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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法 깔아뭉개는 전교조와 親전교조 교육감들 [조선사설] 2016년 2월 27일 오전 09:11

영등포로터리 2016. 2. 27. 09:12

대놓고 法 깔아뭉개는 전교조와 親전교조 교육감들 [조선사설]

전교조가 지난달 고등법원 판결에서도 법적 자격을 갖추지 못한 '법외(法外)노조'라는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노조 전임자 학교 복귀, 사무실 지원금 반납 같은 의무에 응하지 않고 있다.
법외노조가 되면 노조 명칭을 쓸 수 없고 전임 간부로 근무하는 교사들은 학교로 복귀해야 한다. 전교조는 그러나 아직도 노조 간판을 달고 사무실을 쓰면서 38억원에 이르는 사무실 임차 보증금 지원금도 반납하지 않고 있다. 이 상황에서 서울·인천·광주 등 친(親)전교조, 진보·좌파 교육감 9명은 정부의 후속 조치 요구에 협조하지 않아 법 집행을 무력화하고 있다. 이 교육감 9명 중 7명이 전교조 간부 출신이다.

전교조가 법외노조 판결을 받은 것은 해직 교사 9명을 조합원으로 계속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교원노조법상 해직자 9명을 정리하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들 중 일부에게 노조 핵심 직책을 맡겨 법외노조화를 자초했다. 그래 놓고 법원 판결에 대해 "반역사적 폭력"이라고 폭언을 퍼붓고 있다.

지금 상황을 해결할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교조가 해직자 9명을 내보내면 합법 노조 지위를 회복할 수 있다. 이 9명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해직된 사람들이다. '전업(專業) 운동권'이나 다름없다. 이들이 조직을 좌지우지하면서 전교조를 극단적 정치 투쟁의 길로 몰고 가곤 했다. 전교조가 이들을 탈퇴시키고 합리적 교원 노조로서 활동한다면 단체교섭 등을 통해 5만 조합원의 이익 보호 활동을 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는 판결 직후 "9명을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조합원 5만명 권익보다 해직자 9명이 더 중요하다는 걸 얼마나 많은 조합원이 동의하겠는가. 정부는 대놓고 법을 깔아뭉개는 전교조에 강제 집행을 하고, 후속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교육감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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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바라고 전역 미룬게 아닌데… 이젠 기업 지킬 것"
2015 北 도발 때 애국심 보여준 병사들… 기업 특채 그 후


김동희(25)씨는 작년 8월 경기도 양주 육군 제5기갑여단에서 장갑차 조종수로 복무하고 있었다. 전역일(9월 22일)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김씨의 머릿속은 제대 후 일자리를 구할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남동생과 단둘이 살아온 그는 동생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가장(家長)이었다. 그러나 8월 20일, 북한군이 자신의 부대와 인접한 경기도 연천에 포격 도발을 했다는 소식에 그는 잠시 망설임도 없이 전역 연기를 신청했다.

그로부터 반년이 흐른 지금 김씨는 호텔리어로 변신했다. 지난 18일 김씨는 서울 광진구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청소가 끝난 객실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손에는 침구류 등 33가지 객실 점검 항목이 빼곡히 적힌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는 북의 목함지뢰 도발에 이은 포격 도발 당시 전역 연기를 신청한 장병을 특별 채용한 SK 계열 호텔에 지난해 11월 입사했다.


북한의 무력 도발에 군 전역을 미루며 애국정신을 발휘해 대기업에 특채된 청년들. 북한의 무력 도발에 군 전역을 미루며 애국정신을 발휘해 대기업에 특채된 청년들. 장갑차 조종수였던 김동희(25·왼쪽부터)씨는 호텔리어로 변신했다. 백령도 해병이었던 장우민(22)씨와 강원도 전방에서 철책 근무를 했던 박이삭(24)씨는 반도체 전문 기업에 뽑혔다. /김연정 객원기자
북의 도발이 터지자 김씨처럼 전역을 연기한 장병이 줄을 이으면서 신세대들의 안보관을 미덥지 않게 보던 우리 사회의 시선을 바꿔놓았다. 무려 장병 87명이 전역을 미루고 전선을 지켰고, 기업들은 이들을 특채하겠다고 나섰다.

이제는 새내기 직장인으로 변신한 이들 가운데 고졸(高卒) 학력으로 대기업에 당당히 입사한 김동희, 박이삭, 장우민씨를 본지가 만났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나라가 위급할 때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지기 싫었고 직장에서도 똑같은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희씨는 부모가 이혼한 후 고등학교 때부터 동생과 단둘이 살았다. 김씨는 고교 졸업 후 공장 생산직에 여러 차례 원서를 냈지만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오전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피자 배달, 편의점, PC방 아르바이트 등을 하다 입대했다고 했다. 김씨는 북의 포격 도발 당일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씨는 "전역일이 다가오면서 사회에 나가 어떻게 먹고살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많았다"며 "그러다 나라가 위급해진 상황에서 동생에게 부끄러운 형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전역 연기를 신청했다"고 했다. 객실 관리팀에 배치된 그는 입사 이후 매일 아침 영어 학원에 들렀다가 출근하고 있다.


2015 北 도발 때 애국심 보여준 병사들… 기업 특채 그 후
박이삭(24)씨도 전역 연기를 신청했다가 SK하이닉스에 특채됐다. 그는 작년 북의 도발 당일 제대 말년 휴가를 마치고 강원도 철원 부대(육군 3사단)로 복귀하던 참이었다. 전역을 닷새 앞둔 시점이었다. GOP(일반전초) 근무에 투입돼 망원경으로 휴전선 철책 너머 북한군 GP(감시초소)를 보니 병력이 몇 배가 늘어 있었고, 평소에 보이지 않던 군용차들이 돌아다녔다. 그길로 전역 연기를 신청한 박씨는 결국 원래 전역일보다 하루 늦게 제대했다. 박씨는 "머릿속에서 '내일이면 전역인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후임병과 상관들을 생각하니 혼자서 먼저 집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박씨와 함께 근무하는 장우민(22)씨는 지난해 백령도 주둔 해병대에서 전역을 연기한 유일한 장병이다. 전역(8월 24일) 며칠 전 부대 상황실엔 '북한 잠수함이 레이더에 잡히질 않는다'며 비상이 걸렸다. 부대 상관들은 "넌 전역이 얼마 안 남았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장씨도 가족이 눈에 밟혔다고 한다. 장씨는 전역 예정일 당일 신고식을 마치고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하지만 그는 전역 연기를 신청했고 남북 협상이 타결되면서 나흘 더 부대에 남았다가 제대했다. 장씨는 "동고동락한 해병대 전우들을 두고 혼자 집에 가면 해병으로서 당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박씨와 장씨는 현재 경기도 이천 공장 안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두 사람은 근무를 마친 뒤엔 기숙사 안에 마련된 독서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대학에서 공학(工學)을 전공한 다른 동료를 따라가기 위해서다. 박씨와 장씨는 "뭔가 바라고 전역 연기를 했던 게 아니고 군인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는데 대통령께서 직접 격려해줘 잘한 일이구나 생각했다"며 "나중엔 사내 학점은행제 등을 통해 대학 과정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전역 연기자 87명 가운데, 현재까지 27명이 입사했다"며 "대학 복학 등의 이유로 나중에 입사 원서를 낼 전역 연기자도 전원 채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보리고개 굶주림은 박정희대통령 때 없어졌고,

간첩잡자'는말은 김대중,노무현 때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