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영등포의 삶

[스크랩] [화상]

영등포로터리 2016. 6. 8. 21:39

[화상]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한 구간을 걸으면 사무실서 어머니가 계신 병원까지 3-40분 정도 걸릴 법하다. 그렇게 도착한 시간이 오후 7시반 쯤 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집 옆이니 마음만 먹으면 하루를 잘 보내시고 잘 주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돌아올 수 있어서 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제는 할머니가 홀로 계시니 가서 밥차려 드리려 청주가는 버스만 태워달라는 어머니가 오늘은 친정 조카 집에 외할머니가 계시니 그곳을 다녀왔으면 좋겠는데 혼자 갈 수가 없어서 이러고 있다며 큰 걱정을 하신다.

정말로 치매의 세계는 이곳 저곳을 쉽사리(?) 다녀올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을까마는 옆에서 보는이의 마음은 안스럽다. 그래서 나는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을 일일이 보여주며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을 거의 날마다 한다. 아들, 딸, 며느리, 손자손녀, 증손녀까지 한바퀴 돌자면 시간이 꽤 걸린다. 지금까지 분명한 것은 오래된 것은 기억하되 가까워질수록 불분명해지고 얼굴과 이름은 기억을 하는데 나이와 사는 곳은 망각을 했다.

날이 어두워졌으니 어서 집으로 가라고 하신다. 밀차를 대놓고 어머니를 부축해서 한 걸음을 떼는데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거동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다른 환자가 냉온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가지고 나오다가 어머니 발밑에서 놓친 것이었다. 뜨거운 물이 바닥으로 쏟아지며 어머니의 발을 덥친 것이다. 어머니는 뜨겁다고 비명인데 나는 순간 어머니의 양말을 벗겼다. 오른 발목 뒤에 붉은 피부가 드러났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뜨겁다고 하신다. 내 생각이 짧았다. 환자복 바지가 열탕에 젖어 정강이 뒤에 늘어붙은 것을 차마 내가 몰랐다. 아! 얼마나 뜨거웠을까?

간호사를 불러 설명을 하고 의사가 와서 응급조치를 지시한다. 다행이 깊은 화상은 아니고 살짝 덴 것이지만 아마 밤새 화끈거릴 것 같은 생각에 오늘 또 마음이 아프다. 왜 하필 내가 그 순간에 들어 가시자고 어머니를 일으켜세웠을까?

그런데 물통을 떨어뜨린 환자가 문제다. 그 역시 수족이 부자연스럽고 본인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조차 알지를 못하고 그저 입을 벌리고 천정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만일에 정도가 심한 화상을 입었다면 그 피해보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룻 밤 주무시고 나면 회복이 되겠지만 병원 측에서도 이러한 안전사고에 대한 주의와 교육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왜 하필이면 그 순간에 내가 들어가시자고 했을까?

2016.06.08/물이 너무 뜨거워~^^!!!

출처 : 돌고도는 영등포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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