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장막의 뒤]
[장막의 뒤]
지난 주말에 연중행사 같이 치르는 몸살을 앓았다. 말이 몸살이지 이 근육통은 속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다. 누워 있다가 일어서기조차 힘든 통증이 그것이다. 그로 인하여 지난 몇일 간 어머니를 찾아 뵙지를 못했다.
몇일 못간 것인데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옆환자가 전해준 말 때문에 마음이 아리다.
그말인즉 어머니가 하루 종일 복도를 바라다보면서 아들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도 유분수지 그리 따지면 벌써 날수로 나흘째 어머니는 복도를 바라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것은 지난 날 내가 젊었을 때 아들 딸을 데리고 고향을 간다고 말씀드리면 멀리서 오는 증손을 보시려고 할아버지께서 아침부터 대문 앞에 의자를 내다놓고 눈이 빠져라 역전 방향을 바라다 보셨다는 할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를 바라보며 하루종일 그러셨듯이 다 그런 마음이고 나 역시 주말이면 시집간 딸이 외손녀를 안고 오지 않았나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마음이리라.
몸이 좀 회복된 듯하여 엊저녁 퇴근 길에 어머니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침대에 누워있던 어머니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 예감이 맞았다!"며 나를 반긴다.
하지만 옆 환자가 전해준 말이 나를 또 울적하게 만든다.
사연인즉 다음과 같다.
어머니 반대 쪽 옆할머니 환자의 침대는 어머니의 것과 붙어있는데 그 사이에 커튼이 반쯤 쳐져있다. 전에 아주 절친하게 친구 같이 지내던 할머니와는 커튼을 젖혀놓고 지냈는데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새로운 환자들이 오면서 커튼을 치고 생활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장막 저편 참조]
그런데 어머니는 그 장막 뒤가 궁금한지 자꾸 넘겨다 본다는 것이다. 옆할머니는 넘겨다보는 것이 불편하니 쳐다보지도 말라하고 어머니에게 심한 말을 한다고 옆환자가 알려준다. 참으로 듣는 나로서는 아들이기에 마음이 불편하다. 옆할머니는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요구하는 것이고 시정이 안되니 심한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또 자꾸 넘겨다보고, 옆할머니는 싫으니 또 넘겨다보지 말라고 해서 말싸움이 나고 분위가 엉망이 되었음에도 치매의 어머니는 모두 잊고 또 넘겨다보니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이다.
나는 혹시 장막 뒤에 계시던 그 절친했던 그러나 지금은 돌아가신 그 할머니가 있을 것 같아 커튼 뒤를 넘겨다보느냐고 물었지만 어머니는 이미 그 할머니도 다 망각을 했고, 옆할머니와 싸우지말고 친하게 지내라고 말씀드리니 "나는 평생 누구와 싸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을 한다.
일전에 평택에 사시는 이모가 병문안을 왔는데 자꾸 "아줌마는 누구냐?"고 물어 이제 친정 동생도 잊어감에 정신은 자꾸 현실에서 멀어져 감을 막을 수가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상하게도 식욕이 왕성하여 육체적인 건강 즉 체력이 많이 향상되어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고 있다.
자식은 아직 기억하지만 자식이 다녀간 것은 이제 기억하지 못하는 단계가 된 것이다.
그저 앉은 자리에서만 저녁을 먹었냐고 대여섯번을 물어보며 집에 가려면 몇시간 걸리니 빨리 집에 가라고 걱정하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병원을 나서려니 속살이 찢어지는 듯한 몸살의 고통만큼이나 가슴이 찢어진다.
다시 거리에 서니 어두움 속인데 온화해져가는 봄바람이 부는데도 마치 칼바람 부는 산꼭대기에 구멍난 거적대기 하나 걸치고 홀로 서서 회색 도시의 불빛을 바라다 보는 듯한 기분은 무엇일까?
정말로 척박한 기분이 든다.
2016.03.29/불 같은 마음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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