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草와 偶像]
2009년 봄 쯤 어느 토요일의 일이었다. 서울시의회 7대 의원 중에 두 분이 내가 일을 하고 있던 구로동 사무실을 찾았다. 나는 당시 영등포4선거구(대림1/2/3동, 신길6동)의 시의원이었는데 개인적인 사업의 대표자로 있던 터라 격려차 김기성 의원님(강북구)과 김원태 의원(송파구)이 나의 사업장을 방문한 것이다.
김기성 의원님(당시 부의장)은 동향의 선배로서 내가 광역의원이 되고나서 사업과 의정활동이 병행될 때의 어려움과 한계를 설명해주며 주의할 점을 미리 알려 주신 분으로서 나중에 서울시의회 의장이 되었고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모여대 석좌교수로 활동을 했으며 개인적인 친분으로 딸아이 결혼식의 주례를 보아 주시기도 했다.
김원태 의원은 정말 말끔한 신사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매사에 합리적이고 의리가 있기로 소문난 성실한 의원이었다. 나보다 연배가 아래였지만 같은 김해 김씨로서 족보를 따져보니 항렬이 하나 위였기에 날 보고 "조카의원님"이라고 불렀다(나는 그를 "겐따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원태의 한자를 일본어 발음으로 읽어보니 그렇게 발음이 되어 어찌 하다 보니 그리 부르게 되었다).
지난 날 정치계에 3김이 있었듯이 우리도 어찌 보면 이 바닥의 3김이었다. 의회 내에서는 의정업무를 수행하지만 외부에서는 나름대로의 삶이 있으므로 나를 찾았기에 나는 토요일이 분식날(?)임을 상기하며 사무실 근처 은행나무 국수집으로 점심식사를 모셨다.
그렇게 맛있는 국수로 점심을 하고 차 한 잔의 담소를 위하여 사무실로 향하였다. 그런데 김원태 의원은 잠시 다녀올 곳이 있으니 먼저 사무실에 가셔서 차를 드시라고 하였다. 나는 부의장님을 모시고 토요일의 조용한 사무실에서 차를 한 잔 하고 있었는데 김원태 의원이 돌아왔다. 그런데 김의원은 품에 화분을 하나 안고 온 것이다. 갈색의 화분에 파란 화초가 심어져 있는 담백하면서 인상적인 화분을 들고 있는 것이었다.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는 덕담을 얹은 격려의 선물이었다. 그렇게 그날의 회동은 끝나고 두 분은 돌아갔다.
사실 리먼 사태로 사업이 매우 고전을 하던 때였다. 환율의 폭등과 복지예산의 삭감으로 시장의 저변이 줄어든 상태에서 리먼 사태는 업체 간의 격렬한 경쟁을 준비시키고 있었다. 참으로 힘든 시간의 시작이었고 시장의 소용돌이가 일기 직전 상태였다. 나는 이때부터 신자유주의적 시장의 복수를 경험하게 되는데 당시는 그것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가 없었다. 나날이 격정적인 사태가 전개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장의 복수보다 화분의 화초를 말하고자 한다. 사무실의 환경은 가정과 같지 않아 화초가 잘 자라는 것이 매우 어렵다. 대부분의 화초가 각별한 주의와 보실핌이 없으면 고사되어 죽게 마련이다. 그런데 김원태 의원이 사다준 화초는 그다지 각별한 관리를 하지 않아도 죽지 아니하고 잘 자라며 황량한 사무실 환경에서 잘 버티는 것이었다. 사실 그 이후에 전개된 사업적 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어느 날 문득 고요한 아침에 이 화초를 보니 황무지에 홀로 핀 풀포기 같은 것이 고독해 보이면서도 매우 강인하다는 느낌이 들어왔다. 그렇게 온갖 풍상을 겪으며 견디어 온 시간이 벌써 7년을 채운 것이다. 원래 이 화초는 꽃이 없다. 그냥 푸른 가지에 이파리가 올라오는 것이 다이다. 웬지 모르게 푸른 잎새가 안되었다 싶어 옆에 있는 친구 사무실에서 조화를 하나 얻어 꽂아 주었다. 나름대로 푸른 가지와 갈색 화분에 붉은 꽃이 정말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안해 지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갑자기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라는 소설이 생각이 났다. 저 화분의 화초가 내 운명 같으니 화초가 말라 비틀어져 나의 모든 사업적 결과도 종언을 고하게 되거나 아니면 그 같이 끈질기게 지탱해 나가거나 하는 그런 것 말이다. 하지만 소설 내용이 어린 소녀환자에게 희망을 주기는 했지만 그것은 떨어진 이파리를 그려넣은 그림이 희망을 준 것이지 지금 이 같이 메마른 경쟁의 시장통에서 통할 수는 없는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오히려 화초가 말라죽으면 나도 말라버린다는 우상을 머리 속에 각인 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진실로 우상이다. 그래서 나는 저 화초가 나의 미래를 예단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오히려 그 우상에 사로잡혀 화초의 운명을 바라보는 것이 더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을 하여 불길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나를 더 바보스럽게 만들 것이다.
나는 비록 이 화초가 결코 죽지 아니할 꽃을 품고 있으므로 열심히 물을 주고 가꾸어 생명력이 가득한 화초로 만들 것을 도모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최근 오른 쪽 잎새가 더 연한 푸른 빛으로 불쑥 솟아났다.
나는 그렇게 멸절의 우상을 버리고 신선한 이파리를 맞이한다.
https://youtu.be/S0ms8lahTQA
2016.06.25/흙을 딛고 선 화초
¤
'33-영등포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부전자전] (0) | 2016.06.26 |
---|---|
[스크랩] [맥아더와 6.25] (0) | 2016.06.26 |
[스크랩] [비행소녀] (0) | 2016.06.24 |
[스크랩] [자유낙하시험?] (0) | 2016.06.23 |
[스크랩] [교양 없는 부부] (0) | 2016.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