 금이 갔으면 시간이 약"이란 생각에 어머니 일을 잠시 잊었던 것이 솔직한 말일 것이다.

그래도 오늘 아침 밤새워 골절상을 당한 어머니가 얼마나 괴로웠을까를 생각하며 병실을 찾았더니 어머니는 반깁스를 한 팔을 부여잡고 나를 반기신다. 그저 뼈에 금이 갔으면 노인이라 뼈에 아교질 보다 석회질이 많은 나이이니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닌가?

사실 요양중인 노인을 모시고 외부로 처치를 하러 나가는 일을 매우 힘든 일이다. 이것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그 환자와 보호자의 고충을 알 수가 없다. 점심시간에 걸치게 되면 한 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요양병원에 점심시간 늦게라도 들어와 식사를 할테니 점심을 취소하지 말라고 부탁을 하고 서둘러 어머니를 모시고 주차장과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구로 디지털단지 내의 정형외과로 이동을 했다. 어찌보면 이런 날은 어머니에게는 외식의 기회였다. 하지만 치아가 다 망가지고 난 다음부터는 외식은 불가하다. 그저 가장 편한 식사가 요양병원에서 나오는 죽일 뿐이다. 이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스럽다.

외과에 와서 접수를 하고 의사 앞에서 반깁스를 풀었는데 어머니의 손을 보니 손 전체에 멍이 시퍼렇다. 내가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받아들였다는 자책이 들었다. 곧 바로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영상을 보며 의사의 설명을 들으니 사태가 좀 심각했다. 단순하게 뼈에 금이 간 것이 아니고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지탱하는 손등과 손바닥 사이의 뼈가 부러져 손가락이 주저앉은 것이 영상에 나타나 보였다.

도대체 어쩌다가 손가락이 아니고 손등과 손바닥 사이의 뼈가 부러졌을까?
올 한 해는 전해질 부족을 세 번 겪으면서 어머니는 기력이 많이 쇠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 자력으로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어찌하여 움직여서 넘어졌다고 해도 이 뼈는 넘어져서는 부러질 가능성이 희박한 위치의 뼈다. 아니면 누가 고의로 손등을 내려쳤다면 가능한데 증거도 없지만 어느 누구도 그랬을 리는 없다고 본다. 단지 요양병원 간병인의 말로는 어머니가 잠을 자면서 누군지 이름을 부르며 가지마라고 손사래를 심하게 쳤다고 했는데 이때 침대 가이드레일을 손등으로 친 것 같다고 하는 것이 가장 높은 개연성을 갖는 추정일 뿐이다.

사실 요즘 치매의 어머니가 움직이지를 못하고 누워서 대소변을 보다보니 이상한 행동을 보여왔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거냐?"라는 말을 하지만 어머니의 실상이 그러했다. 누워서 기저귀 속으로 손을 넣어 대변을 만지고 그 손으로 얼굴과 머리를 만지고 침대를 만지니 바로 벽에 똥칠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치매의 어머니가 정신이 없어 하는 일이지만 주변사람들에게 미안해서 고개들기가 쉽지 않던 차였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어가는가 하고 자식으로서 탄식도 해보지만 치매의 증상은 그렇게 세월과 함께 깊어만 간다.

의사가 처치방안을 설명을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수술을 하여 핀을 밖아 고정을 하는 것이지만 고령이라서 권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솔직히 이 방안은 나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다. 차선책으로 최대한 뼈의 위치를 원상태에 맞추어 놓고(이 시술을 reduction이라 표현함) 깁스로 고정하고 시간에 맡기는 것이라 했다. 뼈를 원위치를 한다면 물리적으로 손가락을 잡아당긴다는 것인데 고통이 심할 것이니 현상태로 두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느냐고 내가 의사에게 물었다. 대답은 어차피 완벽할 수 없지만 그대로 두는 것보다는 잡아당기는 것이 기능상 조금이라도 개선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힘들고 아프겠지만 최대한 시도를 하고 고정을 시켜보자는 것이었다.

어머니를 처치실로 모시고 갔다. 일반 엑스레이장치보다는 뼈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C-arm으로 보아가며 시술을 하는데 간호사는 어머니의 손목을 잡고 의사는 가운데 손가락을 잡아당기는데 나는 어머니의 고통스런 몸부림을 억제하기 위해 몸체와 다리를 침대 바닥에 밀착시키는 일을 맡았다.

어머니의 고통스런 단발마의 비명은 어머니의 몸체를 짓누르고 있는 나의 심장을 파들어가고 있었다. 10년 전에 암투병으로 마지막 고통을 호소하던 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랐다. 차라리 내가 아픈 것이 낫겠다라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견디기 힘든 과정이었다. 그렇게 반복하기를 세번인데 최종적으로 확인을 했지만 완벽하게 원상태가 되지는 못했고 의사의 표현대로 reduction이 조금 된 것 뿐이었다. 어머니의 비명소리는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정말 산에 올라 실컷 울고 싶었던 하루였다.

"엄니! 엄청 아플 거여유~ 울고 싶으면 실컷 우세유"라고 했지만 정말로 얼마나 어머니가 아팠을까...
다시 어머니를 요양병원을 모셔놓고 늦은 점심이지만 맛있게 죽을 잡숫는 모습을 보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멍하니 내리는 빗방울만 바라다 보았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소주 한 잔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한 밤중에 눈이 떠져서 날이 또 바뀐 이 새벽까지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지금 이 시각 어머니는 편히 주무시고 있으려나?

시술을 위해 점심도 거르고 애를 써준 의사와 간호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들을 보니 할머니 얼굴이 환해지셨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간호사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24시간 옆에서 간병을 해주는 이름도 모르지만 김제 출신으로 중국동포가 된 간병인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항상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하는 요앙병원 의사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오래 전에 노인골절을 우려해 많은 조언을 해준 대구 와이비님의 깊은 배려에 다시금 고마움을 느끼는 새벽이다.
생각해보니 주변의 모든이들이 다 감사한 사람들이다.
그래도 침대에 똥칠하는 어머니의 고통이 가져다주고 확인시켜준 것은 "오늘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임에 위로를 받는다.

그러다보니 또 동창이 밝았다.

https://youtu.be/gqWKQwF6hhw

2016.12.23/쇠 같이 굳세게 살자.

¤

출처 : 돌고도는 영등포 로터리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