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의 추억]
아버지께서는 지방이지만 수십년간 의류제조업에 종사를 하셨다. 이말은 경영원칙에 입각하여 분석을 한다면 나는 원가만 들어가는 저렴한 비용을 들이고도 교복을 입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음식을 파는 사람들이 배를 곯고 연탄을 파는 사람이 춥게 잠을 자는 것은 비용을 아껴서 훗날 더 풍족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당시 사업가들의 삶의 논리였다.
내가 고1이 되던 해였으니 1971년이었다. 그래도 한 지역사회에서는 옥스브리지라고 불리는 명문 청주고에 입학을 했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께서는 입학을 축하한다며 교복을 하나 마련해주셨다. 옷감의 종류에 대한 정확한 기억은 사라졌는데 당시에는 보통 검은 광목 같은 천을 가지고 동복을 만들어 입었고 목에는 하얀 플라스틱 컬러(누나가 있는 애들은 하얀 털실로 떠서 붙였음)를 대었기 때문에 목을 똑바로 세우지 않으면 목살이 아팠던 경험을 모두 했을 것이다.
입학날이 다 되어 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교복의 옷감은 엘리트 학생복지라는 좋은 것이었으며 그것으로 만든 옷은 멀리서 봐도 빛이 나는 멋있는 옷 그 자체였다. 나는 온 가족이 보는 앞에서 교복을 입었다. 그러나 그것은 교복이 아니라 길이가 긴 외투였다. 지금 같으면 내 몸에 맞지 않으니 입지 않겠다고 떼를 썼을 것이고 그러면 엄마는 바로 매장으로 달려가 다른 크기로 바꿔주었겠지만 그때는 기성복이 아니고 맞춤복이었으니 그냥 마음에 차지 않아도 다시 맞출 수가 없으니 입을 댓발 내놓고 입어야할 때였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입학하고서 하복을 입을 때까지 나는 옷과 몸이 따로 노는 상태로 학교를 다녔다. 세월이 흘러 다시 동복을 입는 계절이 왔지만 아직 나의 몸은 그에 맞지 않아 여전히 교복과 상체가 분리된 느낌으로 1학년을 마쳤다. 하숙방에서 고등학교 3학년 선배들이 졸업을 했다. 그런데 다행히 교복에 밀가루는 뿌려도 칼로 교복을 찢는 졸업식 행태는 당시에 없었다. 덕분에 나는 한 선배가 입던 교복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교복은 많이 허름했고 내 몸에 약간 작았다. 그러나 옷과 몸이 따로 노는 것보다는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칠 때까지는 그렇게 그 교복을 입고 다닌 것 같다.
내가 3학년이 되었다. 얻어입은 교복은 헐기도 했지만 이제 작았다. 중학교를 다닐 때는 반에서 키가 중간 정도였는데 고1과 고2 과정에서 내몸이 부쩍 자라 반에서 뒷부분으로 밀려났던 것이다. 나는 고3이 되면서 고이 모셔두었던 내 교복을 꺼내어 입었다. 이제사 교복은 내 몸에 딱 맞아 나름대로 멋을 낼 만했다. 이때 느낀 것이 궁핍했던 시대에 커가는 자식들의 입거리를 놓고 노심초사했던 어른들의 고민과 지혜가 이 교복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여튼 그래서 그 즐거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기에 그 기념으로 나는 몇 명의 친구들과 자전거를 빌려타고 아산에 있는 현충사를 가서 이순신 장군에게 묵념을 올리고 왔다.
오늘 친구 아들의 결혼식이 여의도에서 있어 다녀오는 길에 "잔사의 여인2"가 근무하는 대형 교복매장(IVY club)을 잠시 들렀다. 차 한 잔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데 한 엄마가 아들을 대동하고 와서 교복을 구입하러 왔다. 사복을 입고 온 학생이 마치 개구장이 같아 보였는데 착복실(Fitting Room)에서 교복을 갈아 입고 나오는 것을 보니 그렇게 의젓해보일 수가 없었다.
지금은 기술과 경제적인 여건이 나아져서 몸에 맞는 교복을 바로 구입할 수가 있고 몸이 자라 맞지 않으면 새롭게 교복을 또 장만하는 것이 가계에 부담이 적다. 그리고 그러한 교복과 편의성과 활동성을 증진시키는 생활복을 하나 더 구입하여 번갈아 입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달라져도 많이 달라진 교복풍속도를 바라 보면서 되살려 본 "교복의 추억"이다.
하긴 우리도 교복과 교련복이라 하여 두 종류의 복장이 가능했다. 교복은 검은 천으로 아래 위를 만든 동복과 파란 상의와 회색빛 바지의 하복이 있었고, 개구리 무늬 및 각반으로 상징되는 교련복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당시에 교련복을 입고 제병지휘를 하고 각개전투를 하고하는 교련과목이 재미있었다. 실제로 군대에 가서는 별 흥미를 못가졌지만 말이다.
https://youtu.be/30Xvg2_BnqA
2016.05.14/흙을 파서 산 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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