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민족의 수난, 6.25사변]
[민족의 수난, 6.25사변]
사변(事變)이란 선전포고 없이 벌어진 무력충돌을 뜻한다고 한다. 우리의 오욕과 질곡의 근현대사에서 사변하면 떠오르는 전쟁이 6.25사변(Korean War, 한국전쟁/韓國戰爭 : 왜인들은 지금도 조선전쟁[朝鮮戰爭/죠센센소우]이라고 명명함)과 함께 을미사변, 만주사변 등이 있다. 전쟁이란 피도 눈물도 없다고 하지만 엄청난 인명의 살상과 재산의 파괴를 시킬 전쟁자원을 몰래 마련해서 생각치도 않은 그리고 생각치도 못한 잠자는 시간에 포를 쏘며 침략을 하는 것은 정말 파렴치하며 비인간적이고 몰가치적인 만행인 것이다.
경계선을 그어놓고도 미리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은 피침자의 우매함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같은 인간으로서 쉽게 자행하기도 어려운 일이 우리 민족에게 있었다. 더구나 그 전쟁은 우연한 무력충돌이 아니고 사전에 기획되고 준비되었다는데서 인류역사상 가장 질이 나쁜 전쟁일지니 그것이 바로 6.25사변인 것이다. 이 전쟁이 동족이 아닌 타민족, 타 국가와의 충돌이었다면 차라리 덜 부끄럽고 덜 비극적이었을 것이다.
전쟁의 전개과정을 보면 참 드라마틱하다. 북한은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를 기해 38선 전역에서 야포를 쏘며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남침을 시작한다. 준비는 고사하고 생각치도 못했던 전쟁발발로 정부는 우왕좌왕한다. 임진왜란 이후 전쟁이란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왜정으로부터 벗어나 미군정을 거쳐 온갖 우여곡절 끝에 겨우 세운 나라가 제대로 작동될 리가 없었다. 내 기억으로 당시 육군 참모총장 정일권이 30대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애들이 대참사적 전쟁을 치렀던 것이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호소로 천운인지 UN에서 16개국이 파병을 해서 참전을 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있었다. 전선은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가고 다시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그해 9월28일 수복된다[하지만 철수하지 못한 패퇴한 인민괴뢰군이 지리산을 비롯한 산속으로 숨어들어 빨치산이 되어 그 세력들이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 사회를 괴롭힌다]. 통일의 적기라 판단한 이 대통령은 북진을 명령하고 그해 10월 1일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을 해간다. 이때 전쟁은 꽃다운 내 아버지를 전선으로 끌고 간다. 내 아버지뿐만 아니고 수많은 이 땅의 젊은 피를 민족수난의 제물로 바친 것이며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의 젊은 병사들이 꿈에도 본 적이 없는 이국(異國)의 땅, 한국의 전선에서 죽어갔다. 이때 희생된 미국의 젊은 병사가 54,000여 명이다. 나는 얼마 전에 전쟁기념관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당시 산화(散華)한 미군을 비롯한 UN군의 명단이 부조(浮彫)되어 있는 벽을 찾아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돌아온 67돌의 6.25가 내일, 모레이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와 연전에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통하여 잘 알려진 "흥남철수"는 미군이 팔자에도 없는 이 땅에 들어와 혹독한 겨울전쟁을 수행하며 이 땅의 무지렁이들과 엮어낸 한 편의 드라마이다. 추운 겨울 중공군의 개입으로 함경도 장진호 전투에서 후미(後尾)와 전투를 한 미군은 이 땅의 추운 겨울 흥남부두에서 남으로 철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끝도 없이 밀려오는 피난민 때문에 그들의 정예 군사들을 위해 대기 중인 선박은 전쟁 물자를 내려놓고 피란민을 실었다. 이것이 '흥남철수'이며 바로 '국제시장'이란 영화의 무대이다.
여기서 잘 생각을 해보자!
나는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이 친북의 경향을 보이는 것이 동족이라는 의미에서 논리적으로 나 현실적으로 수긍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 일군의 사람들이 친북의 성향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반미(反美)로 연결되는 것에는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다. 비록 지정학적이든 국제정치적이든 '미국이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우리나라에 와 전쟁을 하고 머무는 것이다'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미의 사유가 될 수는 없다. 경제적으로 미국이 우리를 이용했다는 주장도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1948년 이래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성장을 했고 미국의 그러한 우리의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땅 즉 자유 대한민국 땅에 있는 좌익이나 우익이나 반미를 개념화할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 67년 전 “이 땅을 유린(蹂躪)했던 세력” 외에는 그것을 음미할, 상념(想念)할, 노래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전쟁의 승패로 본다면 승자도 패자도 없는 6.25사변이었기에 지금도 남과 북은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 무릇,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이 땅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앞서 가는 세대는 후손에게 그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가면서 그렇게 죽어가 이 땅에 한 줌의 거름이 되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 모 TV 방송에서 이 “끝나지 않은 전쟁” 중의 흥남철수의 원류가 된 “장진호 전투”에 대하여 동 전투 참전용사들을 위한 참전 기념비 제막식을 방영하였다. “리처드 캐리(미 해병 예비역 중장/한국 참전용사)”가 치열했던 그러나 냉동의 지옥 같았던 전투를 회상하고 전사한 동료들을 생각하며 한 편의 시를 읽어 내려갔다.
“내 무덤 앞에 서서 울지 말라.
나는 거기에 없으니
나는 잠들어 있지 않다.
...
나는 가을비다.
그러니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라.
나는 그 무덤에 없다.
나는 죽지 않았으므로...”
꿈에서도 본 적이 없는 남의 땅에 와서 꽃다운 나이에 뜨거운 피를 뿌리며 죽어간 수많은 병사들은 죽을 수가 없었기에 내 무덤은 있을지언정 나는 그 속에 없으니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라고 아직도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땅의 “빚 진자들”은 그들을 미워하는가?
빚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미명의 시간에 포격을 가하고 탱크로 밀고 온 그 세력들일 뿐이다.
https://youtu.be/RhhZfv3sf-0
2017.06.23/쇠 철모(鐵帽)는 녹슬었는데 역지사지(易地思之) 해보니 참 이 땅의 “빚 진자들”은 밉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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