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이라는 굴레]
어제 어느 행사를 다녀오다가 삼각지역 지하도를 걸어 나오는데 춥고 긴 지하보도의 양 옆에 조선말기부터 해방이 되기 전까지 왜놈들이 이땅에 들어와 국토와 국민을 유린하고 파괴해온 실상이 사진으로 전시가 되어 있었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냉한한 자리에 서서 나는 짖밟혔던 조국의 지난 날을 회상했다. 그러던 중에 눈에 들어온 몇 장의 사진이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1930년이란 연도에 기인하고 있다.
지금은 유명을 달리해 흙 속에 누워 조국의 산하에 오는 봄기운을 노래하실 내 아버지의 출생년도가 바로 1930년이다.
경오생 말띠이시니 살아계시면 지금은 87세의 삶이다.
사진을 보니 일본식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1930년 모습을 묘사한다. 이때 태어난 우리의 부모세대들은 태어나자마자 황국신민이었고 학교 공부를 시작하는 1937년과 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인 1940년,1942년에는 황궁신사에서 동쪽을 향하여 신궁을 참배하면서 머리는 내선일체로 물들어 갔던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인도 아니면서 나라 잃은 조선인으로 기기묘묘한 정체성을 형성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해방이 되어 7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친일이니 뭐니 하고 내부적인 갈등에 휘말려 국론이 분열되어 사회적 균열을 시도 때도 없이 경험을 하며 이전투구의 작태를 벌인다.
나라 잃은 민족의 통열한 반성은 어디로 가고 말이다.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더 나은 문물을 배우기 위하여 여건이 되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지 않았을까?
문학도도 과학도도 군인도 법률가도 역사가도 의학도도 등등 모두가 말이다.
왜국이 패망을 하기 위해 발악을 하던 1940년대에는 조선어말살과 창씨개명에 민족혼을 개조하려 하는 일본에 우리의 부모들은 그 얼마나 시달렸던가?
해방과 더불어 닥쳐온 동족상잔의 6.25전쟁은 그런 비침한 가슴을 빨갱이 논쟁에 짓이겨 쳐넣고 말았으니 우리의 정체성은 정녕코 그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에게 "친일이라는 굴레"는 무엇을 말함이며 그 무슨 거지발싸게 같은 족쇄란 말인가?
1933년생의 어머니는 지금 치매에 걸려 그 어린 시절만이 어렴풋이 떠올라 지금의 기억은 잊어가는 채로 나를 보기만 하면
"하이! 와다시와 가네다 에이슈데스."를
연발하면서 그 암울했던 과거를 추억한다.
그 시대에 태어난 우리의 부모는 그 시대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인식을 했을까?
어른들로부터 나라를 빼앗겼다는 말을 듣기는 했겠지만 그 황국신민이 삶의 전부고 그 자체였던 것일텐데 어찌하란 말인가!!!
한밤 중에 만난 사진의 행렬에 정말 시름에 젖어 별이 가물거리는 검은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니 진정코 착잡했다.
2016.03.11/쇠를 주워오게 해서 왜놈들이 무기를 만들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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