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서울특별시의회 김영로 시의원을 만나 보았다. 김 의원은 충북 괴산군 증평읍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청주중고, 연세대학교 전자공학과(학사, 석사)를 졸업하고 대기업을 거쳐 개인사업체를 꾸리다가 2006년 제7대 서울시의원으로 당선, 시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일변도의 시의원 구성이지만 합리적인 사고와 공학도출신다운 꼼꼼함을 갖췄다는 것이 동료 의원들간에는 소문이다. 김 의원은 현재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으로 박사과정을 밟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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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사진 - 의정활동중인 김영로 서울시의원 ⓒ서울포스트 |
양 기자:김영로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지난 행사장에서 뵌 이래 오랜만입니다. 김 의원: 예, 그때는 스케줄 때문에 자세한 담화를 못나눴네요. 기자님도 여전히 바쁘시죠?
양 기자: 시절이 하수상합니다.ㅎㅎ 김 의원: 글쎄 요즘 경기가 말이 아니죠...
양 기자: 의원님같은 시골출신께서 도농간에, 계층간에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셔야 합니다. 충청도 어디라고 하셨죠? 김 의원: 예, 괴산군이죠. 어린시절 미군구호품도 먹고 자랐습니다. 74년 서울로 대학을 진학해서는 3선개헌과 유신을 접했고 당시엔 선배들과 제법 국가, 민족, 역사, 정치 등에 관해 많은 고민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 류에서 서클활동도 하다가 2학년이 되자 서클이 해체되고 저는 ROTC를 지원했습니다. 육군 장교로서 10.26, 12.12, 5.18 등 격동의 시대상을 바라다보면서 1980년 2년 4개월간의 군 생활을 마쳤습니다.
양 기자: 저는 그 시기에 상무대 보병학교로 입대를 했습니다. 79년이니까, 저도 군에서 그러한 격동기를 보냈습니다. 제가 하사관으로 5년을 복무했으니 군대 짬밥수로는 제가 고참이네요.ㅎㅎ 공학도출신인데 군 제대하시고 어떻게 시의회에 몸담게 되셨는지 말씀해 주시죠. 이제부터는 문어체로 옮겨 적겠습니다. 김 의원: 80년 8월 럭키그룹(現, LG)에 입사하여 금성통신(주)에서 전전자교환기 개발 연구원으로 근무하였습니다. 회사 측의 배려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Digital 응용기술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인체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는 X-ray CT에 관한 논문을 씀으로써 당시 최첨단 의료기기인 MR(자기공명단층촬영)개발 사업에 참여하였고 일본 도시바에 기술연수를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의료용 첨단기술에 대한 국내의 기반 및 여건이 너무나 열악하였고 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금성의료기(주)로 전배, 독일 Siemens社와 합작회사를 설립하여 의료기기의 국산화 개발 및 제조를 통해 낙후된 산업을 활성화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영이라는 냉혹하고도 절실한 명제 앞에서 제조부문에서 같이 일을 하던 부하직원 모두가 ‘명예퇴직’이라는 형태로 집단해고 당하는 아픔을 겪었고 책임자로서 잔무정리를 한 후 93년 사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리고 1993년 와이메드(주)를 설립하여 의료기기 사업에 투신하면서 IMF 환란 등으로 인한 기업의 파산과 부도 이로 인한 도피와 배신을 보고 국가의 지도자가 국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극도로 침체된 경제상황하에서 의료기 제조를 시도(2003)하여 고전을 겪으면서 기업인들의 어려움도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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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중 의회 사무실 ⓒ양기용 서울포스트 |
[사회활동]으로는 대학을 다니면서 ‘한국문제연구회’라는 서클에 적을 두었고 이 서클을 모태로 하여 설립된 사단법인 ‘내나라연구소’의 회원으로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05년부터는 연세대학교 총동문회 이사 ․ 상임이사로 활동하면서 모교의 발전을 위해 조그마한 힘이라도 더하고 있습니다.
2003년에는 ‘연세대학교 ROTC 총동문회’상임부회장직을 2004년에는 ‘대한민국 ROTC 16기 총동기회’ 회장 직을 수행하면서 1978년에 임관한 3,639명의 예비역장교 모임을 이끌었고 ‘대한민국 ROTC중앙회’ 부회장으로도 활동을 하였습니다.
또한 국가경제 발전을 위하여 무역업체의 모임인 ‘한국수입업협회(KOIMA)’ 이사 및 구로구 상공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5년 4월부터는 영등포구 생활체육협의회 부회장으로서 지역구민의 생활 체육활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05 - 07년까지 국민생활체육 서울시 인라인스케이팅 연합회장직을 그리고 2007 - 08년에는 한국자유총연맹 영등포구 지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사각지대에 분포되어있는 어려운 이웃들과 탈북 청소년들의 자립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의정활동]에서는 저는 보수나 진보라는 개념을 떠나 건전한 사고방식과 성실한 양심이 바탕이 되어야만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사회에 봉사하고 국가와 민족에 충성하는 조국의 간성이 되기 위하여 2006년 서울특별시 제7대 의회에 진출,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의정활동 전반기에는 교육문화위원으로서 나라의 기둥이 될 학생들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일과 학력신장에 혼신의 힘을 기울임은 물론 특히 백년대계를 위한 국가인력구조개선과 엄청난 사교육비를 증폭시키고 있는 학력의 인플레이션 현상을 지적하고 개혁을 촉구하였습니다. 또한 노인복지특별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고령화 ․ 저 출산 문제를 극복하고자 노력함은 몰론 아동, 여성 그리고 장애인의 권리신장 및 복지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습니다. 현재는 행정자치위원회 상임위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윤리특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조국을 위하여]는 한 개인의 힘은 미약한 것이지만 조직의 힘은 실로 거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작은 힘이지만 좌파 10년간 몽상가들이 꿈꾸며 지고 가던 역사의 물꼬가 바로 잡힌 지금, 역동하는 조국의 물결에 적극 동참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가장 웅비하고 우뚝 서서 21세기를 선도하는 큰 흐름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등지며 살아온 조국의 통일을 반드시 이룩해야 합니다. 분단된 모습으로는 21 세기를 선도하는 흐름을 주도할 수 없음을 확신하며 조국과 민족이 다시 하나 되는 과업을 이룩하는데 일조하고자 합니다.
경제부흥으로 윤택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증산, 수출, 건설”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경제적 초석을 쌓을 수가 없었을 것이며 이에 제2의 경제부흥은 우리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봉사를 기본이념으로 한 분배의 정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갖은 계층과 갖지 못한 계층간의 위화감을 해소하여 국민통합을 이룩해야 합니다.
저의 모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진실은 하나이며 반드시 진실이 승리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저는 이를 실천하고 증명하기 위하여 남은 삶을 바치고자 합니다.
양 기자: 장시간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그런 사회가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김 의원: 감사합니다. 기자님과 함께 서울포스트 도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양기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