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영등포의 삶

[스크랩] [어머니의 기억과 걱정]

영등포로터리 2016. 5. 15. 18:10

[어머니의 기억과 걱정]

어머니의 요양병원 생활을 놓고 보면 치매환자라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간호사나 간병인이 되었든 아니면 맑은 정신을 갖고 있는 같은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의 과거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 상태를 보호자인 나보다 더 엉망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보여진다. 보호자인 내가 보아도 어머니는 매우 복잡한 심경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무리 치매환자라고 해도 자신의 어여쁘고 얌전했던 젊은 시절을 아직은 잊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현재 보여지는 초췌한 모습과 주변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할머니들을 보면 내가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을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떤 날은 그토록 시집살이를 시켰던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나에게 "할머니는 잘 계시느냐?"고 묻고 어떤 날은 친정어머니를 그리며 나에게 "외할머니는 건강하시냐?"고 묻는다. 처음에는 할머니, 외할머니 모두 돌아가셨다고 있는 사실을 가르쳐주었지만 요즈음은 어머니의 생각에 맞추어 "내가 잘 모시고 있다."고 대답을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현실을 말씀드려도 다시 곧 망각을 하여 같은 질문을 또 하고는 하니 말이다.차라리 그 순간에 어머니의 마음 속에서 희망하는 대로 편안한 대답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내린 나름대로의 나의 배려(?)이다. 그중에서도 마음 아픈 어머니의 말은 할머니를 내가 모시고 있다는 말에 대하여 "내가 할 일을 너를 시켜서 미안하다."고 대답을 하고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왜 네 아버지는 한 번도 안오느냐?"고 하는 것이다.

지난 어버이날에는 온 가족이 시차를 두고 어머니를 병문안했다. 덕분에 그 좋아하는 우유사탕(일명 말랑카우)과 부드러운 빵(초코파이나 카스타드 등)이 캐비넷 속에 잔뜩 쌓였으니 부자가 되었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억도 잠시 뿐 어머니는 누가 언제 다녀갔는지를 깡그리 잊어버린다. 어머니에게는 하나 뿐인 딸이기에 일주일에 한 번 씩 다녀가는 딸을 놓고도 "그년은 엄마한테 한 번도 오지 않았다!"고 불만이 대단하다. 하여튼 최근의 기억은 거의 망각해가고 있지만 어떤 날은 지극히 정상에 근접한 말을 하기도 한다. 아마도 몸의 상태가 좋은 날이거나 기분이 좋은 날은 생각나는 기억의 폭과 시간대가 넓어지는 것일 게다.

그런데 최근 들어 어머니의 행동양태에 변동이 된 것이 있다. 침상에 앉아서 아니면 휴게실 의자에 앉아서 밀차를 밀고 복도를 걸어오면서 이제나 저제나 자식들이 오는지를 기다리는 것은 여느 노인들이나 다름이 없겠지만 요즈음은 이에 대해서 어머니의 매우 적극적인 요청이 주변인들에게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말하자면 간병인에 "나를 집에다 데려다 달라!!!"고 한다든가 간호사 스테이션에 가서 "우리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 좀 데려가라고 얘기를 하라!!!"고 부탁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보여오던 행동과는 다르게 정말 그리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망각의 반복이 어떠한 심리적인 왜곡을 가져온 것일 수도 있겠지...
혹시 주변의 냉대와 무관심에 대한 반응인가?
따지고 보면 주변에 있는 환자들 대부분이 대소변을 받아내는 환자로서 "똥을 쌌으니 치워달라"고 하는 말 외에 아무런 말이 없는 사람들에게 냉대 받을 것도 무관심할 것도 없을 텐데...
최근 들어 부쩍 온 몸이 아프다는 말이 더 늘어난 것도 참으로 걱정스런 대목이다.
벌써 2년째 투병 중인데 침상생활에서 오는 피로현상이 십수년 전에 수술 받은 허리 디스크에 무리가 온 것일 수도 있을테고...

사실 이번 가정의 달을 들어 어머니 병문안에 2번의 결석을 했다. 결석이라 표현함은 다음과 같다. 물론 전에도 노력은 하지만 매일 갈 수는 없기에 내가 시내에 볼 일이 있으면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잠깐 들렀다가 오고, 내가 갈 수가 없을 상황에서는 가족들을 동원하여 그 공백을 메꾸어 왔고 이도저도 맞지 않을 때는 가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달 들어 "긴병에 효자 없다."고 퇴근 길에 들러야지 했다가 솔직히 힘들고 꾀가 나서 "에이~ 오늘은 건너뛰고 내일 들리지 뭐!!!" 하고 이틀 결석을 한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내가 두번의 결석한 다음 날 "나를 집에다 데려다 달라"고 간병인에게 하소연을 해서 간병인이 아주 혼났다고 나에게 전언을 하고 간호사에게 가서 "우리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오게 하라"고 보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내가 병원 6층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마자 휴게실에서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보고 간호사 모두가 "할머니!!! 아드님 오셨어요. 우리가 곧 올거라고 했잖아요~" 하고 환호성을 올리는 것이다. 졸지에 내가 마치 스타(?)가 된 듯한 광경이 연출된 것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다 잊어버려도 아들이 하루 오지 않았다는 것을 그것도 귀찮아서 안왔다는 것을 어머니로서 느끼는 모양인가보다.

최근에 병원 내부에 대청소를 실시한다고 하여 5월15일(일) 날은 보호자의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하는 문자를 원무과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어제 특전미사를 갔다가 성서공부를 같이 했던 "안혜영 이레네" 자매가 어머니를 갖다 드리라고 사준 요구르트와 크림 빵을 받았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청소하는 구간을 살짝 피하더라도 어머니에게 갖다드려야 할 것 같았다. 부랴부랴 차를 몰아 병원을 갔더니 세례를 받는 날인지 병원 앞 대방동 성당의 입구에 형제자매들과 꽃파는 상인들의 차로 교통이 엉망이 되어있었다. 성당의 차량안내 봉사자들이 친절하게 길을 터주어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원실로 올라갔다. 병원 내부에는 청소를 하느라 휴게실의 소파를 한 쪽으로 치워놓고 복도바닥에도 세척제가 도포가 되었는데 엘리베이터를 내리니 복도 저 편에서 어머니가 밀차를 밀고 오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는 나를 발견하고 웃으면서 "어떻게 알고 왔냐?"고 반가워한다. 무엇을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묻는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대답을 하고 나는 어머니를 소파에 앉게 하고 빵과 요구르트를 따드리고 천천히 드시라고 했다.

어머니가 간식을 드시는 동안 나는 셀카로 사진을 찍어보이고 손자, 손녀, 증손녀의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자꾸 기억을 되돌려보려고 애를 쓴다.
"어머니!!! 내가 안올 것 같아서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하고 전화를 해달라고 그랬어요?"하며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테니 걱정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 여기는 지금 청소를 해야하니 얼른 방으로 들어가시라고 하고 나도 가야된다고 하니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신다.
"나는 누구에게고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오늘 밤에 바람 불고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춥지 않게 주무시기를 기도를 한다.

https://youtu.be/W_GocNZsYSM

2016.05.15/해는 다시 운우(雲雨) 속으로..., 스승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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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치매환자 보호자에게 도움이 될까해서 적어본 글임을 밝힌다.]

출처 : 돌고도는 영등포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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