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영등포의 삶

[스크랩]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

영등포로터리 2016. 5. 6. 10:51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

어려서 들은 어른들의 흥얼거림이라 정확한 가사는 대부분 잊었지만 어른들은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고 흥얼거리고는 했다.
어려서 그랬는지 그 뜻은 알았지만 그의 심각성은 느끼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 그 말을 많이 다시 음미하는 일이 생겼다. 그 음미된 맛은 공을 치려면 비가 오지 말고 날이 쾌청하고 좋은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마도 젊은 사람들은 비오는 날 굳이 공치러가야하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그 말은 비가 오면 일거리가 없으니 공(空)친다고 노래한 것이지 골프공(球)을 치러 자는 뜻은 아니니까 말이다.

오늘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주말 사이에 낀 날이니까 정부에서 평일이지만 임시공휴일로 지정을 해서 모두가 쉰다.
게다가 아침에 사무실을 나가다보니 비가 질척거리고 온다. 비도 오고 휴일이니 이래 저래 공치는 날이 맞기는 하다.
근무지 근처에 도착하여 버스를 내리고자 하였더니 벌써 밖에는 일일노동자들이 그나마 연휴의 희박한 일자리가 형성된 인력시장에서 탈락을 했는지 화장실 앞에서 막걸리를 한 잔씩 하고 있다.
사무실 쪽으로 길을 걷자니 편의점 앞의 파라솔 아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육체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군데군데 아침 해장을 한다. 어느 파라솔은 막걸리가 여섯 통이고 어느 곳은 소주가 여러 병이며 임자들 떠난 텅빈 파라솔 아래에는 빈 술병과 담배꽁초와 음식포장지가 즐비하다.

아직 비는 질척거리며 온다.
길거리의 표정은 그들을 빼고는 휴일인지라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사무실 앞에 도착하니 평소 같으면 아침 담배를 피기 위하여 옹기종기 모여 있을 젊은 남녀들이 한 명도 없다.
정말 비오는 날이 공치는 날이기도 하지만 기나간 휴일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공을 치러도갔겠지~^^!!!

텅빈 복도 역시 고요한 적막만 흐르는데 내가 그 적막을 깨뜨린다.
삐삐삐삐~ 철커덕!!!

2016.05.06/쇠

¤

출처 : 돌고도는 영등포 로터리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