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영등포의 삶

[스크랩] [차비유감]

영등포로터리 2016. 7. 17. 23:11

[차비유감]

신도림동 모 컨벤션 웨딩홀에서 우리 지역 여성회장을 지낸 당원 동지의 딸을 여의는 혼사가 있어 다녀오는 길에 골목길 저쪽에서 시끌벅적한 말소리가 들려 귀를 기울였다. 눈에 보이는 장면인즉 딸로 보이는 여인이 어머니로 보이는 노파와 주고 받는 말인데 주변에 남편과 아이들도 같이 있음이 보였다.

사연은 이러했다. 오랜만에 친정에 온 딸과 사위와 손주들을 배웅을 하는데 많은 돈은 아니지만 집으로 갈 때 차비에 보태쓰라고 친정엄마가 돈을 쥐어주는 것이었으며 이에 딸은 차비가 충분히 있으니 엄마나 맛있는 것을 사드시라고 돈을 친정엄마 봉창에 넣어주려는 실랑이였다. 그런데 그 장면이 어찌 요란한지 온 동네가 시끄러웠던 것이었다. 하지만 보기에 참으로 훈훈하고 인정이 넘치는 장면이 아닌가?

먼 발치로 그들을 두고 사무실로 향하는데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 하나 떠올라 내심 내 마음이 안타까움에 몸서리를 친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니 1972년 쯤 되었을 것이다. 주말이라 내고향 증평을 가있을 때 집앞 도로에서 벌어진 일이다. 내 기억으로 이때 청주와 증평 사이의 신작로가 아스팔트로 처음 포장이 되어 청주의 시내버스가 증평까지 연장 운행이 되기 시작한 때였고 그 바람에 기차통학이 사라지게 된 때였다.

이 장면에도 친정엄마와 딸이 출연하며 애기를 업고 친정을 왔다가 시댁으로 돌아가는 딸과 친정엄마와의 이별장면에는 역시 차비가 소재였다. 내가 목격한 내용은 이렇다. 이날도 오늘과 같이 몇 푼 되지는 않지만 차비에 보태쓰라는 친정엄마의 애틋한 딸사랑에 엄마도 힘든데 맛있는 것을 사서 잡수라는 딸의 안타까운 마음이 엉켜버린 눈시울 뜨거운 헤어짐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한참을 오늘 같이 실랑이를 벌이는데 새로 포장된 멋있는 아스팔트를 달려갈 시내버스가 도착했다. 애기를 들쳐업은 딸이 버스에 오르는데 친정엄마는 붉으죽죽한 지전 50원을 딸의 허리춤에 푹 찔러넣어주었다. 빨리 버스에 타라는 차장(80년대에 들어 안내양으로 호칭이 바뀜)의 재촉에 딸은 버스에 올랐지만 막 출발하는 버스의 흔들림으로 중심을 잡지 못하며 뒤뚱거리면서 "엄니! 맛있는 거 사잡숴유~"하고 친정엄마가 찔러준 지전을 차창 밖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아뿔사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딸이 창밖으로 던진 돈이 길가 하수구 구멍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쏙 들어가 버리는 것 아닌가! 차장이 외치는 비명같은 출발신호인 "오라이~^^!!!" 한 마디에 시내버스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내달리고 지전을 삼켜버린 수채구녁을 친정엄마는 망연자실 바라만 본다.

이 광경을 목격한 친정엄마나 딸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것을 우연히 보게 된 내 마음도 안스럽고 또 아까웠다. 당시에 시내버스비가 5원 쯤 했을테니 그 50원은 지금의 만원 정도의 가치가 있었을 것이니 지금보다 피폐했던 당시의 경제사정을 감안하면 시골에서 참으로 큰 돈이었을 것이며 그것은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마와 딸의 사랑을 담은 돈이었으리라.

딸을 시집보낸 신길6동 전여성회장의 마음도 그와 같으려니 오늘은 딸을 시집 보낸 친정엄마의 애절한 심정을 보는 날인 것 같다. 나 역시 그 마음으로 지난 날을 추억하면서 시집간 내 딸을 생각하니 내 눈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https://youtu.be/RSiQWyy5hpI

2016.07.17/해는 져서 어두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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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돌고도는 영등포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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