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정치 & 사회

世界“1等國民”위한 人生幸福 硏究所 鄭柄斗 拜上

영등포로터리 2015. 5. 3. 13:02

 

 

世界“1等國民”위한 人生幸福 硏究所 鄭柄斗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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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폴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 지난 3월 23일 91세를 일기로 타계.

 

 

 

대학 시절 만난 환상의 캠퍼스 커플과.63년을 동고동락하던 2살 연상의 아내가 5년 전 세상을 먼저 떠난 후로 심신의 노쇠가 몰라보게 빨라지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36세에 총리로 31년 장기 집권 독재자로 불린 권력의 화신인 그에게세계에서 쏟아지는 그의 죽음에 대한 추모와 추모 성명을 보면 모두가 높이 평가 했다

 

 

 

o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는 진정한 역사의 거인이며 현대 싱가포르의 국부이자 아시아의 위대한 전략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o 시진핑 중국 주석은

 

“고인은 존경하는 어르신이자 중국인의 오랜 친구이며 그의 타계는 국제 사회의 큰 손실”이라고 했다.

 

o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그는 싱가포르의 국부로서 영감을 준 아시아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리콴유는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23년 중국 남부 지방에서 싱가포르로 이민 온 부유한 화교 집안 출신이다. 그렇지만 그의 집은 그가 대학시절에 몰락해 그를 힘들게 했다. 역시나 대학 시절에 그는 인종 간 갈등과 불화를 겪기도 했으며 사회 부조리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싱가폴 리광유총리는 일제때 살기위해 일본군에 들어가서 중요직책을 받고 일본전쟁에 가담했지만 싱가폴 국민들은  친일파로 욕하지 않고 국부로 존경하며 추앙하고  세계에서도 위대한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1941년 12월에는 일제가 수천명의 사람을 죽이며 침탈해 들어왔다. 리쾅유는 그 일본 만행에 분노하면서도 그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일본 말도 배우고 일본군 정보부서에 취직해 연합군의 암호해독 업무를 맡아 일했다. 일본이 패전하자 그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런던 정경대와 케임브리지대에서 학과 수석을 놓쳐본 일이 없었다.

 

 

 

드디어 1950년 변호사가 되어 귀국해 노동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장차 정치인으로서의 변신을 꾀해나갔다. 1954년 실용주의 정당인 ‘인민행동당’의 설립을 주도함으로써 사무총장이 됐고 5년 후 36세로 싱가포르 첫 총리가 된다. 이것이 바로 가난한 어촌 마을들의 섬인 싱가포르를 세계적인 금융 무역 물류 유통 교통의 허브(hub)로서의 기적을 일구어 놓는 역사의 시발점이다.

 

 

 

오늘날의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GDP)이 5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이다. 리콴유는 경제활동에서만은 완벽하게 자유를 보장했다. 법인 세율이 낮고 양도세 상속세는 아예 없다. 다국적 기업인들을 상대로 한 민원처리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덕분에 서울 면적의 1.8배밖에 안 되는 작은 섬나라에 외국 기업이 1만여개, 세계 유수 은행들이 200여개나 진출해 있을 정도다. 실용주의자 리콴유가 이룩한 업적이다. 리콴유의 이런 업적이 있었기 때문에 비록 땅덩어리로는 손바닥만한 소국(小國)일지라도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누구도 싱가포르나 그 지도자들을 깔보거나 얕보지 못한다. 그야말로 탄탄한 강소국(强小國)이다.

 

반면 그는 철저한 유교적 권위주의자다. 그것이 국가 운영 이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공용어로서 “세계와 연결되지 않으면 과거의 어촌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국민을 설득해 ‘영어’를 택했다. 싱가포르의 민족 구성은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로서 중국계가 75% 이상을 차지한다. 영어를 공용어로 선택하면서 바로 이처럼 머리 숫자가 월등히 많은 중국계의 설득이 가장 힘들었었다. 그렇지만 민족 간의 얽히고설킨 갈등과 불화를 풀 수 있는 방법으로서도 영어를 ‘강력한 공용어’로 선택해 쓰도록 하는 것이 옳고 현명한 방책이란 것이 리콴유의 신념이었다.

 

 

 

싱가포르는 최고의 글로벌(global) 도시 중 하나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이 공용어인 영어의 힘이었다는 것과 그것을 공용어로 선택한 리콴유의 선견지명이었다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첫째. 교훈 

 

        한국은 박정희대통령이 일제때 일본군에 입대했다가 해방이되어 일본군에서 배운자들을 데리고

 

           국가부흥에 헌신하여 .국민소득 70$ 세계 꼴지의 가난한 나라를 수백배인 20.000$ 시대로 부흥시켜

 

       .    세계에서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하는데 ....

 

            국민중에는 ...특히 몰상식한 정치인.언론인들이 친일파라고  욕하며 폄하 하는데.....

 

            자녀와 친지들에게 대통령을 국부로 섬기는 국민되도록 전합시다. 

 


 

한편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느 “언론의 자유보다는 국가의 단합이 더 중요하다”고 하며 정치적 자유, 언론의 자유는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또 “당이 정부이며 정부는 싱가포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싱가포르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는 그의 신념과 그 신념을 뒷받침하는 논리에서 어느 누구의 간섭이나 충고에도 오불관언(吾不關焉)할 만큼 당당했었다.

 

하지만 그는 독재자이며 그의 싱가포르는 정치 후진국이라는 악명까지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둘째 교훈

 

 

 

        국은 박정희대통령이 국민화합위해 정치,언론 통제 했다고 욕하며 정치,언론자유를 외치는데  

 

         한국의 박근혜대통령도 정치 언론의 자유를 강력히 통제하고 독재자라 하드래도 정치 언론에 구애 받지 말고

 

         국내외에서 정권쟁취에 혈안이되어 국민을 선동하는 대통령을 욕하고 하야하라는 좌파 불순세력을 강력히 단속하고

 

         국민 총화 국가 발전 통일 한국 신념을 소신끗 추진하도록 한국의 원로 시니어들이 가족 친지들에게 전하길 바랍니다.

 

    

 

싱가포르는 사소한 위법 행위에 대해서라도 법의 제재가 냉혹하다.

 

예컨대 비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200~1000달러까지의 벌금을 문다. 껌을 거리에서 잘못 뱉어도 태형(caning sentence)에 처해질 수 있다. 공직자들은 부패 범죄를 저지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는 언젠가 부패 문제에 대해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솔선하지 않으면 어떤 반부패 노력도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 바로 이 말은 부패를 없애는 것이 법률이나 제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솔선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비상한 결단과 의지가 선행돼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교훈  

 

      한국도 욕하고  침뱃고 차선위반하고  신호등 위반하는 등 ...작은 부조리 부도덕한 것도  엄벌에 처하고

 

      공직자 기업주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의 부조리는 과중처벌을 하는 법을 만들어 불의가 용납되지 않는

 

      정의로운 1등 국민 1등 국가 만들도록 ...국민이 솔성하고 대통령이 강력이 추진하도록 합시다

 

 

 

싱가포르의 고민은 잘 사는 사람들이 자꾸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국외로 빠져나가는 일이다. 거기에 출산율마저 세계 최하위권에 속한다. 설상가상으로 ‘기회가 되면 외국으로 이민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는다. 국외 탈출 인구를 보충하려다 보니 2005년 이후 매년 15만명 이상씩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이래서 이민자 비중이 전체 인구 556만명의 40% 가까이에 달하는 형편이다. 싱가포르의 심화되는 빈부격차가 사람들을 떠나게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경제발전이 정치적 통제를 상쇄할 수 있다고 한 리콴유의 논리가 약발을 다한 것인가. 사실 리콴유 없는 싱가포르의 고민도 이 대목에 집중된다.리콴유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과 1988년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한국에 왔었다.

 

그가 한국에 대해 가진 가장 강한 인상 중 두 가지는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을 발전시키려는 비장한 결의와 의지가 그 첫 번째이고, 노동자와 학생들의 데모대가 거리에서 검투사처럼 무장한 경찰병력과 격렬히 맞서 싸우는 모습이 그 다음이었다. 리콴유는 중국 개혁개방의 시조 덩샤오핑에게도 바로 그 개혁개방에 관해 값진 영감을 주었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것은 그가 1978년 현대화된 싱가포르를 방문하고 받은 충격이 촉진제가 돼준 것이 사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의 덕목으로 청렴과 정직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리더는 스스로 깨끗하고 원칙을 지켜야 한다. 지도자가 당당하지 못하면 주변 단속은 엄두도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설사 단속에 나선다 해도 통제가 되지 않는다.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신뢰하지 않고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자가 신경을 곤두세우며 감시하고 감독해도 친인척을 비롯한 주변인들의 부정과 비리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도자의 단호한 처벌의지 천명과 실천으로 스스로 멀리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과거 정권에서는 많은 친인척과 측근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옥살이를 했다. 전두환 정권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모든 정권이 친인척 또는 측근 비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형이나 동생, 사돈에 팔촌까지 호가호위하며 각종 비리를 저질렀다.

 

 

 

또 정권 창출에 기여한 가신들의 비리도 속출했다.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와 관련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경남기업과 오너일가가 비리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고, 포스코도 수사를 받고 있다. 군부의 비리도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해군 참모총장 2명이 구속되는 등 군 수뇌부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성역 없는 수사를 외쳤지만 군사보안이라는 장막에 막혀 그때마다 성역으로 남았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다.

 

 

 

30여 년간 총리로 재직했지만 이렇다 할 친인척 비리는 없었다.

 

청렴을 국가 운영의 최우선 덕목으로 삼고 부정부패 척결에 총력을 기울여 세계적인 선진 청렴국가를 만들었다.

 

이 전 총리는 권력의 주변이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친인척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이권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관리했다. 이 전 총리의 부친은 아들이 총리에 오른 뒤에도 70세가 넘도록 시계 수리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부정부패 방지를 위해 각종 제도도 꾸준히 정비하고 단호함을 잃지 않았다.

 

이 전 총리는 일찍이 1960년 총리 직속으로 부패행위조사국을 설치해 공무원 등의 부패를 엄단했다. 그는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온 측근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했고 가장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비리를 근절했다. 비리혐의로 조사를 받던 한 장관이 면담을 요청하자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만나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그 장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유족들은 고인의 명예를 위해 부검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총리는 의사의 자연사 소견서가 있으면 부검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의사는 음독 소견서를 냈다. 부검은 당연히 진행됐다.

 

 

 

한국대통령들은 자기 집을 궁전으로 만들기 위해 국민세금을 엄청투자하는데

 

 

 

리콴유총리는 배려정신도 돋보인다. 그는 2011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죽거든 살던 집을 허물어라”라고 유언해 화제가 됐었다. 자신의 집이 성역화 돼 이웃에게 집값하락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또 재임기간 동안 전용기 대신 일반 항공기를 이용했고 1등석 승객 중 가장 나중에 기내 서비스를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퇴임 후에도 존경받는 이유다.

 

 

 

이완구 총리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역대 정권 대부분이 집권초기에 부패척결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사정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부패와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김영란 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국무회의 의결까지 마쳤다. ‘김영란 법’이 시행되면 마치 저절로 부패가 사라질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까지는 법이 없어 부정과 비리가 근절되지 않았는가.

 

 

 

....법보다 중요한 것은.

 

 

 

첫째는 국민 양심 준법정신이 중요하고

 

둘째는 지도자의 의지와 실천이 중요하고

 

셋재는 3部要人3不剔抉(부정,부패,부조리)솔선수범이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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