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병]
최근에 어느 병원에서 의료종사자들에게 전염성이 강한 옴이 발생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사실 옴은 환경이 열악하면 발생되는 후진국형 피부 전염병이다.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환경이 정화된 이 시대에 더구나 병원에서 옴이 발생했다는 것이 약간은 의아스럽고 의외이다.
옴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60년대 중반 쯤 되었을 것이다. 당시는 주택의 구조가 욕실을 포함하지 않는 때였으니 읍내에 하나뿐인 공중목욕탕을 온 동네 사람들이 이용하여 목욕을 하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지금 같이 추석명절 즈음이었을 것이다. 등멱을 감던 여름철이 지나고 겨울을 준비하는 목욕을 명절을 맞이하여 온 읍내 주민들이 다녀왔던 때였다. 그런데 그때 옴이 번져 많은 동네 사람들이 옴이라는 피부병으로 오랫동안 힘들어 했던 것이 그 추억이다. 더구나 한 가족은 아랫목에 발을 놓고 이불을 덮어쓰고 잠을 자며 놀이를 하고 이야기를 하던 생활습관이 있던 시절이라 가족 중에 한 명이 옴에 걸리면 가족 대부분이 옴에 노출이 되고는 했었다.
우리 가족도 그로부터 안전할 수는 없었다.
안채를 쓰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옴에 전염이 되어 참 큰 고통을 받았다. 당시에는 약이 지금 같지 않아 약을 발라도 효과가 없었기에 민간요법을 쓰기도 했는데 기억에 싸리나무를 꺽어 단면을 사선으로 내어 연탄불에 올려놓으면 그것들의 진액이 나오는데 그 진액을 옴이 붙은 부위에 바르면 낫는다하여 온 가족이 그 진액을 발랐던 기억이 있다.
해가 바뀌며 가려움과 쓰라림의 힘든 추억을 남기고 옴은 수습이 되었다. 그런데 딱 한 분 어머니는 그 옴에서 해방이 되지 못하고 습진이라는 지겹고도 징그러운 피부병을 얻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는 진실로 이해하기 힘든 경험이었다. 어렸을 적 나의 기억에 어머니의 양 무릎 바깥 쪽으로 동전 만한 습진이 한 곳씩 두 부위에 발생이 되었다.
동네 약국의 처방으로 안되니 어머니는 증평성당에서 운영했던 성메리놀 병원을 다녔지만 그 병은 낫지 않았다. 그 가렵고 짓물러터지는 지저분했단 상처는 쉽게 낫지 않아 어머니는 청주에 있는 김피부과를 다녔지만 그것이 치유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정말로 긴 시간 동안 그 피부병으로부터 고통을 받았다. 언젠가는 차라리 칼로 살을 베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을 들었고 피부병을 고쳐주면 그 사람에게 가서 평생을 봉사를 하겠다고까지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대학을 다닐 때엔가 들었으니 시간적으로 십여년은 되었을 것이다. 결국은 그 병은 낫지를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였다. 고향집 옆 서호여관을 하시던 동네에서 맏언니 격이었던 분이 "울트라란"이라는 연고를 알려주었는데 그 연고를 바르면 습진이 일시적으로 잠복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것이 어디인가? 잠복이 되면 가려움과 불쾌한 증상이 사라지니 어머니는 살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다시 성하면 또 다시 연고를 바르면 다시 잠복되니 연고만 있으면 일상생활의 지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한 치료는 아니었다. 내가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나서 나는 어머니가 젊은 시절에 경험한 괴로웠던 두 가지 병을 고쳐드리려고 서울에서 유명한 병원 두 곳을 모시고 갔다.
하나는 어머니가 평생 짊어졌던 홧병을 고쳐드리려고 신촌에 있는 대학병원을 가서 "세월이 약"이라는 처방전을 받았고 다른 하나는 용산에 있는 우피부과를 가서 어머니의 병력을 보여주며 다시 습진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정신적인 홧병은 요인이 사라지고 세월이 가니 서서히 치료가 되었지만 습진이라는 병은 그 유명한 의사로부터 약을 처방받고도 낫지를 않아 예전의 그 연고로 대증적인 처리만을 하고 살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노화되면 세포가 노화되는 것이고 악성세포도 노화가 되니 어머니가 고희를 넘기고 나니 그러한 피부병도 같이 노화가 되어 예전 같이 심각한 상태를 보이지 않아 그 약의 효용가치도 전 같지 않았다. 그런데 치매를 얻어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던 중 그 습진이라는 비부병이 재발을 했다. 병원에서 처방한 연고를 발라도 차도가 없고 동네에 있는 대학병원을 가서 조직검사까지해서 처방을 받은 약도 예전 같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습진은 날로 성해갔다.
다행히 인터넷을 들어가 검색을 해보니 그 연고의 그림이 있어 약에 대한 설명을 사진을 찍어 대림동에서 약국을 하는 친구에게 약을 수배해달라고 의뢰를 했다. 그러나 그 연고는 연전에 단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연고와 가장 근접한 연고를 찾아 달라고 했더니 다행히 친구는 "티티베"라는 연고가 유사한 효능이 있다면서 구해주었고 연고를 어머니에게 발라드리니 천만다행으로 습진이 나았다.
그런데 최근에 대형병원에서 옴이 발생했다하여 혹시 해서 어머니의 몸을 살폈더니 피부 전반적으로 붉은 반점이 분포되어있음을 알고 걱정을 했으나 대소변을 받아내기 위한 기저귀 발진이라고 하여 병원 측이 처방한 연고로 피부가 정상상태로 돌아왔다.
나는 어머니가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온 습진이라는 병 하지만 습진약으로 결코 숙지지않는 어머니만의 이상한 증상을 잘 안다. 어머니가 가렵다고 긁기만 해도 걱정이 되고 그 피부의 색과 상태를 보기만 해도 그 습진이다 아니다를 나는 안다.
그런데 오늘 안타깝게도 병원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고향가는 버스를 탄다고 서있는 어머니의 손가락에서 그 가렵고 고통스런 습진이 시작되는 붉은 반점을 보았다.
서랍을 뒤져 조금 남아 있는 티티베 연고를 발라드리고 병실을 나섰다.
나는 내일 가서 피부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잘 관찰을 해야한다.
집에 오니 손녀가 와서 혼자 잘 놀고 있다.
어머니 때문에 착잡했던 마음이 많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사람은 그렇게 부모를 보내야 하고 손자손녀를 맞는 것인가 보다.
손녀의 웃음소리에 추석의 밤이 깊어간다.
2016.09.15/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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